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유리 같은데… 뜯어보니 치밀한 수공품, 양갈비 모양인데… 먹어보니 돼지 스테이크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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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옆 식도락]⑥KDB아트스페이스 신형섭전, 쉐 조세피나의 이베리코 등심

깨지는 재료(유리) 이미지를 잘라 붙일 수 있는 재료(종이)로 구현한 신형섭 작가의 ‘planned accident’(위쪽 사진). 실물을 뒤에서 뜯어보기 전에는 얼개를 짐작하기 어렵다. ‘쉐 조세피나’의 이베리코 등심 역시 한 입 베어 물
기 전엔 넘겨짚기 어려운 맛이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깨지는 재료(유리) 이미지를 잘라 붙일 수 있는 재료(종이)로 구현한 신형섭 작가의 ‘planned accident’(위쪽 사진). 실물을 뒤에서 뜯어보기 전에는 얼개를 짐작하기 어렵다. ‘쉐 조세피나’의 이베리코 등심 역시 한 입 베어 물 기 전엔 넘겨짚기 어려운 맛이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멀끔한 이미지를 위한 장식물이겠거니. 서울 강남구 KDB대우증권WMC역삼역아트스페이스에서 내년 1월 15일까지 열리는 신형섭 씨(45)의 개인전 초입 인상은 그랬다. WMC(Wealth Management Center)는 10억 원 이상 금융자산 관리를 맡기는 고객만 상대한다. 후줄근한 코트 차림 기자가 엘리베이터 3층에서 내리자 한 직원이 “여긴 증권사입니다”라며 잘못 찾아왔다는 눈짓을 보냈다.

작품과 작가의 속내가 불편한 마음을 가셔냈다. ‘planned accident(계획된 사고)’라는 표제 아래 엮은 작품 24점은 얼핏 모두 ‘총 맞아 깨진 우윳빛 반투명 유리’를 연상시킨다. 재료를 툭 쳐 깬 뒤 고착시켜 걸어놓은 윤곽이라 짐작했다. 그런데 다가가 뜯어보니 비정형을 가장한 정형이다.

표피 재료는 수채화 용지다. 인터넷에서 ‘총 맞은 유리가 깨진 모양’을 찾아 그린 뒤 칼로 쪼갰다. 건축모형 재료인 폼보드로 표피 뒤 굴곡의 뼈대를 만들고 공업용 접착제로 붙였다. 깨지지 않는 재료를 잘라 붙여 깨지는 재료의 순간적 이미지를 붙든 것. 18년간 미국 뉴욕에서 활동하다 올해 홍익대 조교수로 초빙된 신 씨는 재료의 성질로부터 얻은 아이디어에 치밀한 수공을 더한 작품을 선보여 왔다.

한 층 아래 레스토랑 ‘쉐 조세피나’(02-3288-3700) 오재안 셰프(38)의 추천요리는 얼핏 증권사 VIP 고객이 찾을 법한 양갈비 스테이크 모양새다. 한 입 베어 무니 양고기가 아니다. 봄부터 시작한 이베리코 등심. 스페인 목초지에서 오로지 도토리만 먹여 기른 흑돼지 고기다. 하몬(소금에 절여 건조시킨 돼지다리 햄) 재료로 익숙한 것을 스테이크로 냈다. 뽀얗게 올린 소스는 겨자? 누린내를 잡기 위해 생크림, 안초비, 케이퍼, 마늘, 양파, 월계수 잎을 자박자박 끓여낸 소스다. 겨자는 한 방울도 안 들어갔다.

이베리코 스테이크는 바짝 익히지 않는다. 약한 불 그릴에 7분 정도 올려 육즙과 식감을 살린다. 썰어낸 중심에 붉은 기가 감돈다. ‘돼지고기가 설익었다’고 항의하는 손님에겐 한 번 다시 권한다. “일단 맛을 보시라”고.

오 셰프는 유학파 요리사가 아니다. 식당에서 일한 모친 어깨 너머 익힌 솜씨를 군 복무 중 주방에서 확인하고 생업 현장에 뛰어들어 새우 머리 다듬기부터 시작했다. 자질을 인정받아 20대 중반에 이태원 유명 레스토랑 셰프로 발탁됐다. 말투는 둥글지만 요리에는 날이 서 있다. 설치작품 재료에 어울리도록 담당 공무원을 끈덕지게 설득해 육교 도색을 바꿔버리기도 한 신 작가의 허허실실 고집과 닮은꼴이다.

북어와 토끼털을 어색함 없이 기워 붙여내는 신 작가의 ‘재료탐험’이 한층 더 펼쳐놓고 드러날 다음 전시가 기다려진다. 갤러리 측은 “증권사 용무 없이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하지만 오후 5시 직전에 찾아왔다간 “근무시간 끝났으니 어서 나가라”는 WMC 창구직원의 재촉을 들을 가능성이 크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KDB아트스페이스#신형섭전#쉐 조세피나#이베리코 등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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