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갑식의 뫔길]아들의 분노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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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입대한 신병과 관련한 각종 정보를 제공해 인기를 얻고 있는 앱 ‘더 캠프’. 더캠프 캡처
막 입대한 신병과 관련한 각종 정보를 제공해 인기를 얻고 있는 앱 ‘더 캠프’. 더캠프 캡처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추석 연휴 중 가장 반가운 선물은 휴대전화로 걸려온 아들의 목소리였습니다.

3일 현역으로 논산훈련소에 입대한 아들과의 첫 통화였습니다. 한 주에 한 번 전화 통화가 가능한데 이상하게도 전화를 놓치곤 했습니다. “훈련 잘 받고 건강하게 잘 있어요.” “사격과 화생방 훈련을 걱정했는데 무사히 통과했어요.”

아들의 목소리는 3분 안팎의 짧은 전화라 평소보다 빨랐지만 밝았습니다. 옆에서 휴대전화의 스피커폰으로 듣던 아내가 “먼저 아빠에게 전화하고 안 되면 내게 하는 것 같네”라고 살짝 투정하자 아들은 “아빠랑은 계속 연결이 되지 않아 그렇다”고 하더군요. 다시 “보스턴(레드삭스)과 (뉴욕)양키스는 어떻게 됐어요?” “한국 야구는?”이라는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인터넷을 이용할 수 없으니 외부 소식이 궁금했던 모양입니다. 짧은 통화는 가족 안부로 시작해 야구로 끝났습니다.

대학 재학 중 입대한 아들은 스포츠, 특히 야구 마니아입니다. 메이저리그는 보스턴, 국내 야구는 두산의 열혈 팬이죠. 고등학교에 다니던 4, 5년 전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으로 두산과 롯데의 경기를 보다 생긴 일입니다. 장난기가 발동해 ‘이대호가 홈런 때려 경기가 뒤집힌다’고 예고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딱! 소리와 함께 이대호의 타구가 펜스 밖으로 훌쩍 넘어갔습니다. 곧이어 제 뒤통수에서도 딱! 소리가 났습니다. 백주대낮에 야구 때문에 아들이 ‘아비’를 치다니…. 화가 나 살짝 건드리려 했는데 너무 세게 때렸다고 어쩔 줄 모르며 거듭 사과하더군요. 황당하지만 그냥 넘어갈 수밖에 없었죠. 그 뒤로 이대호 선수가 타석에 설 때마다 둘이 씨익 웃는 가족사의 ‘사건’입니다.

아시아경기는 나름 체력을 다지며 입대를 기다리던 아들의 중요한 소일거리 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야구 중계가 있을 때마다 아들의 분노는 치솟았습니다. “실업과 아마추어 야구 선수를 상대하기 위해 KBO리그를 중단해야 하는가?”, “몇몇 선수는 국가대표로 선발될 만한 성적이 아니다”, “경찰청과 상무 입단도 특혜인데, 그것도 싫어 금메달로 병역 면제를 받으려고 나섰다”는 비판이 이어졌습니다. 맞장구를 치면서도 곧 입대라 걱정도 되는 게 부모 마음이었죠.

입대 이틀 전인 1일 한국과 일본의 야구 결승전을 보던 어색한 기억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아들은 “○○아, △△아, 같이 (군대) 가즈아∼”를 외치며 일본 응원에 나섰고, 저는 당연히 한국을 응원했죠.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일본을 응원하느냐고 하자 아들은 조목조목 반박하고 나섰습니다. 3회 무렵 “가즈아”를 연발하던 아들의 입에서 탄식이 나왔습니다. 일본 선수 유니폼의 팔뚝 부분에 ‘저팬 사무라이’ 문구가 있다며 “도저히 응원 못 하겠다”며 백기를 들었습니다.

입대 당일 우리 가족은 머리를 짧게 깎은 아들이 틀어놓은 김민우의 ‘입영열차 안에서’,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를 연신 들으며 논산으로 향했습니다. 훈련소의 입영심사대는 입대하는 신병과 1인당 2, 3명꼴의 가족들로 수천 명이 몰렸습니다. 입소식을 위해 연병장에 모인 신병들은 사복 차림이라 그런지 어색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신병들이 6주 뒤면 각 잡힌 군인으로 변한다는데 속으로 그럴까, 하면서 발길을 돌렸습니다.

요즘 가족의 일과 중 하나는 육군이 서비스를 시작한 군 복무 관련 온라인정보 서비스 앱 ‘더 캠프(THE CAMP)’를 찾아보는 겁니다. 이곳에서 군복 입은 낯선 아들의 거수경례를 볼 수 있었습니다. 추석을 앞두고는 동료 분대원과 찍은 ‘부모님 사랑합니다’라는 단체 푯말 퍼포먼스와 동영상도 볼 수 있더군요. 군대가 이런 서비스도 하냐는 약간의 놀라움과 조금씩 변화하는 아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흐뭇함이 교차합니다.

아시아경기를 통해 불거진 병역 특례의 문제점에 대한 아들 세대의 비판은 백번 옳았습니다. 그래도 아들의 분노를 누그러뜨리려고 애쓴 것은 군 복무 18∼20개월의 출발을 원망과 불복으로 시작하는 게 싫었습니다. 그런 마음이 그대로라면 그 시간에 훈련을 견디는 게 얼마나 힘들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습니다.

아들의 분노는 정당합니다. 그럼에도 군복무를 받아들인 그의 목소리에서는 부모에 대한 사랑, 동료에 대한 믿음, 당당하게 군복무를 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공정하다면 기꺼이 받아들이는 게 청춘입니다. 심지어 기성세대가 만든 공정함의 허점조차 받아들이는 관대함과 건강함도 볼 수 있었습니다. 단, 아들 세대들이 더 이상 분노를 느끼지 않고 자랑스럽게 군 복무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하는 게 시급합니다.

3주 뒤 대한민국 육군 이등병들의 멋진 행진을 기대해 봅니다.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dunanworld@donga.com
#2018 아시안게임#야구#병역 특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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