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광해의 역사속 한식]비빔밥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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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광해 음식평론가
황광해 음식평론가
비빔밥? 혼란스럽다. 비빔밥의 다른 이름은 ‘혼돈반(混沌飯)’이다. ‘혼돈스러운 밥’이다.

‘한 대접에다가 생선과 채소를 섞어 세상에서 말하는 이른바 ‘혼돈반’과 같이 만들어 내놓으니, 전임이 두어 숟갈에 그 밥을 다 먹어 치웠다.’

조선 중기 문신 박동량(1569∼1635)이 쓴 ‘기재잡기’의 내용이다. 엄청난 양의 ‘밥=혼돈반’을 먹어 치운 주인공은 조선 전기의 무관 전임(?∼1509)이다. 그가 먹은 것은 밥에 생선과 채소를 넣은 것이다. ‘혼돈반=비빔밥’이다. ‘혼돈’은 뒤섞여 어지러운 상태다. 혼란, ‘골동(骨董)’과도 비슷하다. ‘혼돈반’이란 표현은 ‘기재잡기’의 시대인 17세기 초반에 사용했다. 비빔밥은 그 이전인 전임의 시대, 15세기에도 있었다.

실학자 성호 이익(1681∼1763)은 ‘성호전집’에서 “골동은 내가 싫어하지 않지만, 배를 불리기는 국밥이 최고”라고 했다. 이 시의 제목이 ‘국밥’인 걸 보면 내용 중 ‘골동’은 골동반(骨董飯), 즉 비빔밥이다. 비빔밥을 ‘혼돈반’이 아니라 ‘골동(반)’이라고 표현했다. 100여 년의 시차를 두고 비빔밥은 ‘혼돈반’에서 ‘골동반’으로 바뀐다.

비빔밥을 두고 혼란스럽다고 하는 것은 ‘골동’ 혹은 ‘골동반’이라는 표현 때문이다. 조선시대 대부분의 기록에 나타나는 비빔밥의 공식적인 이름은 ‘골동반’이다. 19세기 말 기록물로 추정하는 ‘시의전서’에서 ‘골동반=부Z밥’이라고 표기하기 전에는 대부분의 기록에 골동반만 나타난다.

“골동반은 중국 음식이고 우리 비빔밥과 다르다”는 주장도 있다. 중국식 골동반은 그릇에 미리 쌀 등 곡물과 채소, 어육 등을 넣고 밥을 짓는다. 비빔밥은 비슷하지만 다르다. 밥을 지은 다음 밥 위에 조리한 채소, 고기, 해물 등을 얹고 비벼 먹는다. 비빔밥은 먹기 전, 각종 고명을 마음대로 빼거나 더할 수 있다. 중국식 골동반은 일본식 솥밥인 ‘가마메시(釜飯· 부반)’ 혹은 우리의 무밥, 콩나물밥과 닮았다. 다만 일본식 솥밥을 우리 콩나물밥처럼 비벼 먹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

‘골동’ ‘골동반’이란 표현은 중국에서 건너왔다. 명나라 초기인 1414년에 완성된 ‘성리대전’에 이미 ‘골동반’이 나타난다. ‘골동(汨董)은 골동(骨董)과 같은 말로, 잡되다는 뜻이다. (중국) 강남 사람들이 물고기, 채소 등을 함께 넣고 끓인다. 즉, 골동갱(骨董羹)이다.’

중국 명청시대 속어사전인 ‘이언해’에서는 ‘물고기, 고기 등을 밥에 넣고 만든 것이 곧 골동반’이라고 했다. 뒤섞어 혼란스럽다는 뜻인 ‘골동’은 그 뿌리가 깊다. 중국 송나라의 소동파도 이미 ‘골동’이란 단어를 사용했다. 실학자 이규경(1788∼?)은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 “어떤 사람은 (골동이란 단어가) 소동파의 골동갱에 근원하고 있는 것이라 하지만, 소동파의 골동이 어디서 왔는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소동파는 문집 ‘구지필기’에서 ‘라부돈의 노인이 음식을 여러 가지 모아서 함께 끓였다. 곧 골동갱이다’라고 했다. ‘골동’의 시작이다.

조선 초기에도 민간의 자연발생적인 비빔밥은 있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집 안에서, 제사 후에, 혹은 일터인 들판에서 밥과 나물을 비벼 먹었을 터이다. 조선 후기부터 중국에서 받아들인 ‘골동반’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을 뿐이다. 비빔밥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비빔밥, 혼돈반, 골동반 등 다른 이름으로 불렀을 뿐이다.

조선 후기에도 ‘골동’이란 표현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정조 7년(1783년) 7월, 공조판서 정민시의 상소문에 ‘(나라가) 어둡고 어지러워져 허위가 판을 치는 골동(骨董)과 같은 세상’이라는 표현이 나타난다(조선왕조실록). 골동은 여전히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조선 후기부터는 ‘시의전서’의 표현대로 ‘골동반=부Z밥=비빔밥’이 된다.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오늘날 우리도 쉽게 만나기 힘든 여러 가지 비빔밥(골동반)이 나타난다. ‘비빔밥, 채소비빔밥, 평양 것을 으뜸으로 친다. 다른 비빔밥으로는 갈치, 준치, 숭어 등에 겨자 장을 넣은 비빔밥, 구운 새끼 전어를 넣은 비빔밥, 큰 새우 말린 것, 작은 새우, 쌀새우를 넣은 비빔밥, 황주(황해도)의 작은 새우젓갈 비빔밥, 새우 알 비빔밥, 게장 비빔밥, 달래 비빔밥, 생호과 비빔밥, 기름 발라 구운 김 가루 비빔밥, 미초장 비빔밥, 볶은 콩 비빔밥 등이 있다. 사람들 모두 좋아하고 진미로 여긴다.’
 
황광해 음식평론가
#비빔밥#기재잡기#혼돈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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