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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표의 근대를 걷는다]<68>독립기념관 총독부 첨탑, 그 상처와 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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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표의 근대를 걷는다]<68>독립기념관 총독부 첨탑, 그 상처와 해원

이광표 오피니언팀장·문화유산학 박사입력 2017-11-02 03:00수정 2017-11-0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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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천안시 독립기념관 야외에 전시 중인 조선총독부 중앙돔 첨탑(가운데)과 여러 철거 부재들.
그리스 신전 같기도 하고, 때론 로마 원형경기장 분위기도 난다. 계단식 원형 공간 여기저기 오래된 화강암 덩어리들. 절단한 기둥, 부서지다 만 기둥, 기둥 꼭대기의 장식물, 출입구 상부 구조물, 아치형 벽 장식, 발코니 난간 조각, ‘定礎石(정초석)’ 세 글자가 선명한 주춧돌…. 크기와 모양은 다르지만 모두 단단하고 육중하다. 어느 시대의 몰락을 말하는 듯 분위기는 황량하고 스산하다.

충남 천안시 독립기념관 야외 한쪽, 돌들이 모여 있는 이곳은 조선총독부 철거부재 전시공원. 서울 경복궁에 있던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하고 나온 부재의 일부를 보관 전시하는 곳이다.

가장 두드러진 것은 첨탑이다. 1926년 세워진 조선총독부 청사의 맨 꼭대기 중앙돔 위에 올라가 있던 바로 그 첨탑. 높이 8m, 무게 30t에 달한다.

1993년, 김영삼 정부는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하기로 했다. 역사 바로 세우기 및 경복궁 복원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이를 두고 찬반 논란이 뜨거웠다. “일제침략의 상징이자 치욕의 흔적인 총독부 건물을 완전히 철거해야 한다.” “건물을 없앤다고 치욕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그럴수록 보존해 역사의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완전 철거론, 원위치 보존론, 이전 복원론 등 여러 의견이 대두했다. “땅을 파고 총독부 건물을 땅속으로 내려뜨린 뒤 그 위 지표면을 강화유리로 덮어 건물을 밟고 다니면 어떻겠느냐”는 아이디어도 나왔다. 치열한 논란 속에서도 완전 철거로 결정이 났다. 우선 1995년 8월 15일 총독부 청사 중앙돔 첨탑을 먼저 철거했다. 이어 1996년 11월 전체 건물을 폭파공법으로 완전히 해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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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철거 부재들이 독립기념관으로 옮겨온 것이다. 부재들을 어떻게 전시할까 고민한 끝에, 땅을 5m 정도 파고 들어가 계단식 원형으로 공간을 만든 뒤 그 한가운데에 첨탑을 전시하기로 했다. 첨탑을 지표면 아래에 배치해 위에서 내려다보는 방식이다. 다른 부재들은 첨탑 주변으로 흩뜨려 배치했다. 흩어져 있는 화강암 부재 하나하나엔 지난날의 상처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첨탑을 내려다보도록 한 것은 상징적이다. 늘 고개를 들어 위로 올려다보았던 총독부 건물의 중앙돔 첨탑. 그걸 이제 우리가 내려다본다. 내려다본다는 건 일제 잔재 청산과 극복을 의미한다. 또한 상처에 대한 해원(解寃)이기도 하다.

이광표 오피니언팀장·문화유산학 박사
#독립기념관 총독부 첨탑#조선총독부 중앙돔 첨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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