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배아저씨의 애니스쿨]애니메이션을 구성하는 요소들(1)

  • 입력 2001년 1월 17일 16시 04분


보통 애니메이터는 예술가이면서 동시에 테크니션이기도 합니다. 이 말은 애니메이션에 관련된 기초적인 테크닉에 대해서도 호기심 이상의 자질을 키워야 한다는 뜻이지요. 하나의 애니메이션을 작품화하는 데에는 당연히 여러 가지 요소들이 결합하게 됩니다. 이 구성 요소들을 얼마나 이해하고 애니메이션으로 적용했느냐에 따라 작품의 질이 결정된다고 할 수 있죠.

나아가 이 두 가지 자질이 겸비되었을 때 새로운 형식을 지닌 작품의 창조도 가능하게 됩니다. 잘 알다시피 단편 애니메이션의 경우는 기술과 기법 등 테크닉의 활용도가 매우 높죠. 프레데릭 벡의 <나무를 심은 사람>은 불투명 셀지를 이용한 기술의 산물이며, 유리 놀스타인의 <이야기 속 이야기>는 컷 아웃 테크닉을 작품의 완성도에 결합시킨 예입니다.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 실사 배경에 3D 공룡이 등장하는 <다이노소어>도 기술의 진보가 탄생시킨 결과물이고, 만화 기법을 그대로 차용하고 있는 안노 히데야끼 감독의 최신 TV 시리즈 <그 남자 그 여자의 사정>도 만화 캐릭터의 진수를 극단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으로 애니메이션의 구성 요소와 기술을 사용한 경우이지요.

애니메이션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보다도 움직이는 대상 그 자체입니다. 일반적으로 캐릭터라고 말하지요. 애니메이션을 감상하면서 우리는 1차적으로 이 캐릭터에 주목합니다. 독특한 성격을 지닌 등장인물이거나 동물, 혹은 다양한 물체가 캐릭터의 품목에 들어갑니다. 극영화에서 캐스팅에 해당하는 중요성을 지닌다고 할 수 있죠. 다만 애니메이션이란 특성 때문에 선택 범위가 넓고 그래서 여간해서는 대중의 공감대를 끌어오기가 벅찹니다. 캐릭터에 대한 좀더 구체적인 접근은 이후 따로 이야기할 시간을 두기로 하고 여기서는 우선 캐릭터/사물을 움직이는 데 따르는 기본에 대해 알아보죠.

자연에서 벌어지는 운동의 법칙은 그대로 애니메이션에서 물체를 움직이기 위한 원리나 법칙으로 적용됩니다. 생동감 있는 애니메이션을 구성하려면 이런 운동의 자연법칙을 기본으로 움직임이 생성되어야 합니다. 예로 버스가 정지해 있다가 출발할 때나 달리다가 멈출 때, 탑승자의 움직임을 관찰하면 관성이라는 움직임의 속성을 알게 되죠. 정지하고 있는 물체는 계속 정지해 있고자 하고, 움직이고 있는 물체는 언제까지나 움직이려고 하는 관성의 법칙. 이런 운동의 세밀한 분석을 거쳐 캐릭터의 동작이 구성될 때 애니메이션은 움직임의 환상을 획득하게 됩니다. 낙하하는 물체의 중력 작용, 운동의 반동이나 반작용, 마찰과 탄력, 회전하는 물체의 원심력 등이 애니메이션의 움직임을 제어하고 조절하는 구성원리가 되는 거죠. 오오토모 가츠히로의 <아끼라>에서 폭주족이 달리는 장면들은 움직임의 완급을 포함하여 애니메이션을 구성하는 다양한 운동의 원리가 잘 드러나 있어요. 이렇게 치밀하게 그려진 정지 동작들을 프레임 단위로 조절함으로써 애니메이션은 현실의 움직임보다 더욱 강렬한 실재감을 제공하죠.

그렇다고 모든 애니메이션이 마치 과학 실험하듯이 움직임을 시간으로 분절하여 나타난 정지동작 만을 모아 구성되지는 않죠. 사실 디즈니가 초고속 카메라로 찍어 알려진 우유 방울의 슬로우모션 파동장면이 애니메이션의 작화에 큰 도움을 주기는 했지만 말이죠. 애니메이션 작품의 특성에 따라 운동의 기본적인 구성 원리는 변형, 과장, 생략되기도 합니다. 생쥐 제리에게 골탕먹는 고양이 톰은 납짝하게 눌려지기도 하고 허공을 한참 달려나가기도 하죠. 결국은 화들짝 놀라 모자만 대롱거리며 추락(중력의 법칙!)하기는 하지만...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캐릭터의 형태, 무게, 크기와 그의 성격이나 의지 등도 애니메이션의 움직임을 조절하는 단서로 활용됩니다. 작품 전체의 분위기나 특징이 그 캐릭터의 운동감을 좌우하는 거죠. 이전에 우리가 간혹 어색한 동작의 컴퓨터 애니메이션을 보았다면 바로 이런 애니메이션 움직임에 대한 기본과 그 응용을 적절하게 구사하지 못한 까닭이기 때문입니다. 애니메이션에서 각종 움직임의 범위와 속도감을 부여하는 것을 '타이밍(timing)을 창출'한다고 합니다. 과학영화처럼 현실의 동작을 분해하여 나타난 움직임을 다 표현하는 것은 실재 움직임의 재현일 뿐입니다. 그럴듯한 디테일이 첨가되어 우리의 눈을 즐겁게 만들 실사영화적 움직임의 재현도 애니메이션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죠. 그러나 그런 애니메이션마저도 실사영화로 촬영된 분할화면과 똑같은 타이밍의 동작그림으로 구성되지는 않습니다. 어떤 동작은 실사 화면에 포착되지 않는 움직임을 추가하고 어떤 것은 과감하게 그림을 생략해서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혹은 꿈보다 더 꿈적인 움직임을 구성하는 거죠. 애니메이션은 이렇게 프레임(필름의 한 조각)이 모여서 구성되는 예술입니다.

이용배 (계원조형예술대 애니메이션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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