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에 만나는 詩]영원할것 같은 상처도 시간이 가면 아물리니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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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이면 생각나는 장면. 실연(失戀)에 상처받은 나를 강아지 짜부가 위로해준다. 죽을 일도 아닌데 왜 우느냐는 표정으로. 이윽고 짜부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힘차게 계단을 뛰어 내려가 버린다. 나는 병색이 짙은 아버지가 계신 시골집에 찾아가, 짜부가 내게 그랬듯이 아버지를 위로한다. 아직은 안 죽는다고. 지금 생각하면 모두 간지럽고 우스운 일일 뿐인 것을.

‘이달에 만나는 시’ 6월 추천작으로 황병승 시인(43·사진)의 ‘가려워진 등짝’이 선정됐다. 언어실험을 추구하는 미래파의 대표주자인 황 시인의 다른 시들과 달리 ‘가려워진 등짝’에는 따뜻한 감성이 배어있다. 지난달 출간된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육체쇼와 전집’(문학과지성사)에 수록됐다. 이건청 장석주 김요일 이원 손택수 시인이 추천에 참여했다.

이 시는 시인의 개인적 경험담을 바탕으로 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서사가 많이 나타나는 그의 시들은 대부분 영화나 책 등 간접경험을 토대로 새롭게 지어낸 것이라고 시인은 말한다. 한때 세상 전부인 줄 알았던, 영원할 줄 알았던 상처도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아문다. 시간이 흘러 그 상처는 그저 시원하게 긁어버리면 그만인 가려운 등짝 정도에 불과해진다고 시인은 표현한다.

손택수 시인은 “황병승이야말로 우리 시의 ‘가려운 등짝’”이라고 말한다. “손을 뻗어도 잘 닿지 않는 그의 시는 그늘지고 외롭지만 늘 그리운 시의 뒤란이다. 그는 시를 쓰기보다 살기로 작정한 시인이다.” 이원 시인은 “황병승은 여전히 최후의 전위(前衛)”라며 “자기 목숨까지 모질게 깎아 이토록 열렬한 전위를 지켜내는 귀한 시인을 어떻게 보호해야 할지 우리와 시단이 대답할 차례”라고 말했다. 김요일 시인은 시집 ‘육체쇼와 전집’을 가리켜 “예술이 지향해야 할 실험미학의 극점에 서있다”고 평했다.

이건청 시인은 한광구 시인의 시집 ‘나무수도원에서’(서정시학)를 추천했다. 그는 이 시집에 대해 “신장투석의 힘든 과정을 견뎌내고 있는 시인의 응전 속에서 건져낸 값진 소득이다. 육신이 겪는 고통 속에서 청명한 정신을 만나며 밝게 정제된 이미지를 건져 올리고 있다”고 평했다.

장석주 시인은 오태환 시인의 시집 ‘복사꽃, 천지간의 우수리’(시로여는세상)를 추천했다. “오태환의 시들은 오감을 자극하면서 모국어의 황홀경에 가 닿는다. 그의 시에서 비는 는실난실 날리고, 달빛은 개밥그릇이나 살강살강 부시고, 별빛은 새금새금 아삭한 맛이다. 그의 시들은 소리 내어 읽으면 더 좋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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