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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건축을 말한다]<7>김인철 교수의 중앙대 도서관 리모델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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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건축을 말한다]<7>김인철 교수의 중앙대 도서관 리모델링

동아닷컴입력 2010-01-06 03:00수정 2010-01-0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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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리모델링한 서울 중앙대 도서관은 학생들과의 의견 교환을 통해 좋은 기억은 남기고 단점은 수정한 공간이다. 지난해 12월 24일 밤 옥상정원(아래)에서 만난 임정민 씨(23·통계학과)는 “새 건물처럼 쾌적하면서도 옛 건물의 품위가 느껴진다”고 했다. 사진 제공 아르키움

《경북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의 독락당(獨樂堂)은 건물을 지우고 경관을 남기는 공간이다. 그곳에 간 사람들은 470여 년 전 조선의 문신 회재 이언적(晦齋 李彦迪·1491∼1553)이 마련한 사랑채의 지붕이나 기둥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마루에 걸터앉아 사방으로 맞는 뿌듯한 풍광이 독락당의 핵심이다. 지난해 12월 24일 오후 서울 동작구 흑석동 중앙대 공학관 연구실. 김인철 교수(63)가 켜 보인 24인치 모니터 가득 독락당 마루가 끌어안은 풍경이 비쳤다.》

‘유리 커튼월’로 햇빛 품고
기둥-천장 옛 자취 남겨
50년간의 기억 되새기게

“내 건축의 선생은 선조들이 남겨준 옛 건물입니다.”

건축주들은 ‘노출콘크리트를 맵시 있게 쓰는 건축가’로 알고 김 교수를 찾아온다. 하지만 그가 설계한 서울 강남구 오피스빌딩 ‘어반 하이브(urban hive·도시의 벌집)’나 서대문구 김옥길 기념관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깔끔하게 다듬은 노출콘크리트 외벽이 아니다. 방문자의 기억에는 널찍한 채광창에 품어낸 강남대로와 신촌 주택가의 표정이 남는다. 김 교수의 건물들은 종종 ‘디자인이 제각각’이라는 말을 듣지만, 주어진 배경의 백미(白眉)를 찾아내는 일관성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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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은 건축의 결과가 아닙니다. 환경을 소화해 사람과 연결하는 도구일 뿐이에요. 환경이란 꼭 자연만을 뜻하지 않죠. 어반 하이브에서는 주변 건물, 도로, 그곳을 지나는 행인들이 건축의 환경이 됐습니다. 건축의 결과는 건물로 인해 생겨나는 관계의 표정이에요.”

지난해 9월 리모델링을 마친 중앙대 도서관은 관계맺음으로 특별한 장소를 빚어내려는 김 교수의 의지를 보여준다. 공간을 사용할 주인인 학생들과 주고받으며 만들어낸 관계가 이 프로젝트의 요지다.

이날 밤 도서관 2층에서 만난 설윤찬 씨(28·수학과 박사과정)는 “사방이 답답하게 막혀 있던 건물에 환하게 볕이 들어 좋다”며 “쾌적한 느낌의 창가 쪽 자리에 앉으면 공부도 잘된다”고 했다.

설 씨가 도서관의 장점으로 꼽은 유리 커튼월은 2008년 9월 설계안을 공개했을 때는 학생들의 반대에 부닥쳤던 부분이다. 겨울에 춥지 않겠느냐, 차양이 부족해서 불편하지 않겠느냐 등 갖가지 질문이 학교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라왔다. 김 교수는 같은 방식으로 완성한 건물 사례를 들어 학생들을 설득하고 동의를 얻었다.

“기둥과 천장에 옛 건물의 자취를 남기는 점에 대해서도 반대가 많았죠. 1959년 지은 건물입니다. 모더니즘 가치관에 충실했죠. 지금 보면 ‘투박하고 촌스럽다’고 할 수 있지만 경박함이 없는 성실한 공간이에요. 50년간 이곳을 거쳐간 사람들이 쌓아놓은 기억을 허물지 않고 새로운 모습을 겹쳐 올리고 싶었습니다.”

지하 1층 지상 3층 구조 위에 시계탑을 둔 건물. 골조와 출입구 형태는 그대로 유지한 채 벽돌로 쌓았던 외벽을 헐고 유리 커튼월로 대체했다. 수직으로 관통하는 2개의 중정(中庭·건물 속 정원)을 없애 평면을 넓히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층이 높아질수록 중정 넓이를 좁히는 방법으로 절충하고 대나무를 심었다.

“그 중정은 선배 건축가가 남긴 공간의 심장이죠. 평면을 늘려서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크다고 판단했습니다. ‘바닥에 고무 시트를 붙여 달라’는 요구가 많은 게 재미있었어요. 하이힐 소리가 시끄럽다는 거였는데….(웃음) 수도원처럼 좀 더 엄숙한 분위기의 도서관을 만들어서 하이힐 신고 들어올 엄두를 아예 못 내게 해야겠다 싶었죠.”

김 교수는 대학을 졸업하고 사무실을 내기 전까지 15년 동안 엄덕문 사무소에서 일했다. 엄 씨는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중구 롯데호텔 등을 설계한 건축가. 김 교수는 “설계팀장으로 1974년부터 6년간 롯데호텔에 매달린 경험이 큰 재산이 됐다”고 말했다.

“호텔은 하나의 도시입니다. 자잘한 것부터 굉장히 고급스러운 것까지 온갖 디테일을 만들어볼 수 있었죠. 뭐든 많이 해보면 버려야 할 것에 대한 결단을 빨리 내릴 수 있게 되잖아요. 특정한 스타일을 고집하지 않고 이런 저런 시도를 하게 된 것도 그때 많은 재료와 디테일을 경험한 덕분입니다.”

하지만 김 교수는 “사무실에서 완전히 미운오리새끼였다”고 했다. 시키는 대로 처음부터 순순히 따른 적이 드물었기 때문. 늘 하던 방식대로 계획안을 맞춰 올리면 쉽게 허락을 얻을 수 있었지만 그는 늘 자기 생각을 제안했다. 그러다가 진행하던 프로젝트를 다른 직원에게 뺏긴 적도 많았다.

“지금 제 사무실에도 꼭 얘기 끝에 언쟁을 벌이는 직원들이 있습니다. 당시 선생님 심정이 한편 이해되지만 저는 그런 친구들이 예뻐요. 건축가는 스타일을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땅이 모두 다른데 어떻게 특정 스타일을 갖나요. 건축가는 새로운 땅, 새로운 건축에 대한 갈망 덕분에 살아가는 겁니다.”

도서관 문을 나섰다. 건물의 외양은 캠퍼스를 밝힌 빛만 남긴 채 풍경 속에 희미하게 물러났다. ‘건축이 땅을 바꿀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독락당의 시선이 거기에 있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 김인철 교수는
△1972년 홍익대 건축학과 졸업 △1981년 국민대 건축학과 석사 △1971∼1985년 엄덕문 건축사사무소 근무 △1986년 인제건축 대표 △1996년 아르키움 대표 △2003년 중앙대 교수 △2007년 김수근문화상, 한국건축문화대상, 건축가협회상(경기 파주시 웅진씽크빅 사옥) △2008년 건축가협회상, 서울시건축상 대상(어반 하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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