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된 이웃을 위하여 20선]<14>샘에게 보내는 편지

  • 입력 2008년 12월 29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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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에게 보내는 편지/대니얼 고틀립 지음/문학동네

《“우리의 연약함은 마음을 열어주는 열쇠가 될 수 있다. 자신의 마음뿐만 아니라 타인의 마음도 열어준다. 내가 누군가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슬퍼할 때, 또 누군가 나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슬퍼해 줄 때, 가장 깊은 곳에서 우리의 마음이 열리고 변화하는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살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자폐증 손자야, 마음의 빗장 풀어라

샘은 저자의 외손자다. 저자는 정신의학 전문의로 수많은 사람을 상담했다. 마음을 꽁꽁 닫았던 사람들이 내면의 어둠을 직시하며 마음의 빗장을 열고 고통의 굴레에서 벗어나도록 도움말을 줬다. 이 책은 그 할아버지가 외손자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용기와 지혜를 전하는 편지다. 비슷한 주제의 책이 많지만, 이 책은 저자의 경험이 그대로 담겨 있다는 점에서 상투적이지 않다.

샘은 두 살도 되지 않았을 무렵 자폐 증세를 보였다. 자폐 진단을 받았을 당시 옹알이를 멈춰 벙어리나 다름없었고 1년 반이 넘도록 화가 나면 자기 머리를 바닥에 찧고 말을 건네면 악을 쓰며 소리를 질러댔다.

저자는 샘의 엄마(저자의 딸)가 여섯 살일 때 교통사고로 척추를 다쳐 전신마비가 됐다. 결혼 10주년 날 아내의 선물을 사러 가다가 일어난 일이었다. 사고가 있기 4년 전 아내 샌디는 암에 걸렸다. 사고가 일어난 뒤 젊은 부부는 함께 꿈꾸던 미래를 잃었고 사랑도 잃었다. 아이들에 대한 책임감으로 버티던 나날은 아내 샌디가 이혼을 요구하며 끝났다. 몇 년 뒤 샌디는 다발성 경화증(뇌와 척수가 산발적으로 파괴되는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자신을 떠난 아내에 대한 저자의 분노는 연민과 그리움으로 변했다.

샘에게 보내는 편지는 여느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건네는 얘기가 아니다. 고통과 외로움의 삶을 살아낸 한 어른이 고통과 외로움으로 삶을 살아갈지 모를 아이에게 전하는 메시지다.

저자는 샘에게 ‘다른 사람과 다르다’라는 것의 의미를 말해준다. 다른 사람과 다른 것이 불행으로 느껴질 때가 있겠지만 그 속에 소중한 선물이 있다는 것과 슬픔을 느끼고 위로하는 법을 가르쳐준다. 그것은 저자 머리에서 나온 추상적인 이론이 아니라 저자가 매일 겪으면서 마음으로 깨달은 것들이다. 이 대목에서 저자가 겪은 경험들이 고요하지만 묵직한 성찰로 전해진다.

저자는 샘과 함께 여름날 디즈니랜드에 갔을 때를 회상한다. 휠체어에 의지한 저자는 놀이기구도 탈 수 없고 수영장에도 갈 수 없으며 버스를 타고 내릴 때도 남들과 다르게 해야 한다. 디즈니랜드에는 휠체어 보조시설이 갖춰져 있고 버스마다 휠체어 승강기가 있었다. 승객들은 저자가 버스에 오를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저자는 어느 순간 버스에 올라탈 동안 자신을 쳐다보며 기다리는 사람들을 의식하게 됐다. 예전에 느끼지 못한 감정이었다. 자신이 버스에 오르기를 기다리는 동안 사람들이 더위에 지칠 것이라고 의식하게 된 것이다.

저자는 좌절감을 느꼈고 고통스러웠다. 전신마비는 예전과 다름없었지만 마음이 모든 걸 달라지게 했다. 저자는 그런 경험에서 깨달은 바를 샘에게 얘기한다.

“네가 남과 다르고 나도 남과 다르다는 건 하나의 사실일 뿐이다.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그 사실은 고통일 수도 있고 그냥 있는 그대로 사실일 수도 있다. 명심해야 한다. 너 스스로 남과 다르다고 ‘생각’할수록 네가 더욱 외로워질 뿐이라는 걸.”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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