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섭 교수의 패션 에세이]<15>창조할 것인가, 복제할 것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1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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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하기 힘든 상상력으로 패션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 넣은 프랑스의 패션 디자이너 장샤를 드 카스텔바자크. 카스텔바자크 제공
남들이 하기 힘든 상상력으로 패션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 넣은 프랑스의 패션 디자이너 장샤를 드 카스텔바자크. 카스텔바자크 제공
최근 한국의 패션기업들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글로벌 패션 브랜드들을 인수해 화제가 되고 있다. 과거 일본이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미국의 영화 스튜디오를 사들였을 때 많은 미국인이 ‘문화적인 진주만 공습’이라고 표현했던 때처럼 이제 인도 중국 그리고 한국에서 내수시장을 다진 탄탄한 기업들이 인수 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이들은 역사와 전통은 깊지만 돈 가뭄에 갈증을 느낀 자동차와 패션 기업들을 사들였고 유럽발 금융위기로 인해 앞으로도 줄줄이 인수 대열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중 한 예로 국내에서 캐주얼 스포츠룩, ‘캐포츠’ 선풍을 일으킨 EXR코리아는 올 9월 프랑스 브랜드 ‘카스텔 바작’을 인수해 화제가 됐다. 이를 계기로 이 브랜드를 이끄는 패션 디자이너 장 샤를 드 카스텔 바작이 최근 잠시 한국을 방문해 필자가 재직 중인 홍익대에서 특강을 했다.

우선 그는 공항에서 곧바로 들고 왔다는 작은 트렁크 가방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그 안에서 하나하나 자신의 소장품을 꺼내 놓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한 가지씩 그의 손때가 묻은 소장품이 소개될 때마다 그의 인생 스토리가 담긴 사진들이 스크린을 채웠다. 가장 먼저 꺼내든 것은 작고 낡은 담요였다. 그가 유년기를 보낸 기숙학교에서 쓰던 것이라 했다. 동시에 앳된 얼굴을 한 카스텔 바작의 기숙학교 졸업사진이 공개됐다. 숨은그림찾기 같은 사진 속에서 그를 찾기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8 대 2 가르마에 넥타이를 단정히 맨 다른 학생들과 달리 적당히 헝클어진 머리에 니트 스웨터를 입은 학생은 오직 한 명이었기 때문이다. 엄격한 기숙학교 생활 속에서도 ‘군계일학’(?)이었기 때문일까. 어린 시절의 그리움이 묻어 있는 그 담요는 이후 카스텔 바작의 그 유명한 블랭킷 판초 코트를 만드는 영감의 원천이 됐다.

그는 그러고 나서 블록장난감인 레고로 퍼즐형으로 만든 본인 초상화를 꺼냈다. 스크린에선 동시에 레고의 인형들이 그의 옷을 입고 등장하는 패션쇼가 상영됐다. 지금이야 보편화된 시도지만 사이버 공간에서, 그것도 아이들의 장난감을 ‘슈퍼모델’ 삼아 펼쳐진 패션쇼는 ‘키덜트족(어른이 돼서도 어린이 같은 호기심과 재미를 추구하는 사람)’의 원조가 바로 자신임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그 후 그의 어린시절 가족사진, 할리데이비슨을 타는 히피 같은 청년시절, 빨간 십자가가 왜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는지 설명하는 모티브들, 또 팝 아티스트 키스 헤링과의 마지막 작업이 됐던 그의 패션쇼 초대장 등등이 소개되며 인생의 추억과 철학이 담긴 이야기보따리가 이어졌다.

하지만 그 잡다한 앤티크 창고 속에서 가장 빛나는 보물은 그의 특강 포스터에 새겨진 문구 ‘창조성 vs 가라오케’였다. 가라오케는 새로운 발명품이자 대중을 즐겁게 해주는 문명의 이기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무언가를 창조해내지는 못하고 복제만 할 뿐이다. 작곡가와 작사가가 만든 원곡을 끊임없이 복제해 반복적으로 재생산하기 때문이다. 합성어를 잘 만들기로 유명한 일본인이 일본어로 ‘가라(비어 있다는 뜻)’와 ‘오케스트라’의 앞 글자를 따 만든 말이 ‘가라오케’인 것에서도 알 수 있듯 그 안은 텅 비어 있는 존재다. 카스텔 바작은 독특한 유머로 패션을 통해 즐거움을 준다. 그가 예정된 특강 시간을 넘겨가면서까지 마지막으로 학생들에게 강조한 것은 바로 ‘자신을 비우지 말고 창조성으로 가득 채우라’는 당부였다.

패션디자이너·홍익대 섬유미술패션디자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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