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권장도서 100권]<91>청구야담-작자미상

  • 입력 2005년 7월 19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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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구야담(靑邱野談)’은 1840년경에 편찬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한문으로 된 이야기 모음집인데 편찬자는 미상이다. ‘청구야담’에 수록된 이야기는 총 270여 개이며, 이야기마다 일곱 자 내지 여덟 자의 운치 있는 제목이 붙어 있다. ‘청구야담’에 수록된 이야기는 비교적 길이가 짧다. 이런 짧은 이야기를 학문적으로는 ‘단형서사(短形敍事)’라고 부른다.

한국고전문학사에서 단형서사의 전통은 대단히 오래다. 고려 중엽에 일연(一然,)이 저술한 ‘삼국유사’라든가 조선 초기에 성현(成俔)이 저술한 ‘용재총화’ 같은 책은 모두 단형서사 모음집에 해당한다. ‘청구야담’은 이런 단형서사의 유구한 전통을 잇는 이야기 모음집이다.

그러나 ‘청구야담’은 조선 전기까지의 단형서사와는 질적 성격을 달리한다. 조선 전기까지의 단형서사는 대체로 편폭이 극히 짧고 서술이 단순하지만 ‘청구야담’의 이야기는 대체로 그 편폭이 훨씬 길며 서술 또한 자세하다. ‘청구야담’은 근대 이전 시기 한국 단형서사문학의 전개과정에서 그 대미를 장식한 책으로서, 한국 고전단형서사의 ‘완성’임과 동시에 최고의 성취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다.

‘야담’이라는 말은 17세기 이후에 사용된 용어다. 그것은 주로 시정세계(市井世界)를 진원지로 하여 양반사회를 넘나들며 유포된 이야기가 한문으로 기록된 것을 일컫는 말인데, 일화 전설 민담 단편소설 등 다양한 갈래의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다. ‘야담’이라는 명칭이 책이름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17세기 초의 ‘어우야담(於于野談)’에서다.

‘청구야담’은 ‘어우야담’ 이후 19세기 초반까지 창작된 여러 작가의 야담을 추려서 모아 놓은 일종의 ‘선집’이라고 할 수 있다. ‘청구야담’의 편찬자는 그 문학적 안목이 비상히 높아 비교적 문예성이 높은 야담만 선별해 이야기 하나하나에 일관된 방식으로 제목을 붙여 놓고 있다. 이 점에서 ‘청구야담’은 한국 야담문학의 최고 수준을 보여준다고 평가된다.

‘청구야담’에 수록된 야담은 주로 조선 후기에 구연되던 이야기가 기록으로 정착된 관계로 이 시대의 분위기와 정조(情調)가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 ‘청구야담’에 특징적으로 반영되어 있는 사회상은 새로운 사회관계의 형성, 지배층 내부의 부패와 모순, 몰락양반의 비참한 현실, 신흥부자의 대두, 지배층에 대한 하층의 항거, 자유분방하고 생기발랄한 시정 풍속, 상품화폐경제의 발달에 따른 새로운 윤리관 및 가치관의 형성 등이다.

또 ‘청구야담’의 이야기는 대체로 도시적 분위기를 강하게 띠고 있다. 이는 대체로 도시 시정인들을 중심으로 구연되던 이야기가 정착된 데 기인한다고 여겨진다.

‘청구야담’에는 여러 계층의 인물이 등장하며, 사실적인 이야기와 신비하고 환상적인 이야기가 골고루 섞여 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그러므로 조선 후기의 인간과 사회에 대해 알고자 한다면 100권의 역사책을 읽느니 ‘청구야담’ 1권을 읽는 것이 아마도 낫다고 생각한다.

‘청구야담’의 번역본으로는 이우성 임형택 두 분이 공역한 ‘이조한문단편집’이 신뢰할 만하다.

박희병 서울대 교수·국어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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