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녀가 막 다녀간 듯… ‘별천지’ 山中온천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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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하 여행 전문기자의 休]산큐패스로 떠나는 규슈 온천마을 버스여행
<1> 오이타현

우케노구치 온천의 료칸 신세이칸에 있는 로텐부로는 담장이나 가림막이 아니라 이렇듯 우거진 숲의 나무에 둘러싸여 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소설 ‘설국’ 작가)가 여기에 머물며 집필했던 것도 이런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그의 심미안을 충족시켜서가 아닌가 싶다. summer@donga.com
우케노구치 온천의 료칸 신세이칸에 있는 로텐부로는 담장이나 가림막이 아니라 이렇듯 우거진 숲의 나무에 둘러싸여 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소설 ‘설국’ 작가)가 여기에 머물며 집필했던 것도 이런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그의 심미안을 충족시켜서가 아닌가 싶다. summer@donga.com
유후인과 벳푸는 오이타현의 간판급 온천타운이다. 그런데 이 둘 사이엔 애증의 그림자가 짙다. 2900곳에서 하루 13만 kL 온천수가 용출되고 지구상 11가지뿐인 온천수질 중 10가지를 보유한 벳푸는 온천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명실상부한 톱클래스, 그랑프리다.

반면 자동차로 30분 거리 산골짝의 유후인은 1920년대 미국인이 범선으로 태평양을 건너 찾을 만치 흥청대던 벳푸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기만 해온 가난한 농촌이었다.

그런 유후인도 1950년대부턴 개발에 나섰다. 하지만 기치는 달랐다. ‘제2의 벳푸가 되지 말자.’ 대규모 투자보다는 자연과 온천이 조화를 이루는 소박함을 지향한 것. 주민은 똘똘 뭉쳐 정부 주도 대규모 개발도 마다하고 옛 모습 지키기를 고수했다. 그러자 1990년대 유후인은 벳푸를 능가했다. 마을에 간직된 옛 정취에 매료돼 찾고 싶은 온천으로 소문나면서다. 하지만 역사란 되풀이되게 마련. 유후인도 이젠 벳푸의 전철을 밟는다. 자본 집중으로 인한 상업화에 발목을 잡힌 것이다.

그러면서 오이타현엔 제2의 유후인이 등장했다. 더 깊은 산중, 덜 알려진 온천에 대한 갈망의 소산이다. 오이타현 고코노에정(町)의 우케노구치(筌の口)도 그런 곳이다. 우케는 통발. ‘통발 입구’란 막장 초입, 오지(奧地)의 또 다른 표현이다. 그렇다. 심심산천 구수이케이(九醉溪) 계곡의 한 골짜기, 료칸 신세이칸(新淸館)이 주민 공동 운영 마을욕장과 나란히 있는데 소박하면서 고풍스럽다.

신세이칸엔 로텐부로(露天風呂·노천온천탕)가 하나뿐이고 그건 혼탕. 그 조우가 인상적이었다. 홀로 온천을 즐기는 여성 욕객 모습이 아니라 난생처음 보는 물 빛깔 때문이다. 밝은 황톳빛. 규슈관광진흥기구가 소개한 ‘칠색(七色)온천’에 우케노구치는 ‘황색’온천이다. 일본 전국 100여 온천을 섭렵했어도 이런 물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놀라움은 계속됐다. 탕 바닥에 쌓인 미끈한 침전물인데 이건 빨갰다.

천질은 나트륨과 마그네슘이 함유된 유(황)산염천. 사전엔 동맥경화증과 상처, 화상에 효험이 있다고 씌어 있다. 그런데 내겐 관심 가는 게 따로 있었다. 일본에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안겨준 소설 ‘유키구니(雪國)’의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여기서도 집필을 했다는 것이다. ‘유키구니’는 근 4년의 집필 끝에 탄생했는데 소설의 무대와 글을 쓴 데가 똑같이 눈 고장의 산중온천(유자와·니가타현) 료칸(다카항·高半)이다. 우케노구치에선 ‘나미치도리(波千鳥)’란 걸 썼다고 한다. 숲 안의 로텐부로에 몸을 담그자 비로소 새들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과연…. 주변 풍광은 그의 심미안을 충족시킬 만했다.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의 일곱 자 그대로다.

