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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표의 근대를 걷는다]<80>성신여대 옆 권진규 아틀리에와 예술가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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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표의 근대를 걷는다]<80>성신여대 옆 권진규 아틀리에와 예술가의 죽음

이광표 논설위원·문화유산학 박사, 이광표기자 입력 2018-01-25 03:00수정 2018-01-2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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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북구 동선동의 권진규 아틀리에 입구. 권진규의 실루엣 사진과 부조작품이 인상적이다.
2006년 일본의 미술 명문 무사시노미술대는 개교 80주년(2009년)을 앞두고 졸업생 가운데 최고 작가를 선정하기로 했다. 공모 심사 결과, 한국의 얼굴 조각가 권진규(1922∼1973)가 뽑혔다. 2009년 가을엔 도쿄국립근대미술관과 무사시노미술대에서 권진규의 전작을 선보이는 특별전이 열렸다.

구상과 추상을 넘나들며 한국 근대조각의 틀을 마련한 권진규. 1959년 일본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그는 서울에 아틀리에를 마련했다.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곳에서 창작에 매진하며 ‘자소상(自塑像)’ ‘지원의 얼굴’ 등 수많은 명작을 탄생시켰다.

서울 성북구 동선동 성신여대 옆 작은 골목을 따라 계단을 몇 번 꺾어 올라가면 막다른 길이 나온다. 거기 권진규의 아틀리에가 있다. 이 작업실은 권진규가 직접 지었다. 내부로 들어서면 높게 탁 트인 천장 아래로 진열대, 받침대, 다락방, 나무 계단과 선반이 눈에 들어온다. 벽돌 가마, 우물, 흙 저장 공간도 있다. 테라코타 조각가의 작업실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풍경이다.

하지만 지금 진열대와 다락방 선반에 작품은 없고 포스터와 패널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곳곳에 자소상과 부조 작품의 복제품이 있지만 주인 없는 아틀리에는 생동감보다는 쓸쓸함이 더 진하다. 천장에는 옛날식 형광등이 걸려 있고, 줄에 매달려 길게 늘어뜨린 스위치에선 세월이 진하게 묻어난다. 아틀리에는 권진규의 생전에 늘 어두웠다고 한다. 세상이 그의 미술을 알아보지 못해서였을까. 1973년 5월 어느 날, 권진규는 ‘인생은 무(無)’라는 글을 남긴 채 여기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어느 평론가는 “권진규의 작품은 좀 어두운 곳에서 보아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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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진규가 세상을 떠난 뒤 아틀리에는 그의 여동생이 관리해왔다. 그러다 2006년 여동생이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에 기증하면서 공공의 공간이 되었다. 내셔널트러스트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사전 신청을 받아 매달 하루 이곳을 개방한다.

아틀리에의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작업 공간 옆 살림채에 권진규의 큼지막한 실루엣 사진이 걸려 있다. 그는 사진 속에서 먼 데를 응시한다. 아틀리에엔 ‘자신의 속을 들여다보고 있는 얼굴/…/권진규가 테라코타 되었다’고 노래한 황동규의 시도 걸려 있다. 얼굴을 통해 삶을 성찰했던 권진규. 그는 이곳에서 영원한 예술이 되었다.

이광표 논설위원·문화유산학 박사


#권진규 아틀리에#권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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