[임선영 작가의 오늘 뭐 먹지?]늦가을 허허로움 달래는 오향장육과 군만두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0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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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대문구 오향만두의 ‘오향장육’. 임선영 씨 제공
서울 서대문구 오향만두의 ‘오향장육’. 임선영 씨 제공
임선영 음식작가·‘셰프의 맛집’ 저자
임선영 음식작가·‘셰프의 맛집’ 저자
아침 기온이 4도로 떨어지자 서둘러 겨울옷을 꺼냈다. 저녁은 빨리 찾아왔고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차도 사람들도 예민해졌다. 드르륵 문을 열고 동네 중국집으로 들어갔다. 가을과 겨울 사이. 허한 속을 채울 수 있는 가장 좋은 메뉴는 오향장육과 군만두였다. 떨어지는 체온이야 옷으로 막을 수 있지만 서늘해지는 속마음은 맛있는 저녁으로 달래야 했다.

오향장육과 만두에는 퇴근길 회사원들의 애환이 담겨 있다. 골목 어귀에 있는 자그마한 중국집. 문을 꼭 닫아도 미풍이 들어왔지만 이미 넥타이를 풀고 백주 한 잔을 기울이는 회사원들 열기로 내부는 후끈했다. 오향장육에는 물만두가 어울리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군만두가 더 궁합이 맞다. 오향장육이 삶아서 식혀내기에 보드랍고 향기롭다면, 갓 튀겨낸 만두는 바삭바삭 먹는 재미를 더해준다. 가장 먼저 오향장육에 얹어 나온 파채와 오이를 입가심으로 먹는다. 군만두를 하나 집어 후후 불며 바사삭 씹어 먹으면 육즙이 입안에 그윽이 차오른다. 그 기세를 몰아 향이 잘 스며든 장육 하나를 입에 물자 녹아드는 것은 마음의 허기. 여기에 백주 한 잔 곁들일 때 ‘후’ 하고 답답한 속이 열리기 시작한다.

오향장육을 잘하는 집은 하나같이 만두를 잘한다. ‘오향만두’가 반가운 이유는 옛날식 오향장육 맛이 30년 넘도록 변치 않았다는 점이다. 주인장의 고집이 맛을 지켜내는 비결이다. 돼지고기를 삶을 때 잡내를 말끔히 잡았다. 소스는 과함이 없고 육향을 끌어올리는 역할에만 충실하다. 옆에 보너스처럼 얹어주는 송화단도 고소하다. 군만두는 이곳의 대표요리. 옆에서 아주머님은 다소곳하게 만두를 빚고 계셨다. 주방에서 깨끗한 기름으로 바로 구워주기에 만두의 촉촉함이 고스란히 살아있다. 돼지고기, 배추, 파 등과 어우러지는 만두 속은 고소하되 담백하다.

‘산동교자관’은 원래 찐만두가 유명한 곳이다. 그런데 아는 사람들은 오향장육과 군만두를 시켜 먹는다. 찐만두는 만두소에 돼지고기가 도톰해 육향이 풍부하고 부추로 향을 낸다. 군만두는 크기가 조금 작은데도 하나 먹었을 때 풍미가 가득하다. 오향장육은 살코기 부분의 장육과 돼지껍질을 층층이 쌓아 편육으로 만든 것이 분리돼 나온다. 오목한 접시 밑에 맑게 고인 소스는 풍성하게 나온 양배추 채와 비벼 먹는다. ‘짜슬이’라 불리는 젤리형 양념을 조금씩 얹어 먹으면 맛있다.

‘서궁’은 사태와 돈족을 깔끔하게 삶아내고 고추와 마늘, 고수를 수북하게 올려준다. 껍질 부위와 살점이 어우러지니 쫀쫀한 젤리를 먹는 듯하다. 군만두는 그야말로 압권이다. 만두소는 소고기를 쓰며 만두피는 두툼하지만 과자처럼 바삭하게 씹히다가 목으로 술렁술렁 넘어간다. 숙성이 잘된 만두피의 전형이다.

임선영 음식작가·‘셰프의 맛집’ 저자 nalgea@gmail.com

○ 오향만두=서울 서대문구 연희맛로 22, 오향장육 1만5000원, 군만두 6000원

○ 산동교자관=서울 강남구 압구정로 214, 오향장육 2만8000원, 군만두 7000원

○ 서궁=서울 영등포구 국제금융로 86 롯데캐슬아이비 지하 1층, 오향장육 2만9000원, 군만두 7500원
#오향장육#군만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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