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젊음과 늙음의 경계에서… 되돌아보는 존재의 흔적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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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 박물관/윤대녕 지음/317쪽·1만3000원/문학동네

‘은어 낚시 통신’의 작가로 익숙한 소설가 윤대녕이 3년 반 만에 펴낸 일곱 번째 소설집이다. 2010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문예지에 실린 단편 7편을 엮었다.

읽다 보면 조미료를 치지 않아 담백하고 슴슴한 한 끼 식사를 하는 기분이다. 그의 소설에는 장르적 재미를 위한 억지스러운 설정도, 이야기를 휘젓고 다니는 문제적 인물도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고통에 대한 사유와 삶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잦아졌다”는 작가의 고백처럼, 소설 속 인물들은 젊음과 늙음의 어정쩡한 경계인 ‘중년’이란 지점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지난 삶의 흔적을 되돌아본다.

소설의 상당 부분이 회상 형식을 취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지금은 인기 작가가 된 대학시절 짝사랑 남자 선배에게 보내는 중년 여인의 편지(‘비가 오고 꽃이 피고 눈이 내립니다’), 삶의 길을 잃고 방황하던 시절 유일한 의지가 됐던 벗과의 인연을 반추하는 독백(‘반달’), 도자기 수집에 미쳐 아내마저 죽음으로 내몬 떠돌이 만물상의 회한(‘도자기 박물관’)이 그렇다.

윤대녕 소설의 주인공은 대체로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알 수 없는 생의 지점까지 떠밀려 외로이 서 있다. 여기서 이들은 ‘되돌아봄’의 의식을 통해 삶의 이면에 숨어 있는 평범하지만 자명한 진리들과 대면하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하나 있다면, 우리는 서로가 개입된 과거에 의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겠지요. 그 흔적에 기대어 살 수밖에 없는 삶 말입니다.”(‘비가 오고 꽃이 피고 눈이 내립니다’) “왜 가끔은 우리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잖나. 요컨대 자신을 완전히 잊고 상대만을 생각하며 그것을 실천하는 일 말이야.…비록 상처가 되더라도 만나서 서로 고통을 나누는 편이 그나마 인간적이라고 생각해.”(‘통영-홍콩 간’)

사극에서나 만나는 ‘하오체’를 수시로 구사하는 남자 주인공이나 운명 순응적인 여성상의 반복이 현실감을 해칠 때도 있지만 윤대녕 소설 특유의 담담함의 미학은 신작 소설집에서도 여전하다.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
#도자기 박물관#윤대녕#회상#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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