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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표의 근대를 걷는다]<70>건청궁의 자선당 주춧돌, 금 가고 깨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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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표의 근대를 걷는다]<70>건청궁의 자선당 주춧돌, 금 가고 깨지고

이광표 오피니언팀장·문화유산학 박사입력 2017-11-16 03:00수정 2017-11-1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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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위치를 떠나 경복궁 건청궁 뒤편에 있는 자선당의 기단부와 주춧돌. 대부분 심하게 훼손된 상태다.
건청궁은 경복궁의 북쪽 가장 깊은 곳에 있다. 그래서인지 늘 고즈넉하다. 건청궁에 들어서면 사람들은 빨려들듯 더 깊은 곳 막다른 담장 근처까지 이르곤 한다. 담장 너머는 청와대. 먼발치로 경찰들이 오간다. 거기 건물 기단부와 주춧돌이 눈에 들어온다. 건물은 보이지 않고 웬 주춧돌인가,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한다.

일제는 조선 식민 통치 5년을 맞아 1915년 경복궁에서 조선물산공진회라는 이름의 박람회를 개최했다. 이를 위해 1914년 경복궁의 여러 전각을 무참히 헐어냈다. 왕세자의 처소였던 자선당(資善堂) 건물도 헐렸다.

이때 한국에서 큰돈을 번 일본인 사업가 오쿠라 기하치로가 자선당에 눈독을 들였다. 그는 데라우치 총독에게 부탁해 자선당의 해체 부재들을 도쿄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빼돌렸다. 다시 건물을 세운 뒤 ‘조선관(朝鮮館)’이라는 간판을 달고 미술관으로 사용했다. 그런데 1923년 간토(關東)대지진으로 목조 건물이 불에 타버리고 기단과 주춧돌만 남게 되었다. 이후 세월이 흐르면서 자선당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1993년 건축사학자인 김정동 당시 목원대 교수는 근대건축 자료를 뒤지던 중 자선당의 행방을 알게 되었다. 곧바로 도쿄로 달려갔다. 오쿠라의 집은 1964년 도쿄 올림픽을 계기로 오쿠라 호텔로 바뀌어 있었다. 호텔과 그 주변을 조사하던 김 교수는 한적한 산책로에서 건물의 흔적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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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식이 알려지면서 기단부와 주춧돌을 반환받아 자선당 복원에 활용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했다. 결국 김 교수 등의 노력에 힘입어 1995년 국내로 돌아왔다. 석재 288개에 무게는 약 110t.

하지만 돌들의 훼손이 심각했다. 대부분 금이 가거나 깨졌고 강도도 매우 약해졌다. 복원에 활용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논의 끝에 복원엔 사용하지 않고 건청궁 뒤편 한적한 곳에 보존하게 되었다. 현재의 자선당 건물은 새로운 돌로 기단부를 만들어 복원한 것이다.

일본에서 돌아온 돌들을 보면 성한 것이 거의 없다. 대지진 때의 화재와 충격으로 부서지고 깨지고 금이 갔다. 모서리각을 유지하고 있는 돌도 드물다. 정원석으로 사용하기 위해 직육면체 돌의 귀퉁이를 부순 흔적도 보인다. 특히 정면 계단 돌들은 처참할 정도다. 명성황후가 시해된 곳, 건청궁. 이곳에서 금 가고 깨진 자선당 주춧돌을 만나다니,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다.

이광표 오피니언팀장·문화유산학 박사
#건청궁#경복궁#건청궁 자선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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