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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지원의 교육 속풀이] 3월, 민수의 새 학기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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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지원의 교육 속풀이] 3월, 민수의 새 학기가 시작된다

노지원기자 입력 2017-03-01 16:38수정 2017-03-29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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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21일 오후 대전 유성구 대동의 대전해맑음센터 전경입니다. 노지원기자 zone@donga.com

《교육 관련 이야기를 속 시원하게 풀어드립니다. ‘교육 속풀이’ 두 번째 이야기를 공개합니다. 이번에 전할 이야기는 대전에 있는 어느 학교와 한 아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아이는 특별한 한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 곁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어디에나 있는 아이입니다.》

아이는 몸을 떨었습니다. 작은 손으로 연필을 겨우 쥐었습니다. 흰 도화지 위에 나무 한 그루를 그렸습니다. 나무에는 뿌리가 없었고, 나뭇가지는 누군가 일부러 자른 것처럼 짧았습니다. 그나마 핀 잎사귀는 미풍에도 쉽게 날아갈 듯 작고 연약했습니다. 아이는 나무가 서 있는 곳이 “아주 추운 겨울”이라고 했습니다.

늦더위가 채 가시지 않은 어느 날. 아이가 앉아 있는 상담실 창문에는 블라인드가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블라인드가 미처 가리지 못한 틈으로 따듯한 햇살이 비쳤습니다. 중학생 민수(14·가명)는 이 곳에서 나무를 그렸습니다. 혹한 속에 쓰러질 듯 자라고 있는 약한 나무였습니다.

엄마 품처럼 넓고 푹신한 소파가 들여진 곳. 꽉 끌어안고 울어도 될 것 같은 쿠션이 여러 개, 눈물을 닦아 줄 사각 휴지가 놓인 곳. 이런 상담실이 교실보다 많은 곳. 5개월 전 민수는 이 곳, 대전해맑음센터(해맑음센터)에 왔습니다. 민수는 이 곳에서 심리 검사 중 하나인 HTP(집 나무 사람) 검사를 받았습니다. 자아가 약하고, 대인관계가 불안정하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지난해 10월 초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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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맑음센터는 대전 유성구 대동에 있는 폐교 터에 4년 전 문을 열었습니다. 신탄진역에서 금강 지류인 갑천을 따라 차로 20분 정도 달리면 보이는 둔덕 위 옛 대동초교 자리에 있습니다. 학교폭력 피해학생을 위한 기숙형 위탁교육기관으로 전국에서 단 하나뿐입니다.

21일 오전 9시 해맑음센터의 한 교실. 열두 명의 아이가 책상을 붙이고 둘러앉았습니다. 점묘화를 그리기로 한 날이었습니다. 봄처럼 노란 티셔츠를 입은 민수는 커다란 도화지에 밑그림을 쓱쓱 그렸습니다. 입을 동그랗게 모으고 집중하다 옆자리에 앉은 친구와 눈이 마주치자 방긋 미소를 지었습니다. 면봉에 물감을 묻혀 점을 찍을 때는 형 누나와 킬킬거렸습니다. 민수는 그림 속 하늘보다 더 맑게, 들판보다 더 푸르게 웃었습니다.

● 반복되는 따돌림

민수가 이렇게 환하게 웃기 시작한 건 아주 최근의 일입니다. 4년 전, 초등학교 4학년이던 민수는 사소한 일 때문에 ‘왕따’가 됐습니다. 같은 반 여학생은 코를 만지는 민수에게 “코딱지를 판다. 더럽다”며 놀렸습니다. 그때부터 민수는 ‘전따(반 전체에서 왕따)’가 됐습니다. 즐거운 추억만 가득해야 할 수련회에서도 민수는 소리 죽여 혼자 울었습니다. 동급생들은 민수를 계단에서 밀어 넘어뜨리고, 벽으로 밀쳐 머리를 부딪게 했습니다. 수치심이 밀려와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은 용기를 내 담임교사에게 도움을 청해보기도 했습니다. 달라지는 건 없었습니다. 교사가 학급 내 따돌림을 애들끼리의 장난, 사소한 다툼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이 즈음부터 민수의 몸무게가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스트레스가 원인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살 찐 민수를 “돼지XX”라고 불렀습니다.

민수는 한밤 중 잠을 자다가 발작을 일으키곤 했습니다. 두통, 복통을 호소했습니다. 응급실에 가도 병명을 알 수 없었습니다. 의사는 항상 “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만 했습니다. 해맑음센터에 들어온 뒤 민수는 그가 겪은 통증이 ‘신체화 증상’이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이 증상은 내과적 이상은 없지만 심리적 요인 등으로 나타나는 신체 반응을 말합니다. ‘없는 사람’ 취급을 받던 민수에게 보이지 않는 병이 생겨버렸습니다.

악몽 같은 현실은 졸업 후에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아이 대부분이 같은 중학교에 진학한 탓입니다. “너 초등학교 때 왕따였다며?” 민수가 받은 첫 인사였습니다. 아이들은 연필로 민수의 몸을 찌르거나 지우개 가루를 뭉쳐 그의 몸 안에 넣었습니다. 분무기로 민수 얼굴에 물을 뿌렸습니다. 평소엔 그를 무시하다가도 수업시간만 되면 괜히 말을 걸어 공부를 방해했습니다. 민수를 집요하게 괴롭히던 한 아이는 급기야 엄마 욕까지 했습니다.

