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헌의 가인열전]<12>이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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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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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을 애수에 젖게… 영원한 엘레지 여왕

캐리커처 최남진 기자 namjin@donga.com
캐리커처 최남진 기자 namjin@donga.com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는 대중음악사에 영광과 상처의 족적을 남겼다. 엔카를 표절했다는 이유로 방송금지 처분을 받았다가 1989년 해금된 ‘섬마을 선생님’.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는 대중음악사에 영광과 상처의 족적을 남겼다. 엔카를 표절했다는 이유로 방송금지 처분을 받았다가 1989년 해금된 ‘섬마을 선생님’.
‘아득히 머나먼 길을 따라/뒤돌아보며는 외로운 길/비를 맞으며 험한 길 헤쳐서/지금 나 여기 있네….’

1989년 가을, 개관 이래 11년간 국제가요제 같은 특별한 이벤트를 제외하고는 대중음악인에게 단 한 번도 무대를 내주지 않았던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의 완고한 문턱이 데뷔 30주년을 맞은 두 명의 위대한 여왕에 의해 마침내 무너졌다. 첫 테이프를 끊은 이는 한국 스탠더드 팝의 디바 패티김. 그리고 한 달 뒤엔 광복 후 한국 트로트의 여제로 등극한 이미자가 한 세대 뒤 여왕의 계보를 이어받은 주현미의 경배를 받으며 등장했다. 그가 삼십 년간 영욕을 같이 했던 작곡가 박춘석의 헌정곡 ‘노래는 나의 인생’을 부를 때, 4000석에 달하는 세종문화회관에 운집한 충성스러운 지지자들은 격동의 현대사의 터널을 통과해온 지난 시간들을 벅찬 감동으로 음미했다.

이미자의 애칭으로 오랫동안 붙여진 ‘엘레지의 여왕’이라는 왕관은 그 이후 어느 누구도 완벽하게 찬탈하지 못했다. 브라운관과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는 화려하고 거침없는 카리스마를 발산한 패티김에게 쏠렸지만 이미자는 오직 노래의 힘으로 민초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이끌어내었다. ‘마의 벽’으로 여겨졌던 음반 판매량 10만 장을 한국 대중음악사상 최초로 돌파한 주인공이 다름 아닌 이미자였으며 작곡가 백영호와 박춘석과 콤비를 이루어 기록한 히트곡들은 남진과 나훈아, 그리고 조용필의 기록을 크게 웃돈다.

이미자의 연대기는 우리 대중음악사의 매우 의미심장한 상징적 약호 중의 하나이다. 그것은 파란으로 얼룩진 한국현대사의 굴곡진 표정만큼이나 영광과 상처를 두루 아로새겨 왔다. 열아홉 나이에 ‘열아홉 순정’으로 데뷔하여 1964년 ‘동백아가씨’의 전설적인 성공으로 순식간에 스타덤에 오른 그의 고공 행진은 단순히 어느 한 ‘가수’의 이력서가 아니라 광복 이후 반일감정과 6·25전쟁 직후 미국 대중문화 붐에 의해 주춤했던 트로트의 왕정복고를 선언하는 조명탄이었고, 바로 그 지점부터 끊임없이 분출되었던 ‘왜색가요’ 시비는 이미자와 그의 장르가 숙명적으로 감내해야 했던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이 되었다. 그의 생애의 이른바 3대 히트곡 중 ‘동백아가씨’와 ‘기러기 아빠’는 왜색가요로 몰려 1987년 해금될 때까지 21년간 방송될 수 없었고 ‘섬마을 선생님’은 ‘다와라보시겐바’라는 엔카를 표절했다고 방송금지 처분을 받았다가 1989년에야 제자리로 돌아온 것이다.

일제강점기의 상처는 완전히 치유되지 않았지만 일본과의 국교 정상화를 추진한 제3공화국의 이중 정책의 부산물인 ‘왜색과 저질’ 시비조차 이미자라는 여왕의 권위를 무너뜨리지 못했다. 그녀를 정점으로 남진, 나훈아, 배호로 이어지는 새로운 남성 트로트 트로이카 체제와 김부자, 문주란, 조미미 등의 여성 보컬리스트까지 가세함으로써 트로트의 헤게모니는 더욱 공고한 아성을 구가하기에 이른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이와 같은 전설을 가능하게 했을까? 무대에서의 동선이 지극히 절제되어 있었던 이미자는 엔터테이너로서의 화려한 면모는 미약했음에 반해 한국 대중음악의 수용자들에게 전통적으로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꼽혀 왔던 보컬 해석력이라는 위대한 무기가 있었다. 그가 해석하는 트로트 음계의 애상성은 언제 어떤 노래에서도 기교적인 장식과 감정적 과잉을 엄격히 배제하고 중심과 포커스가 정확히 잡혀 있는 사진처럼 표현의 자신감으로 충만했다. ‘목소리’에 대한 그의 관리 능력은 거듭되는 음반 녹음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그 향기와 광채를 잃지 않았고, 수많은 작곡가는 그를 위해 끊임없이 오선지에 매달렸던 것이다.

패티김의 노래가 서구화를 향해 줄달음치는 도시 여성의 욕망을 정확히 반영했다면 이미자의 노래는 ‘조국 근대화’의 광풍 속에 해체되고 사라져 가는 공동체 속의 여인의 비극적 아름다움을 정교하게 그려냈다. 그의 노래 제목처럼 이미자의 노래들은 배반당할 운명의 순정과 그럼에도 감내해야 하는 희생이 아롱지는 한국판 ‘여자의 일생’인 것이다.

강헌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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