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섭 교수의 패션 에세이]<20·끝>나에게 패션은 인체 위에 원근법 그리는 것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2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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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은 인체 위에 원근법으로 표현하는 종합 예술이다. 사진은 밀로의 비너스. 동아일보 DB
패션은 인체 위에 원근법으로 표현하는 종합 예술이다. 사진은 밀로의 비너스. 동아일보 DB
유명 패션디자이너든, 패션계에 첫발을 내디딘 신참 디자이너든, 아니면 패션을 전공하는 학생이든 각각 그들만의 패션에 대한 정의와 철학이 있을 것이다.

건축을 전공했던 디자이너 잔프랑코 페레는 패션을 ‘인체 위에 집을 짓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집이 가지는 공간성과 구조성이 패션에도 적용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지만 집처럼 편안해야 하고 친근해야 한다는 은유적인 표현이라고 해석해 볼 수도 있다.

누군가가 필자에게 패션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인체 위에 원근법을 그리는 것’이라고 답하고 싶다. 평평한 두루마리 종이 같은 옷감에 재단과 봉제를 하고, 이를 통해 생명을 불어넣는 것. 인체의 튀어나오고 들어간 부분에 맞게 새로운 형상을 창조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어떨 때는 과장을 하기도 하고 축소를 하기도 하며, 또는 왜곡을 통해서 유행을 만들고 대중들의 호응과 관심을 이끌어낸다.

그렇기에 패션은 인체 위에 표현되는 예술이다. 또 인간의 내면적인 가치판단과 미의식의 반영이며 우리들 생활양식의 직접적인 표현이다.

1960년대 우주과학의 발달로 인공위성 발사, 달 탐험 등 인류 역사의 획기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이에 영향을 받아 비닐, 금속, 플라스틱 등의 재료가 의복에 쓰이면서 팝아트적인 상업문화와 접목됐다. 이로 인해 패션에 일대 변혁이 일어났다. 또 1970년대 저항과 평등을 부르짖는 젊은 세대의 영향으로 유니섹스 모드가 등장했고 청바지가 대표적인 패션아이템으로 등극했다.

1980년대는 전 세계적인 경제호황과 더불어 풍족하고 자유스러운 생활양식이 반영된 시기다. 부풀린 어깨 패드, 라펠이 넓은 재킷 등 과감하고 과장된 의복들이 이 시대에 등장했다.

1990년대는 정보화, 국제화, 세계화가 이뤄진 시기로 21세기를 향한 미래적인 이상향, 즉 순수함과 단순함을 담은 간결한 미니멀리즘 패션이 대세를 이뤘다. 또 2000년대부터는 개성을 중시하고 개인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그렇기에 개성 있고 자유로운 스타일인 믹스 앤드 매치 룩이 등장했으며 과거와 현재, 오래된 것과 새것, 고급문화와 대중문화,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들의 상반된 조화가 새로운 아름다움으로 등장했다.

이처럼 의복에서는 하나의 결과물이 탄생하기까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사회적인 환경과 심미안의 변화가 패션에 큰 영향을 미친다. 패션을 한 그루의 나무라고 치면, 땅 위에 나타나는 나뭇가지와 잎사귀, 꽃, 과실은 쉽게 만나볼 수 있어도 의복이란 과실을 맺기까지 숨은 공을 끼친 지면 아래 움직임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뿌리와 토양의 자양분이 사실상 큰 역할을 한 것이다.

패션은 그리 가볍지도, 그렇다고 너무 심각한 존재도 아니다. 우리가 늘 마시는 공기가 그러하듯 언제나 주변에서 우리에게 삶의 기운을 준다. 그러나 같은 공기라도 분위기에 따라 가볍거나 무거워질 수 있는 법. 패션을 통해 삶의 즐거움을 찾는 것은 각자 마음먹기에 달렸다.

패션디자이너·홍익대 섬유미술 패션디자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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