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섭 교수의 패션 에세이]<1>대지, 자연 그리고 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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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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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촬영한 물소 떼의 대이동과 그에 영감을 받아 만든 구슬장식 미니드레스(). 에스카다코리아 제공
하늘에서 촬영한 물소 떼의 대이동과 그에 영감을 받아 만든 구슬장식 미니드레스(). 에스카다코리아 제공
‘…지구의 자원이 고갈돼 머나먼 행성을 향해 우주선이 이륙한다. 환경오염으로 사람들은 커다란 유리 돔 안에서 생활한다. 육지가 지각 대변동으로 가라앉는다. 소수의 사람들만 선택돼 현대판 노아의 방주처럼 거대한 구조선에 몸을 싣는다….’

영화 ‘아바타’, ‘데몰리션 맨’, ‘2012’에서 봤던 미래의 모습이다. 이번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태를 보면 영화에서만 나올 법한 상황은 아닌 듯싶다.

이런 상황을 예견이라도 한 것일까? 이번 시즌 많은 디자이너와 브랜드들은 자연으로 눈을 돌렸다. 핫핑크, 노랑, 청록 등 형광펜처럼 눈이 시릴 정도로 화려한 색상보다는 깊고 은은하며 부드러운 색상들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굽이치는 모래언덕을 연상시키는 브라운과 베이지, 흐르는 강과 시냇가를 옮겨 놓은 듯한 하늘색과 햇살이 투명하게 비춰지는 어린 잎사귀 같은 연두색 등이 자연을 느끼게 한다. 과거에는 팝 아티스트들과 협업을 통해 도시의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아름다움을 패션으로 표현했다면 이제는 자연과 교감을 이룬 패션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무라카미 다카시의 양식화된 벚꽃 프린트나 스티븐 스프라우스의 형광페인트 낙서가 아닌 자연에 대한 관조를 통해 얻은 영감을 옷으로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2011년 봄·여름 에스까다의 컬렉션은 사진가이자 사회운동가였던 피터 비어드의 작품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 뉴욕과 케냐를 오가며 거의 30년간 아프리카의 대지와 자연을 담은 그의 작품은 인간세계의 팽창과 그에 따른 무절제한 개발로 황폐해지는 동물들의 일상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고발한다. 그러면서 자연 질서의 교란, 삶의 질 저하를 비롯해 성난 자연으로부터 대처할 방법을 찾을 것을 제안했다.

아프리카의 광활한 대지를 거닐고 있는 한 무리의 소년들과 그 주변을 장식한 피터 비어드의 핸드페인팅은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실루엣의 사파리룩과 자연에서 채취한 여러 원석으로 장식한 튜브톱으로 재해석됐다. 하늘에서 바라본 물소 떼 수만 마리의 이동은 빛바랜 어두운 회갈색 흑백사진으로 남겨져 단순한 미니드레스의 구슬 장식으로 표현됐다. 전면이 크리스털로 된 클러치백은 자연적인 색감의 커다란 원석으로 장식돼 원시적인 느낌을 강조한다.

드넓은 대지를, 자연을 우리는 ‘어머니의 품’이라고 비유한다. 그만큼 아무 조건 없이 우리를 품어주고 그 안에서 삶을 생성하게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제 자연에서 생성한 패션은 어머니의 품처럼 우리의 살 위에 직접 입혀져 우리의 삶을 치유하려 한다.

패션디자이너·홍익대 섬유미술패션디자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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