료칸은 나루카와(鳴川) 계곡 물가. 산책 도중 낯익은 표지를 만났다. 올레길의 ‘간세’(화살 형태 이정표)다. 알고 보니 여긴 규슈올레(총 17개 코스)의 고코노에·야마나미 코스. 여기서 차로 5분 거리의 고코노에 ‘유메’ 오쓰리하시(夢大吊橋·해발 777m 위치)에서 시작해 목가적 풍광의 한다(飯田)고원을 지나 화산연봉 풍광이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구주렌잔(九重·久重連山)국립공원의 조자바루(長者原)로 이어진다.

일본 최대 규모의 현수인도교인 ‘유메’ 오쓰리하시(오이타현 고코노에정). summer@donga.com
일본 최대 규모의 현수인도교인 ‘유메’ 오쓰리하시(오이타현 고코노에정). summer@donga.com
이 현수교는 구스강의 구수이케이를 가로지르는 ‘하늘 위 산책로’(지표로부터 173m). 일본 전국에서 현수인도교로는 최장(390m)이다. 우케노구치 온천의 구수이케이를 벗어나면 해발 800∼1200m 한다고원인데 여기선 구주렌잔(규슈 최고봉 구주산과 아소산 유후다케 쓰루미다케 등 연이은 화산군집)이 조망된다. 종착점인 조자바루(온천)엔 일본 최대 규모의 다테하라 습원(람사르협약 등재)이 있고 그 산책로(2.4km)도 걷는다.

조자바루엔 규슈 횡단버스가 선다. 벳푸와 구마모토시를 오가는데 구마모토행은 인근 마키노토 고개(해발 1330m)를 넘는다. 고갯마루(휴게소)는 구주산(1787m) 등반로 초입. 꿈의 현수교에서 올레길을 걸으며 우케노구치(1박) 조자바루(1박) 지나 구주산에 오르고 구마모토·벳푸를 찾는다면 이 봄에 멋진 여행이 될 듯싶다. 인기 만점 구로카와 온천(구마모토현)도 규슈 횡단버스로 연결된다. 마키노토 고개에서 16km.

※ 여행 정보

찾아가기 ◇고코노에 ‘유메’ 오쓰리하시(九重‘夢’大吊橋):
후쿠오카 시내에서 유후인행 버스로 고코노에 톨게이트에서 하차, 그 자리에서 이 다리행 커뮤니티 버스로 갈아탐. 커뮤니티 버스는 산큐패스 적용 안 돼 요금(300엔) 지불. ◇우케노구치 온천: 올레길 따라 걸어 내려오거나 커뮤니티 버스 승차(우케노구치 정류장 하차).

우케노구치 온천: 신세이칸(0973-79-2131)과 마을욕장이 나란히 개울가에 위치. 료칸 숙박객은 마을욕장 이용 무료, 비숙박객은 각각 500엔과 200엔. 신세이칸 온천탕(실내 남녀·노천탕)은 오전 9시∼오후 10시, 마을욕장은 24시간(청소시간 제외) 운영.

규슈올레: 고코노에·야마나미 코스 12.2km(4, 5시간), 난이도는 중간. www.welcomekyushu.or.kr

규슈타비(九州旅): 산큐패스 규슈 여행에 관한 모든 정보를 상세히 알뜰하게 챙길 수 있는 네이버 블로그. 산큐패스를 제공하는 퀴즈 이벤트가 수시로 열리고 할인 정보도 뜬다. kyushutabi.net/

▼고마워서 ‘산큐 패스’… 교통비 비싼 일본에서 버스비 걱정 끝▼

규슈 7개현 2400개 버스 노선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할인승차권

일본 여행길에 버스는 훌륭한 교통수단이다. 어디든 속속들이 드나들며 원하는 곳에 데려다줘서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것이 나 홀로 여행자의 주마간산에도 딱 그만이다. 어디 그뿐인가. 정류장마다 타고 내리는 이를 보며 일본의 일상을 좀 더 가까이서 접하게 되니 그 또한 강점이다. 하지만 결정적인 흠이 있다. 우리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싼 요금이다. 일본 버스요금은 거리 병산제다. 어쩌다 먼 거리를 이용하면 요금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쌀 때도 있다.

