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버의 한국 블로그]저는 왼손잡이랍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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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폴 카버 영국 출신 서울시 글로벌센터팀장
폴 카버 영국 출신 서울시 글로벌센터팀장
독자 여러분께 고백할 것이 있다. 나는 소수다. 편견을 받을 때가 많고, 나를 얕보는 사람도 많다. 나를 장애인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장애인까지는 아니더라도 확실하게 이 상황 때문에 인생이 불편할 때가 많다. 위험할 때도 있다. 치료를 받을 수도 없고 이 고통을 넘어갈 수 있게 지원을 받지도 못한다. 평생 그냥 참고 살아야 한다. 또 연관된 질환도 있다. 과학적인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것 때문에 나는 알레르기, 편두통이나 불면증에 걸릴 가능성도 더 높다. 반면에 나는 이것 없는 사람보다 부자가 될 가능성이 26% 더 높다. 또 물안경 없이 바닷속에서 더 잘 볼 수 있다. 이거 진짜 맞다. 나는 물안경을 쓰지 않는다.

전 세계에서 나와 같은 사람은 총 인구수의 12% 정도라고 하는데 한국에는 5%밖에 안 된다고 한다. 이것이 뭘까. 그렇다. 난 왼손잡이다.

영국에서는 왼손잡이라는 점이 그저 조금 불편한 것 정도라고 생각했지만, 한국에 와 보니 훨씬 더 심하게 느껴졌다. 학창 시절,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하기 위해 교실을 찾았다. 그런데 학장이 알려주는 정보를 메모하려고 하니 책상 왼쪽에 손 받침대가 없었다. 그때부터 2년간 불편하게 수업을 들었다. 성적이 그렇게 좋지 않았던 것이 이것 때문인지 모르겠다. 밥 먹으러 갔을 때 자리가 왼쪽 끝일 경우가 많았는데 이 또한 왼손잡이에게는 매우 불편한 것이다.

사소한 불편도 많다. 대부분의 제품 디자인은 오른손잡이에게 편리하게 되어 있다. 지하철에서 표를 찍는 기계부터 가게 계산대에서 사인하는 기계뿐 아니라 엘리베이터를 부르는 버튼까지 다 오른손잡이들이 빨리 진행할 수 있도록 돼 있다. 또 볼링장에서 왼손잡이 전용 볼링공을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이 때문에 좋은 점수를 내지 못하고 놀림만 많이 당했다. 야구나 골프를 아예 해보지도 못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어렸을 때 왼손잡이들의 평균 사망 연령이 오른손잡이보다 9년 더 빠르다는 보고를 읽었다. 그 이유는 모든 기계의 안전장비가 오른손잡이를 보호하도록 돼 있어 왼손잡이가 쓰다 보면 사고가 날 가능성이 훨씬 더 높기 때문이란다. 그 연구는 나중에 틀렸음이 밝혀졌지만 그래도 부엌에서 칼을 쓰다가 손을 벤 사람 중에 왼손잡이 비율이 상당히 높다.

서양에서는 왼손잡이 전용 물품을 파는 가게를 많이 봤지만 한국에는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래서 회사가 제공했던 인간 공학적 마우스는 책상 서랍 안에 넣어 보관하고, 기본 마우스를 쓰고 있다. 가위를 쓸 일이 있을 때면 다른 직원에게 부탁도 한다.

인생이 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그래도 왼손잡이인 것이 나는 자랑스럽다. 또, 우리 딸도 왼손잡이인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나를 닮은 점이 하나 더 있어서 더 사랑스럽다고 느껴졌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아직까지는 자랑할 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딸이 학교에 다녀온 첫날 나에게 “학교에 가기 싫다”고 했다. 이유는 선생님이 사회 적응을 하기 위해서 오른손으로 쓰라고 했기 때문이다. 딸은 그날 스트레스를 엄청 받아서 다음 날에 학교 가기가 싫어졌던 것이다. 둘째 날에 내가 함께 학교에 가서 선생과 면담을 했다. 그런 구시대적인 사고를 절대 강요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뭐, 아마도 이런 일이 요즘은 한국에서 드문 사례겠지만 그 당시에는 기분이 상당히 나빴다. 그래도 최근에 보조 젓가락이든 뭐든 왼손잡이 전용 물품이 여기저기서 조금씩 팔리기 시작한다고 한다. 우리 왼손잡이들이 이제는 사회에서 인정받기 시작한 것일까?

13일은 ‘왼손잡이의 날’이었다. 여러분도 이날을 계기로 주변에 있는 왼손잡이들을 축하해 주기를 바란다. 오른손잡이 위주인 세상은 하루만이라도 왼손잡이들이 겪는 고충과 불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왼손잡이들은 소수지만 영향력이 강한 것 같다. 평균 지능지수도 약간 높고 왼손잡이 천재 또한 많다. 또한, 글로벌 리더들 중에 왼손잡이가 상당히 많으니 언젠가 우리 왼손잡이들이 뭉쳐 오른손잡이의 헤게모니를 파괴할지도 모른다.

폴 카버 영국 출신 서울시 글로벌센터팀장
#소수#편견#장애인#왼손잡이#왼손잡이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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