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된 이웃을 위하여 20선]<12>언제나 써바이 써바이

  • 입력 2008년 12월 25일 02시 58분


《“옷이 한 벌밖에 없어도 괜찮은 사람으로 살고 싶어요. 여기서 살다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캄보디아에 살았기 때문에 내가 되고 싶은 나에 가까워졌어요. 전에는 괜찮아지고 싶어서 괜찮다는 말을 했다면, 지금은 괜찮아서 괜찮다고 말해요. 무엇을 해도 다 괜찮은 내가 됐어요.”》

캄보디아 봉사서 나눔의 행복 얻다

“(이곳) 사람들은 항상 ‘써바이, 써바이’(난 행복하다, 우린 즐겁다) 해요.”(박경미·28)

캄보디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 중 하나. 주요 도시인 프놈펜과 시엠리아프만 벗어나면 냉장고나 에어컨은 고사하고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집이 태반이다. 초등학교 1학년생이 진급 등록비 5달러가 없어 몇 년째 1학년에 머무는 땅. 무료로 수술을 해준다고 해도 병원까지 갈 차비가 없어서 포기하는 나라. 그런데 그곳 사람들은 말끝마다 되뇐다. “써바이, 써바이.”

‘언제나 써바이 써바이’는 여행작가 박준 씨가 6월에 펴낸 여행 에세이집. 2006년 펴낸 ‘온 더 로드’(넥서스)에서 태국 방콕에서 만난 장기 여행객들을 다뤘던 저자가 이번엔 캄보디아로 눈길을 돌렸다. 여행보다 사람을 읽는 장기를 지닌 그답게 이번에도 이역만리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한국인들에게 주목했다.

이 책은 저자가 찍은 사진과 함께 12명의 한국 사람을 인터뷰했다. 한국에서 병원장을 관두고 캄보디아에 서민들을 위한 병원을 연 55세 의사부터 25세에 안정된 직장을 마다하고 운명을 개척하는 여성 간호사까지….

25년간 자동차부품 설계 및 개발을 하다 명예퇴직하고 건너온 여인찬(55) 씨를 보자. 우연히 한국국제협력단(KOICA·코이카) 모집공고를 보고 지원한 그는 캄포트에 있는 주립직업훈련원에서 자동차 정비를 가르친다. 사업 계획도 접고 생경한 땅에서 자원 봉사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여 씨는 “돈보다 더 소중한 정신적 만족감을 얻었다”고 말한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불만이 있다잖아요. 자기가 만족을 하고 스스로 부자라고 느껴야지, 물질적인 것으로 만족하려고 하면 끝이 없는 것 같아요. 전에는 남들이 1억 원 벌 때 난 10억 원 벌어서 건물 짓고 호화롭게 사는 게 좋은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여기 와서 느껴보면 알 수 있어요. 그렇게 번 돈 죽을 때 가져갈 것도 아니고.”

저자가 만난 이들의 대답은 비슷한 흐름이 있다. 처음엔 두렵고 후회할 때도 있다. 하지만 타인을 위한다는 자긍심으로 버텨낸다. 그런데 그것도 시간이 지나면 착각이었음을 깨닫는다. 가난하지만 욕심과 편견이 없는 캄보디아 생활에 녹아들며 서로가 서로를 돕는 인생을 배운다. 오히려 그들에게 배우는 게 더 많은 셈이다. “내가 주는 거야, 베푸는 거야, 이런 생각 안 해요. 그저 일상이 봉사라고 생각해요.”(오수현·27)

‘언제나 써바이 써바이’는 독특한 여행기다. 이국적 풍물을 소개하는 책도 아니고, 평범한 자원봉사 수기집은 더더욱 아니다. 이 책은 이질적인 두 세계의 교차점을 다룬 글이다. 물질적으론 풍요로우나 여유를 잃어버린 한국 사회와 가진 건 없지만 정신적으로 넉넉한 캄보디아의 만남. 그곳은 봉사보단 ‘나눔’과 ‘교감’이란 말이 더 어울린다. 함께 세상을 만들어가는 인생. 그래야 삶은 ‘써바이’하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