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복교수의 만화칼럼]'100세 시대' 기초다지기

  • 입력 2002년 1월 31일 13시 28분


환갑잔치가 사라져 버린 건 이미 오래됐다. 시인 두보(杜甫)가 그의 시 ‘곡강’(曲江)에서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 읊었다 해서 유래된 고희. 일흔살이란 옛날엔 정말 드문 장수였지만 요즘은 ‘인생은 칠십부터’란 말이 나올 정도로 평균수명이 길어졌다. 세계 최장수국인 일본인들은 팔십세를 살고 한국전쟁 직후 오십여세에 불과했던 한국인의 평균수명도 급격하게 길어지고 있다. 1800년대 초 산업화가 한참 추진되던 영국의 공장지대 글래스고의 노동자 평균수명이 29세였다니 열악한 환경, 위생, 영양이 인간 수명에 끼치는 영향은 가히 절대적이라 하겠다.

그러나 오늘날의 환경은 어떠한가? 어느 정도의 부(富)를 누리며 사는 나라에 한정되겠지만 냉장고에 먹을 것을 잔뜩 쌓아두고도 비만을 염려해 제대로 먹지 못하는가 하면, 환경과 위생은 가히 인류 역사에서 가장 진보된 상황을 누리고 있지 아니한가. 게다가 눈부신 의약 발달로 몇 가지 질병을 제외하곤 얼마든지 치료해내는 시대가 되었다.

과학자들은 인간의 자연수명을 120세로 보고 있는 것이 정설이다. 요즘 신세대는 문명의 혜택을 최고로 누리는 시대에 사는 만큼 정신적인 고통과 스트레스만 잘 통제하면 팔십세, 구십세가 아니라 백세 수명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연령이 아니라 얼마나 건강하게 사느냐이다. 날로 발달하는 노인의학에 비추어 볼 때, 평균수명 백세라면 적어도 구십세까지는 몸과 마음이 정상인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더구나 정보와 지식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젊은이들의 정신적 성숙시기는 기성세대보다 훨씬 빨라 십대 후반이면 몸과 마음이 완전 성숙한 단계가 되니, 실질적으로 ‘정상적 성숙 인생’을 무려 70년이나 누릴 수 있다.

여기에 비해 기성세대는 정신적 성숙이 늦어 나이 서른이 되어야 겨우 ‘철들었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고, 오십대에 이미 정년 퇴직하여 육십이 넘으면 육체적으로 쇠진하기 시작하니, 그들의 실효(實效)인생은 고작 30∼35년. 그러니까 오늘의 젊은 세대들은 그들의 아버지 세대보다 정확하게 두 배의 인생을 살 수 있게 되었다.

인생의 길이가 두 배가 되면 인생의 설계나 사는 방식 또한 근본적으로 바뀌게 된다. 아버지 세대는 극히 제한된 짧은 삶 속에서 꼭 필요한 것을 이루지 않으면 안되었으므로, 뭐든지 서두르고 빨리빨리 해치우지 않으면 그대로 인생의 경주에서 낙오되고 퇴출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들에겐 이십대 중반에 반드시 학업을 마치고, 서른이 되기 전에 결혼을 해야하며, 나이 사십에 부장급에 진급하지 않으면 실패한 인생이었다. 기회는 두 번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두 배의 인생을 살게 된다면? 우선 패러다임부터 바뀌어야 한다. 70년이란 실질인생, 거기에 격변하는 시대와 환경.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불확실한 미래…. 이런 시대에 아버지 세대처럼 자로 잰 듯 정확하게 이번이 마지막이란 식으로 산다면 인생의 대부분을 회의와 후회 속에서 보내게 될 지도 모른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더라도, 시대의 변화가 급격하면 할수록 가장 중요한 것은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인 기본지식과 소양이다. 일생에 직업을 적어도 서너 번 바꾸어야 되는 미래를 살 젊은이들인 만큼 더욱 기초를 단단히 쌓아야 한다. 두 배의 인생을 살 수 있다면 기초 쌓는 데에도 마땅히 두 배의 시간을 들여야 한다.

이원복(덕성여대 디자인학부 교수·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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