그런데 규슈에서만큼은 그런 걱정을 던다. 7개 현의 거의 모든 노선(2400개)을 일정 기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할인승차권 덕분이다.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봤을 ‘산큐패스(SunQ Pass·사진)’가 그것이다. 산큐는 ‘생큐(Thank you)’의 현지 발음이자 ‘햇빛(Sun)이 좋은 큐슈(Q)’. 유럽 각국 철도를 일정 기간 무제한 이용하는 유레일패스와 동일한 ‘규슈지역 버스패스’다. 시내버스는 물론이고 특급(고속)과 밤샘 장거리 침대버스에 일부 선편까지 포함한다. 다리로 이어진 혼슈 최남단의 야마구치현의 시모노세키시까지 확장 통용된다.

이런 지역버스 할인권으로는 산큐패스가 지구상 유일하다. 그게 일본의 큰 섬 네 개(혼슈, 규슈, 시코쿠, 홋카이도)에서도 유독 여기에만 있는 데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일본 최초의 관광버스가 여기서 탄생한 게 그 배경이다. 거긴 온천타운 벳푸시. 1925년 가메노이 버스는 벳푸의 다양한 지옥탕을 순례하는 관광버스 운행을 개시했다. 차량은 미국 포드사 것. 버스엔 여승무원이 동승했다. 승객을 돌보고 관광지를 안내하는 가이드 겸 안내양인데, 이 역시 세계 최초. 6년 후 도쿄항공수송회사는 ‘공중의 여급사 에어 걸(Air Girl)을 여인(麗人·수려한 외모의 여인)들로 선발한다’고 발표했는데 이 역시 가메노이 버스에서 비롯된 아이디어였다.

이런 획기적인 시도의 주인공은 가메노이 창업주 후즈카와 이사오다. 그는 규슈의 관광 상품성을 일찍이 간파한 선각자였다. 1920년대에 이미 규슈 도로 시스템을 나가사키(일본 최초 개항장) 중심으로 구축하고 벳푸 근교에 골프장 건설을 제안했다. 지도 표기용 온천마크(♨)를 관광마케팅에 활용한 최초의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1928년 관광촉진단을 이끌고 미국 캘리포니아주로 건너가 로스앤젤레스의 할리우드 선셋대로에서 북을 치며 거리행진을 펼쳤다. 벳푸 온천 관광객 유치 가두 활동이었다. 그때 일행은 온천마크를 등에 염색한 핫피(半被·허리 혹은 무릎까지 오는 상의로 옷깃에 옥호나 상표를 넣는데, 주로 축제 참가자들이 입는다) 차림이었다. 이듬해 벳푸항엔 수백 명의 미국인을 태우고 롱비치항(로스앤젤레스)을 떠난 범선이 입항했다. 오이타역 앞에 그의 동상이 선 건 그가 ‘규슈 관광의 전설’이라서다.

산큐패스: 공급자는 규슈 7개 현 49개 버스회사로 구성된 운영위원회, 주축은 규슈 최대기업 니시테쓰(서일본철도). 가메노이 버스(오이타현)도 니시테쓰 소유다. 한국 판매는 오래됐어도 이용이 본격화한 건 5년 전. 2013년 연간 1만2300장에 불과했던 게 현재는 23만 장으로 급등했다. 일본 여행 추세가 소도시 찾기로 바뀐 덕분인데, 그걸 리드한 게 니시테쓰다. 니시테쓰는 이중 가격제로 일본보다 저렴하게 공급한다.

현재는 북부 규슈 3일권(7000엔)과 전 규슈 3·4일권(1만·1만4000엔)뿐. 7월엔 남부 규슈 3일권(6000엔)이 한국에서도 발매(일본은 이달 1일부터·8000엔)된다. 산큐패스의 특장점은 전용 블로그(네이버 ‘큐슈타비’)와 전용 가이드북. 덕분에 일본어를 못해도 혼자 원하는 곳을 잘 찾아갈 수 있다. 블로그 ‘규슈타비’엔 패스 활용법과 여행지 정보가 상세히 축적돼 있다. 패스 구매는 여행사와 쇼핑몰에서 한다. 할인행사도 잦다.

니시테쓰 홍보관도 13일 공항철도 서울역(3층 환승지역 개찰구 내)에 설치돼 5월 20일까지 운영된다. 상담뿐만 아니라 기념품도 준다.

고코노에(일본 오이타현)에서 조성하 여행 전문기자 summer@donga.com
#일본 여행#유후인#온천#산큐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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