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복교수의 만화칼럼]미국맥주, 독일 맥주

  • 입력 2002년 1월 3일 15시 52분


샤를 드골 대통령은 프랑스를 일컬어 ‘300종이 넘는 치즈처럼 다양한 국민이라 통치하기 어려운 나라’라고 했다. 다양한 치즈만큼 지역성이 두드러진다는 얘기처럼 들리지만, 프랑스는 유럽에서도 보기 드문 강력한 중앙집권형 국가다. 지역성으로 따지자면 독일이 두드러진다. 350종류의 빵, 1500종류의 소시지가 훌륭한 증거다. 하지만 독일의 지역적 특성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바로 맥주다. 무려 4000종류의 맥주가 있으며 전세계 맥주공장의 3분의 1이 독일에 있다. 물론 수적이긴 하지만. 그런 만큼 ‘독일인〓맥주’라고 할 정도로 맥주는 국민음료다.

“무슨 음료를 드릴까요”라는 질문에 독일 남자들은 거의 예외없이 맥주를 찾는다. 맥주를 즐기는 국민에 다양한 맥주가 있으니 그들에겐 각자 나름대로 즐기는 고유한 맥주가 있다. 그 맛은 각자의 기호에 맞는 독특한 맛과 성격을 지니기 마련이다. 그런 독일인들에게 미국의 맥주가 맛있을 리 없다.

미국엔 2억6000만명이 살고 있으나 주로 팔리는 맥주는 크게 몇 종류로 제한되어 있다. 이런 ‘메이저’ 맥주는 미국뿐만 아니라 전세계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브랜드로 우리 나라 젊은이들도 즐겨 찾는다. 인구 8000만명에 4000종이나 되는 독일 맥주, 그 3배가 넘는 인구가 찾는 제한된 몇 종의 맥주, 이처럼 극단적인 대조를 이루는 맥주문화 속에서 우리는 글로벌리즘과 로컬리즘의 대표적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미국의 맥주는 맛(taste)이 없는것이아니라독특한 성격(cha-racter)이 없다. 200여 민족이 함께 모여 사는 나라에서, 세계인들의 모든 입에 두루 맞는 공통적인 맛을 찾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다 보니 누구나 거부감 없이 마실 수 있는 ‘보편적인 맛’을 찾을 수밖에 없고 가급적 독특한 성격은 배제될 수밖에 없다. 모든 사람이 값싸고 어디서나 손쉽게, 그리고 거부감 없는 맛을 즐길 수 있는 것이 바로 미국 맥주이자 글로벌리즘의 핵심이다. 햄버거가 그렇고 청바지가 그렇다.

3M으로 상징되는 미국의 서비스산업, 즉 맥도널드, 미키 마우스, 마이크로 소프트가 글로벌리즘의 상징처럼 인식되는 것도 값싸고 손쉽고 거부감이 없다는 특징과 전세계 어디에 갖다 놓아도 무리 없이 통용되는 ‘보편성’이 공통점이다. 이 모두가 미국에서 유래하였기에 글로벌리즘은 곧 아메리카니즘이라고 몰아붙이는 이도 적지 않지만, 사실은 나에게 편하고 부담 없다는 현실적이고 개인적인 이유에서 전 세계로 확산되어 간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미국 것이 아니라도 글로벌화에 성공한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이탈리아가 원산인 피자가 햄버거를 누르고 패스트푸드의 선두주자가 된 것이라든지, 간편하게 포장해주는 중국 음식 때문에 이탈리아에서 문 닫는 식당이 늘어 비상이 걸렸다든지, 일본식 스시(壽司)가 이젠 웬만한 나라에선 확실한 뿌리를 내린 것 등이 그것이다.

그럼에도 한국인들이 매운 음식을 포기하지 못하듯, 독일인들은 자신만의 맥주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특화된 맛과 성격의 지역 맥주, 이것이 배제된 보편화된 맛의 맥주가 범람하는 세상에서 언제나 마셔오던 그 맛을 즐기면서 그들은 맥주 마시는 기쁨을 계속 만끽할 것이다. 이것은 곧 로컬리즘의 기쁨이기도 하다. 글로벌리즘과 로컬리즘은 그래서 상극(相剋)이 아니라 상생(相生)의 관계인 것이다.

이원복(덕성여대 디자인학부 교수·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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