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계 숨은 꽃]LG아트센터 하우스매니저 이선옥 씨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6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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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뜰살뜰 손님맞는 공연장 ‘안방마님’

하우스매니저 이선옥 씨가 공연 시작 전 공연장 입구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안내 방송을 하고 있다. 이 씨는 공연 리허설과 대본까지 숙지한 뒤 공연 당일 객석 상황까지 감안한 안내 문구를 즉석에서 만든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하우스매니저 이선옥 씨가 공연 시작 전 공연장 입구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안내 방송을 하고 있다. 이 씨는 공연 리허설과 대본까지 숙지한 뒤 공연 당일 객석 상황까지 감안한 안내 문구를 즉석에서 만든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색깔 있는 명품 공연들로 인정받는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는 관객들 사이에서 입소문 난 명물이 있다. 공연 시작과 중간 휴식 사이의 위트 넘치는 안내 방송이다.

최근 국립현대무용단의 공연 ‘호시탐탐’ 때는 이런 안내가 나왔다. “호시탐탐 휴대전화와 카메라를 사용하려고 하시다가는 호랑이에게 냅다 콧등을 걷어차일 수도 있습니다.”

무대 위로 객석을 올렸던 이자람의 1인극 ‘억척가’의 중간 휴식이 끝나고 2부가 시작될 때는 이런 안내 방송이 작렬했다. “여러분은 최첨단 서라운드 공법의 가설 객석에서 김순종, 안나킴, 억척네로 3단 변신한 여인의 희로애락을 온몸으로 체감하고 계십니다. 깊은 진동과 진한 울림에도 안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 안심하시기 바랍니다.”

가수 박정현의 콘서트에선 노래 제목을 패러디한 안내로 객석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공연 중 휴대전화나 녹음기, 카메라의 액정 불빛이 켜지는 순간 제명이 되는 게 아니고 다른 사람에게 사랑보다 깊은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이 촌철살인의 안내 방송들은 단 한 사람의 작품이다. 2000년 LG아트센터 개관 때부터 하우스매니저를 맡고 있는 이선옥 씨(43)다.

공연장의 ‘안방마님’인 하우스매니저는 밖에서 생각하는 ‘환상의 직업’과 ‘공연계 대표 3D 직업’이라는 현실 사이 어디쯤에 있다. 이 씨가 꼽는, 하우스매니저에 대한 지배적인 편견은 ‘공연장 지키면서 공연을 마음껏 보는 직업’이다.

한편으로는 맞는 말이다. 지난 한 해 동안 이 씨는 300회 정도의 공연을 함께했다. 하지만 공연에 집중할 여유는 없었다. 공연장 편의시설 점검, 고객 불편사항과 공연 도중의 돌발 상황 처리로 바쁘기 때문이다.

이 씨는 “통솔력과 돌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순발력이 필요하다. 사람 대하는 것을 좋아해야 하고, 무엇보다 공연과 공연장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일상은 바쁘게 돌아간다. 오전 11시 반쯤 출근해 낮엔 대관 업무를 보고, 오후 5시 반부터 ‘손님맞이’ 준비에 나선다. 무대 커튼 밖으로는 모두 하우스매니저 소관이라 공연장 출입구, 화장실, 매점 등을 다 살펴야 한다.

점검이 끝나면 어셔(안내원) 25명을 모아 그날의 주의 사항을 전달하고 공연장 곳곳에 배치한다. 공연 시작 30분 전 객석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열면서부터는 ‘전쟁’이다. 공연장에 늦게 도착해 ‘왜 못 들어가게 하느냐’고 떼쓰는 관객, 시야가 가려지니 앞 사람을 다른 자리로 옮겨 달라는 관객, 어린이 관객의 떠드는 소리에 관람을 망쳤으니 환불해 달라는 관객들을 상대하느라 진땀 빼기 일쑤다. 공연이 끝나도 일일 보고서 작성까지 하고 사무실을 나서는 시간은 항상 자정 무렵. 하루 2회씩 공연을 하는 주말은 더 바쁘다.

2007년 이 씨의 아이디어로 시작된 LG아트센터의 라이브 안내방송은 즉석에서 진행한다. 이 씨는 “몇 가지 키워드만 적어놓은 종이를 들고 관객들의 긴장을 풀어주는 말을 즉흥적으로 펼쳐놓는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방송연예과를 전공한 뒤 음악당, 기획사, 방송사 무대진행요원을 거쳐 부산 사직구장과 대형마트 안내방송까지 맡았던 이 씨의 인생역정이 녹아든 산물이다.

국내 공연장 하우스매니저는 전국에 50여 명밖에 안 된다. 직원들이 돌아가면서 맡거나 계약직 직원으로 뽑는 경우가 많다. 주말이 없는 점을 감안하면 급여도 박봉이다. 그래도 이 씨의 보람은 크다. 13년 동안 공연장을 항상 지키다 보니 공연을 자주 했던 스태프, 배우, 단골 관객들이 가족처럼 느껴질 때가 특히 그렇다. “누군가로부터 LG아트센터에서 했던 어떤 공연이 좋았다는 말을 들으면 그때 그곳에 내가 있었다는 사실이 굉장히 자랑스러워요.” 언젠가는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를 좋아한 단골 관객이 암에 걸려 요양시설에 있다는 걸 알고는 빌리 역을 맡은 아역배우에게 영상 편지를 부탁해 동영상을 전한 적도 있다고 그는 귀띔했다.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문화#공연#공연계 숨은 꽃#하우스매니저#이선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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