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란의 사물 이야기]종이책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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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이 얼마가 되든 일단 집을 떠날 때는 책부터 챙긴다. 어떤 책을 가져갈 것인지 꽤나 신중하게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다. 무게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 말로 된 책이 귀한 여행지에서 한 글자 한 글자 아껴가면서 읽어야 하는 만큼 의미가 있으면서도 새롭게 접해보는 책을 가져가고 싶은 마음이 커진다. 이번에도 고르고 고른 끝에 자신의 어머니에 관해 쓴 프랑스 작가의 장편소설과 산문집, 다른 계절에는 잘 읽지 않는 미스터리 책 등을 트렁크에 담았다.

비행기 안에서 제임스 설터의 ‘그때 그곳에서’라는 책을 후르르 넘기다가 “건축과 음식은 내 여행의 진짜 동기다”라는 구절을 보게 되었다. 그 문장 때문이었을까. 이맘때면 매년 떠나는 여름의 짧은 여행과 그 밖의 다른 여행에 관한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시간들의 진짜 동기는 무엇일까’ 하고. 책이라는 건 이상한 사물이어서 어떤 한 문장이나 단어 하나만 봐도 그것을 읽고 있는 나의 삶, 나라는 존재로 눈을 돌리게 할 때가 많다.

요즘 가장 핫한 장소라는 ‘긴자 식스’에 갔다. 그 복합 쇼핑몰 6층에 있다는 ‘쓰타야 서점’으로. 세계에서 첫 번째로 손꼽히는 아트 서점을 만드는 게 목표라는 소개 글을 봤는데 아닌 게 아니라 그 넓은 공간을 희귀 예술 서적들, 다양한 분야의 책들로 진열해 놓았다. 서가들 위의 높은 천장에 해둔 인테리어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책장 다섯 칸 높이 정도로 꽂혀 있는 흰 책들의 모형이. 서점 옆 커피숍에 자리를 잡고 앉았더니 책과 음료를 즐기라는 작은 표지가 붙어 있다. 얼마든지 머물러도 괜찮은 장소 같다. 가져간 미스터리 책을 읽다 고개를 들어보니 주위엔 온통 책 읽는 사람들이다.

어떤 책이 좋은 책인지 혹은 어떤 책을 쓰고 싶은지에 관해 질문 받고 자문하게 될 때면 이따금 중국 시인 베이다오가 시에 관해 쓴 문장을 이렇게 ‘책’으로 바꿔서 떠올려 보곤 한다. 좋은 책은 마치 횃불에 불을 댕기는 것과 같고, 때로는 그 빛이 돌연 사람을 깨어나게 할 수 있다고. 내 여행의 진짜 동기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다. 아닐지도 모르지만, 보고 느끼기라면 좋겠다. 마음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책을 읽고 만들고 쓰는 데 삶의 큰 의미를 두고 있으니까.

지난주에 소개한 ‘세계 지도의 탄생’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인간은 기껏해야 지상 2m 높이의 시선으로 주위를 둘러보고 확인하고 생활하고 활동한다.” 지금 서 있는 곳에서 더 먼 데를 볼 수 있는 정신의 힘은 보통의 삶에서라면 책을 펼칠 때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이 여름, 어떤 책들을 읽고 계신지? 유려한 문장으로 쓰인 미스터리와 여행 산문집을 추천합니다. 여름이니까요. ‘종이책’이라고 꼭 집어서 쓰는 건 일단 취향의 문제라고 해두겠습니다.
 
조경란 소설가
#제임스 설터#건축과 음식은 내 여행의 진짜 동기다#긴자 식스#여행 산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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