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원의 명화를 빛낸 장신구]메리 1세의 대형 진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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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이워스 작 메리 1세 여왕의 초상화
한스 이워스 작 메리 1세 여왕의 초상화
메리 1세는 탈도 많고 여자도 많았던 영국의 헨리 8세와 첫 번째 부인 캐서린 왕비 사이에서 태어났다. ‘천일의 앤’으로 유명한 앤 불린과의 결혼을 위해 종교까지 개혁하며 어머니와의 이혼을 강행한 아버지의 행동은 그녀의 가슴에 가시처럼 박혀 있다가 잔인한 내면을 일구는 텃밭이 되었다. 여왕이 된 뒤 구교(가톨릭) 부활에 주력하며 300명 이상의 신교도를 화형에 처하는 등 잔혹한 통치로 ‘피의 메리’라는 별명을 얻었다.

플랑드르 화가이면서 영국에서 활약했던 한스 이워스(Hans Eworth)가 그린 메리의 초상화에는 의상과 장신구의 화려함까지 얼어붙게 하는 냉혹한 그녀의 면모가 확연하게 드러나 있다.

그러나 그녀의 가슴 한가운데 별처럼 떠 있는 펜던트는 그녀의 강한 기(氣)를 제압하며 더 도도하게 빛을 발하고 있다. 남편이 된 스페인의 펠리페 2세가 약혼 선물로 준 서양 배 모양의 대형 진주, 라 페레그리나(La Peregrina) 때문이다. 1503년 파나마 만(灣)에서 흑인 노예가 발견한 페레그리나는 223.8그레인(11.2g)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진주가 되었다. ‘방랑자’라는 이름을 갖게 된 이 진주는 그 파란만장함이 굴곡 많은 여인의 삶 못지않다. 메리 사후 스페인 왕실의 여인들을 빛내던 페레그리나는 1808년 나폴레옹이 스페인을 침공했을 때 프랑스로 가져와 나폴레옹 3세가 소유했다. 그는 왕정이 무너지면서 영국으로 망명할 때 이를 가져갔다가 돈을 마련하기 위해 팔았다. 20세기 초까지 영국 공작이 소유하다가 1969년 홀연히 경매에 나와 리처드 버턴이 3만7000달러에 구입해 엘리자베스 테일러에게 생일 선물로 주었다. 그녀가 죽은 뒤 이 진주는 2011년 다시 경매에 나와 1100만 달러라는 기록적인 가격으로 팔렸다.

이 초상화에서 메리 여왕은 다이아몬드와 루비 등으로 만든 목걸이와 진주가 촘촘히 박힌 모자, 온 손가락을 덮을 듯 착용한 반지 등으로 권위와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있지만 대부분의 삶이 그러하듯 화사함 뒤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가 더 짙어 보인다.

이강원 세계장신구박물관장·시인
#메리 1세#피의 메리#헨리 8세#라 페레그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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