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권장도서 100권]<99>삼국유사-일연

  • 입력 2005년 7월 28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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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는 ‘삼국사기’와 아울러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중요한 역사서로 손꼽힌다. 그러나 삼국유사는 오랫동안 이른바 정사(正史)가 아닌 야사(野史)로 분류되어 그다지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20세기에 들어와 비로소 한국의 고대문화를 더욱 원형에 가깝게, 그리고 총체적으로 담은 사서(史書)로서 제대로 평가받게 됐다.

삼국유사보다 140년 앞선 삼국사기는 유교적 정치사관을 중심으로 한 것인 데 비해 삼국유사는 불교적 정신사관을 강하게 반영한 사서다.

그러나 삼국유사의 불교사관을 유교사관에 대한 일방적인 비판이나 부정이라고 보는 것은 타당하지 못하다. 삼국유사의 찬술은 ‘유사(遺事)’라는 이름 그대로 사기에서 빠졌거나 자세히 드러내지 못한 것을 보완한다는 의도에서 이뤄졌다. 삼국유사에서 삼국사기를 국사(國史) 또는 본사(本史) 등으로 칭한 것은 정사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말해 준다.

삼국유사는 기존의 역사서에서 간과한 고대의 사회 습속과 신앙, 특히 불교사의 많은 부분을 다양한 자료를 통해 보충해 삼국사기보다 역사 이해의 폭을 크게 확대시켜 정치 경제 사회 역사 지리 문학 언어 미술 고고 민속 사상 종교 등 고대의 역사와 문화의 총체적인 모습에 접근할 수 있게 했다.

또한 삼국사기가 신이한 설화 형태로 전승되던 많은 고대 사료를 분해해 형식적인 편집체제에 맞추거나 화려한 문장으로 개서해 그 자료의 구체적인 성격이나 역사적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게 한 데 비해 삼국유사는 신이한 설화를 원형 그대로 제시해 오늘날 우리들이 고대문화를 심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하였다.

삼국유사에 보이는 한국의 고대사 체계는 고조선에서부터 삼국에 이르기까지의 수많은 국가와 정치세력을 잡다하게 나열하여 전체적으로 일정한 체계를 이루지는 못했지만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과 그 시조 단군에 대한 인식이 확실하게 성립됐음을 나타내 준다.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이 생존하던 13세기 고려는 야만시하던 몽골족의 침입을 받아 30여 년간의 치열한 항쟁 끝에 마침내 굴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문과 불교를 문명의 상징으로 자부하던 고려인의 뇌리에 항쟁과 패배의 경험은 강하게 각인되었다.

또 그러한 시련을 극복할 수 있는 정신적 기준을 찾기 위해 과거의 문화전통을 재인식하려는 사회적 배경이 당시 고려의 역사 인식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

삼국유사의 불교사 인식에서도 이 나라가 오래전부터 불교와 인연이 깊은 땅이라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몽골보다 문화적으로 우월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불교적인 영험담을 통하여 혼란한 민심에 강렬한 신앙심을 고취하려는 문화 의식을 나타내 주고 있으며 또한 세속적인 명리에 집착하거나 부도덕한 승려를 비판하고 일반 서민과 노비의 신앙 사례 등에 따뜻한 애정의 눈길을 기울이는 모습에서 불교신앙의 중심 과제가 중생의 구제임을 분명하게 나타내 주려는 저자의 사회의식을 읽을 수 있다.

오늘날 번역서로는 ‘삼국유사’(이재호 역·솔), ‘일연과 삼국유사’(정병삼 편역·새누리)가 있다.

최병헌 서울대 교수·국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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