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빅딜]빈센트 성/"백수생활 너무 좋아요"

  • 입력 2000년 1월 23일 19시 12분


세 살 때 벨기에로 입양된 빈센트 성(32)은 프랑스 파리에서 패션잡지 사진작가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가 ‘백수(白手)’로 살겠다고 결심한 것은 95년 한국YWCA의 ‘해외입양아 고국방문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부터.

자신이 태어난 나라에 와보니 ‘그냥 여기서 아무일도 않고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랑스로 돌아갔던 그는 한달 뒤 배낭 하나를 매고 무작정 귀국했다. 당시 재산은 30만원이 전부.

하루 숙박비가 1만5000원하는 여인숙을 찾아다니며 호빵과 오방떡, 라면으로 끼니를 때웠다. 입장료가 싼 고궁은 물론 공짜로 둘러볼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갔다. 겨울에는 무료로 입장할 수 있으면서도 따뜻하기 이를데 없는 백화점으로. 화장실은 격조높고 안락한 호텔 로비의 것을 이용했다.

돈은 먹고 살 정도만 있으면 족했다. 정 궁할 때면 파트타임으로 패션사진을 찍는다. 꼭 훌륭한 사진작가가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니 모든게 편하고 자유롭다.

추위 속에서도 그는 매우 느릿느릿 거리를 걷는다. 조급히 움직이다 보면 자신을 도와줄 친구들과 우연히 마주칠 기회를 놓치기 때문이다. 그는 ‘친구들을 이용하려하지 않고 내 자신이 솔직담백(simple)하다면 반드시 누군가는 도와줄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도 하루평균 수면시간이 5시간일 정도로 바쁘다.

한달 전부터는 사진찍는 일도 그만뒀다. 그는 더듬거리는 한국어 실력으로 말했다.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사는 ‘인터내셔널 백수’가 되고 싶어요. 이해관계가 얽히지 않고 ‘벌거벗은’ 상태로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삶의 리얼리티(reality)를 발견하게 돼요.”

2000년 1월 20일 현재 그의 총재산(현금)은 5만원이다.

<이승재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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