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치술의 산길따라걷기]같은 山도 매번 다른 감흥

  • 입력 2000년 6월 21일 19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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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에 해발 8,000m급 봉우리는 14개. 모두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 산군에 있다. ‘작은 탱크’ 엄홍길은 88년 에베레스트봉 등정을 필두로 올해 5월19일 칸첸중가봉까지 13봉을 올랐다. K2봉(8611m) 만 등정(7월말∼8월초로 예상)하면 그는 아시아인으로는 처음, 전세계적으로는 7번째로 14좌 완등의 위업을 이루는 산악인이 된다.

이런 기록등반은 스포츠보다는 모험에 가깝다. 만년설과 폭풍우, 눈사태, 추위, 산소 부족 등 한계상황에서 목숨을 건 행위이기 때문이다. 크레바스(빙하의 갈라진 틈새)에 추락해 실종되고 동상에 걸려 손가락 발가락을 절단하는 끔찍한 일도 다반사다. 이런 모습이 TV에 비치다 보니 등반이라는 것이 취미로 산을 찾는 보통 사람들에게까지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럴 필요는 없다. 기록, 도전, 용기, 극복, 정복으로 점철된 알피니즘(등반)은 서양의 문화다. 우리네 산문화는 무엇인가. 진달래, 철쭉꽃 흐드러지게 핀 봄산과 숲그늘 시원하고 물소리 낭랑한 한여름의 계곡, 불처럼 타오르는 가을산 단풍의 황홀경이나 눈꽃 핀 산길로 오르는 한겨울의 은령. 요산요수하는 입산(入山)이 우리네 산문화다.

삶의 위안처이며 수양의 도장으로 늘 우리 가까이 있는 산. 그래서 언제든 스스럼 없이 찾을 수 있는 생활의 공간이다. ‘입산’은 정복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쉬고 어울리기 위한 것이다. 마음에 맞는 사람과 함께 계곡을 찾고 체력에 따라 오를 수 있는 만큼만 오르는 즐거운 산행이면 되지 않는가. ‘엄홍길의 산’을 어슬프게 접목하려 들지 말고 우리네 토종문화인 입산으로 돌아가자.

놀이공원에 가면 재미는 있지만 두고두고 찾을 곳은 아니다. 갈 때마다 똑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연은 다르다. 찾을 때마다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늘 그 자리에 있지만매번 다른 감흥을 안겨 준다. 이제는 ‘엄홍길의 산’이 아니라 ‘내 산’을 오르자. 입산의 의미를 되새기며. www.gore-texclub.co.kr

윤치술(고어텍스아웃도어클럽 클럽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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