“교실에만 들어가면 숨이 턱 막히고 심장이 쿵쾅거렸어요.” 신체화 증상은 수업을 듣기 어려울 정도로 심해졌습니다. 양호실에 가거나 아예 학교를 빠지는 횟수도 잦아졌습니다.

“학교 갔다 집에 오면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더라구요. 왜 그러느냐고 물어도 말을 안 해요. 아이가 겪은 일을 듣고 정말 같이 죽고 싶었습니다.” 민수 엄마 박영희 씨(가명)는 아들 생각만 하면 몸이 떨리고 눈물이 고입니다. 결국 1학년 1학기 말, 학교폭력자치위원회가 열렸습니다. 가해학생은 서면으로 사과했습니다. 민수 엄마의 요구로 2학기 때 반이 바뀌었지만 ‘옆반 왕따’는 다시 ‘우리 반 왕따’가 됐습니다.

“왕따는 같은 교실 내에 있는 급우들 사이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학교생활 중에 늘 반복되며 한번 시작되면 쉽게 중단되지 않고 장기간 지속된다.”(김원중, 2004) 피해자와 가해자가 같은 공간 안에 있는 한 따돌림은 쉽게 끝나지 않습니다.

눈에 잘 보이지도 않습니다. 교육부에 따르면 학생 1000명 당 피해유형별 비율은 겉으로 드러나는 신체폭행(12.1%)보다 바깥에서 잘 보이지 않는 언어폭력(34.0%), 집단따돌림(18.3%), 사이버 괴롭힘(9.1%)과 같은 방식으로 발생하고 있습니다. 학교폭력이 어디에나 있고 누구나 겪고 있는데도 체감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학교폭력 심의 건수는 2013년 1만7749건에서 2015년 1만9969건으로 해마다 늘고, 학생 1000명 당 피해 학생 수는 2013년 3.39명에서 불과 2년 뒤 4.22명으로 증가했습니다.

● 민수의 변화


지난해 10월 민수가 대전해맑음센터에 갓 들어와 그린 동물 그림과 최근에 그린 그림입니다. 미술 치료사는 민수의 그림을 보고 “과거보다 색채감이 살아났다”고 평가했습니다. 노지원기자 zone@donga.com

지난해 10월, 민수는 결국 그를 괴롭힌 친구들을 피해 해맑음센터로 왔습니다. 이곳에 들어온 학생은 원래 학교의 학적을 유지한 채 짧게는 2주, 길게는 열 달 정도 회복 교육을 받고 학교로 돌아갑니다. 민수가 다니던 학교의 위클래스 상담 교사가 민수에게 소개해줬습니다. 민수 엄마 박 씨는 “왕따 시킨 애들은 학교를 잘 다니는데 왜 우리가 떠나야 하느냐”고 울부짖었습니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습니다. 가해자가 사라지지 않으면 피해자가 떠나야 했습니다.

“편하게 지낼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친구를 사귀려고 먼저 말을 걸기도 했는데 친구들이 안 다가와요. 항상 우울해요. 나를 따돌린 친구들 앞에서는 아무것도 못하겠어요.”

병원에서 처방한 항우울제까지 먹었지만, 약효는 잠시뿐이었습니다. 해맑음센터 입소 초반 여섯 가지 심리 검사를 해봤더니 민수의 우울감과 정서적 불안정은 위험 수준이었습니다. 타인을 과도하게 의심하고 경계하며 피해의식을 느끼는 편집증적 증세도 보였습니다.

항상 엎드려 있고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던 민수의 상태는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속상한 일이 있더라도 밖으로 소리 내 울지 않고 속으로 삭혀가며 울던’ 민수가 감정을 드러낸 것은 가장 큰 변화 중 하나였습니다.

친구가 툭 던진 말에 크게 상처받고 결국 마음속에서 미움과 증오의 감정을 키우던 민수는 관계 속에서 불편한 감정을 느낄 때마다 교사에게 상담을 신청했습니다. 교사의 도움을 받아 친구와 마음을 터놓으니 갈등이 더 깊어지지 않았습니다. 상담 교사의 도움 없이 스스로 해결해보려 노력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이동원 대전해맑음센터 상담지원팀장은 “문제가 생겼는데도 이를 즉시 해결하지 않으면 아이들이 무기력과 패배감을 학습한다”며 “비슷한 상처를 가진 피해학생끼리 대화하면 ‘친구도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구나. 나만 가지고 있던 문제가 아니구나’하는 걸 깨달아 상담 효과가 크다”고 말했습니다. 민수의 담임인 김혜민 대전해맑음센터 교사는 민수의 신체화 증상이 완화됐다고 진단했습니다. 김 교사는 “민수가 아프다고 할 법한 상황에서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아졌고, 기존에 호소하던 알레르기 증상도 개선됐다”고 했습니다.

