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책향기]집단 환각에 빠진 한 마을

  • 입력 2008년 7월 26일 03시 03분


프랑스인들에게 빵은 단순한 음식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생활의 일부분이다. 우리가 밥 없이 못 사는 것과 비슷하다. 프랑스인들은 출출할 때 간식으로도 빵을 찾는다.

그런 빵에 혹시 불순물이 첨가된다면 어떻게 될까. 예를 들어 누군가 사회에 불만을 품고 빵의 원료인 밀가루에 독성 물질을 넣는다면…. 나라 전체가 패닉 상태에 빠져들 것이다.

그런 사례가 프랑스 역사에 한 번 있었다. 독성 물질이 가미된 빵 때문에 한 마을의 주민이 집단 환각 상태에 시달린 사건이다. 누가 고의로 한 건 아니었지만 그 사건은 프랑스 전체를 충격에 빠뜨렸다.

사건은 1951년 8월 16일 프랑스 남부의 퐁생테스프리라는 작은 마을에서 일어났다. 연극제로 이름난 아비뇽에서 가까운 곳이다. 300명 이상의 주민이 갑자기 환각 증세를 보이자 정부는 급히 원인을 조사했다. 마을의 한 빵집이 의심을 샀지만 정확한 원인은 가려내지 못한 채 조사가 마무리됐다.

미스터리로 남은 이 사건을 소재로 한 책이 최근 프랑스에서 발간돼 주목받고 있다.

책을 쓴 이는 뜻밖에도 미국 코넬대에서 역사학을 가르치는 스티븐 케플런이라는 미국인 교수다. 제목은 ‘저주받은 빵(Le Pain Maudit)’. 케플런 교수는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IHT) 23일자 인터뷰에서 사건에 대한 분석과 책을 쓰게 된 동기 등을 밝혔다.

당시 환각에 빠진 사람들의 행동은 충격적이었다. 한 노동자는 땅에 엎드린 채 꼼짝하지 않았다. 뱀이 자신의 배를 먹어 버리려 한다는 두려움에 시달렸던 것. 한 할머니는 환각 상태에서 스스로 벽에 몸을 부딪쳐 갈비뼈를 3개나 부러뜨렸다. 어떤 남자는 심장이 몸에서 빠져나갔다며 제 위치로 돌려 달라고 의사를 졸랐다.

환각 상태에 빠진 300여 명 가운데 7명은 결국 목숨을 잃었고 40여 명이 격리 수용됐다.

원인을 추적한 관계 당국은 마을의 한 빵집을 발병처로 지목했다. 당국은 이 빵집 주인이 자신도 모르는 상태에서 오염된 밀가루를 쓴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어떤 과정을 통해 무슨 물질이 빵에 들어갔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케플런 교수는 “정부는 밀 저장소를 청소하는 과정에서 청소용 화학물질이 들어갔을 가능성을 내세웠지만 설득력이 약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표백제가 사용됐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케플런 교수는 “그 빵집 주인은 빵을 ‘하얗게’ 만든다는 점에 자부심을 품고 있었는데 그와 아주 가까운 친구 가운데 제약사가 있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케플런 교수는 책에서 당시 사건을 넘어 프랑스 역사의 단면을 짚었다. 그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프랑스인들이 가장 원했던 것은 ‘자유’와 ‘하얀 빵’이었다. 그는 또 당시 프랑스는 국가통제와 자유주의 사이에 갈등이 있었고, 계층 간 분열이 있었으며, 복수와 불신으로 가득 찬 시기였다고 해석했다.

그는 “퐁생테스프리 사건을 메타포(은유)로 삼아 모든 프랑스인이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장애)에 시달렸던 전후 상황을 얘기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