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로 논술잡기]‘인류가 겪은 사춘기’ 계몽시대 살펴보기

  • 입력 2007년 4월 21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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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몽의 시대와 연금술사 칼리오스트로 백작/박승억 지음/189쪽·9000원·프로네시스

세상은 입체다. 선명한 중심뿐 아니라 비스듬하거나 보이지 않는 이면도 있다. 단순한 시야로는 문제 상황을 이해하기 어렵다. 구술시험은 피카소의 그림처럼 종합적으로 보는 눈을 평가한다. 추가 질문이 따라붙는 이유다.

강바닥을 휘저으면 침전물이 일어나듯, 인류의 역사도 유난히 혼란스러운 시대가 있다. 마치 사춘기처럼 상반된 가치들 사이에서 큰 폭으로 갈등한다. 이 책은 한 인물을 중심으로 서양의 근대를 살핀다. 주인공 칼리오스트로는 좌충우돌하는 시대의 지적 혼란을 한 점으로 모아 주는 볼록렌즈다.

칼리오스트로 백작이 명성을 날리던 18세기는 위대한 계몽의 시대다. 15세기 이후 유럽에서는 마녀사냥으로 죽은 사람이 50여만 명에 달했다. 교회의 승인을 받지 못한 과학자들도 가택연금이나 화형을 당했다. 계몽주의는 이 야만의 전통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미신과 권위에 반대하고 튼튼한 이성능력으로 지식을 다시 세우고자 했다.

칼리오스트로는 바로 계몽주의가 비판했던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연금술사, 의사, 예언자, 종교지도자의 명성을 모두 얻은 신비한 인물이다. 다양한 이력은 복합적 평가를 짐작하게 한다.

이 책은 칼리오스트로를 통해 계몽주의 대 신비주의, 과학 대 미신의 복잡한 대결을 재미있게 풀어 준다. 18세기를 보여 주는 입체 안경을 쓰는 셈이다.

그런데 왜 연금술일까. 연금술은 싸구려 금속으로 황금을 만든다는 기술이다. 연금술사는 실험실에 화덕을 놓고 물질을 섞어 가열한 뒤 새로운 것을 얻는다. 사물의 비밀을 알고 조작하는 장인, 신의 위대한 작품인 자연을 변화시키는 마법사. 이것이 당대의 연금술사였다.

비록 현대의 눈엔 허무맹랑할지라도, 연금술은 물질의 생성과 변화에 대한 철학적 통찰을 깔고 있다. 인간의 영혼을 우주의 일부로 보는 정령의 지도자이기도 하다. 그래서 의사들은 ‘현자의 돌’을 얻으려 실험했고, 강령술사도 마음의 병을 치유했다. 연금술사 칼리오스트로, 그는 계몽의 뒷골목을 비추는 거울인 셈이다.

18세기 이후 계몽은 승리했다. 의학, 화학, 천문학은 과학의 이름으로 연금술에서 독립하고, 비합리성은 없애야 할 폐단이 되었다. 그러나 최첨단 휴대전화를 손에 쥐고 우주를 오가는 이 시대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해리포터와 행운부적을 즐긴다. 이성중심주의를 겨냥한 경고음도 날로 높아진다. 과연 칼리오스트로는 패배한 것일까.

이성과 감성은 인간 내면의 소중한 두 줄기이다. 근대인의 향방을 결정했던 그 시절, 긴박했던 소용돌이를 읽어 보자. 인류가 겪은 사춘기는 지금의 우리를 더 잘 알게 해 줄 터다.

권희정 상명대부속여고 철학·논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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