위험 수준에 머물던 우울, 정서불안감도 정상 범위에 들어왔습니다. 꾸준히 복용하던 항우울제 복용량이 점차 줄어 3월 현재 약을 복용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입니다. 친구관계 문제 때문에 미뤄둔 공부에 집중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림그리기와 조립을 좋아하는 민수는 이 곳에서 ‘자동차 공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키웠습니다. 중학교 졸업 후에 기계고에 진학 할 생각입니다.

학교폭력 피해자 가운데는 민수처럼 감정 표현에 서툰 아이가 많습니다. 해맑음센터 측이 정기적인 개인, 집단 상담 외에도 24시간 상담체제를 가동하는 이유입니다. 학생이 다른 친구와의 갈등을 호소하고 교사에게 상담을 요청하면 즉시 상담이 시작됩니다. 갈등 발생 후 하루를 넘기는 법이 없습니다. 기숙사에서 잠을 자는 시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사들은 학생 기숙사에 상주하며 응급 상황에 대비합니다. 학생들은 입소 초반 교사의 중재를 자주 요청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스스로 감정을 추스르고 대화하는 법을 배웁니다. 갈등을 해결해 본 경험이 누적되면서 아이들은 변합니다.

상담실도 일반 학교보다 많습니다. 수업이 이뤄지는 교실이 3개인데 상담실은 5개나 됩니다. 상담실 이외에 북카페 등 학교의 모든 공간이 상담 공간으로 사용됩니다. 상담 및 교육은 학부모도 예외가 아닙니다. 자녀를 해맑음센터에 보낸 부모는 학교폭력 예방 및 대처 교육, 부모·자녀 감정 코칭 대화법 등 교육과 피해자 학부모를 위한 위로 상담에 각각 월 1회 이상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합니다.

● 학교폭력 피해자의 엄마가 만든 학교

대전해맑음센터의 개인 상담실 모습입니다. 해맑음센터에서는 학생이 원할 경우 언제든 개인, 집단 상담이 이뤄집니다. 노지원기자 zone@donga.com

해맑음센터는 실제 학교폭력 피해자 학부모인 조정실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 회장이 주도해 만들었습니다. 최대 30명 까지 수용할 수 있으며 숙식과 교육비는 전액 무료입니다. 심리 상담, 청소년 지도, 중등 교원, 사회 복지 자격증 등을 보유한 교사 6명이 미술 음악 등 예술 활동을 맡습니다. 학생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 힘씁니다. 국영수 등 기본 교과 수업을 진행하지만 공부보다는 ‘회복’이 우선입니다. 매년 교육부에서 주는 특별교부금으로 운영됩니다. 조 회장은 고정 예산이 아닌 특별교부금이 당장 내년에 끊겨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 항상 마음이 조마조마합니다.

학교장이 허락하면 해맑음센터에서 치료를 받고 공부를 하며 출석 인정을 받을 수 있지만 원칙적으로 머물 수 있는 기간은 1년이 최대입니다. 정식 학교가 아니라 피해학생들을 회복 시켜 다시 학교로 복귀시키기 위한 위탁교육기관이기 때문입니다. 2013년부터 2016년까지 총 학교폭력 피해자인 초중고생 913명이 해맑음센터에 왔고, 이중 792명이 원래 학교로 돌아갔습니다. 이중 20명은 반복된 피해를 증명한 후 다시 해맑음센터에 왔습니다.

학교폭력 피해학생 전용 공간은 부족한 실정입니다. 2013년 기준 전국의 가해학생 특별교육기관이 482개인 것에 반해 피해학생 치유 전담기관은 2014년 기준 31개밖에 되지 않습니다. 피해학생이 기숙을 하면서 집중적으로 회복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은 해맑음센터가 유일합니다.

학교폭력 상황이 발생한 후 교사가 개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 경우 1차적으로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해야 합니다. 가해 성향을 가진 학생과 피해 성향을 가진 학생을 같은 공간에 둘 경우 학교폭력이 반복되기 때문입니다. 차용복 대전해맑음센터 부장은 “교육적인 차원에서 그냥 다 같이 잘 지내보라며 방치할 경우 따돌림이 지속되고 결국 피해자가 가해자를 피해 다니는 상황을 막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한번도 용기 못 냈던 나는 용감해지고 씩씩해졌다. 한발 또 한발 성장하고 있다. 2월 수료를 하고 학교로 돌아간다. 많은 준비가 됐다. 힘차게 앞 만보고 걸어갈 거다.”

민수가 쓴 일기입니다. 지난 23일 민수를 비롯한 학교폭력 피해학생 12명은 해맑음센터에서 수료장을 받았습니다.

3월, 새 학기가 시작됩니다. 모두 학교로 돌아가지만, 민수만큼은 원래 학교로 돌아가는 걸 포기했습니다. 가해학생과 다시 마주칠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대신 집 근처에 있는 대안 학교에 입학하기로 했습니다. 인근에 가해학생을 피해갈 학교가 없어 다시 원래 학교로 돌아가 가해학생을 마주해야 하는 학생이 적지 않습니다. 민수는 운이 좋았습니다.

노지원 기자 zo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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