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존 버거는 소설가 뿐 아니라 미술평론가, 극작가, 시나리오 작가, 다큐멘터리 작가 등 다채로운 경력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나라면 그를 한마디로 이미지와 텍스트에 관한 전문가라고 정리하겠다. 가령 맨 먼저 번역된 ‘보는 방법들(Ways of Seeing)’은 유럽 회화와 광고이미지의 어법들을 종횡으로 엮어서 예술의 사회적 맥락을 풍부하게 드러낸 이 분야의 탁월한 평론서다. 개인적으로는 예술이 한가로운 호사 취미나 문화산업 즉 단순히 돈을 쓰거나 버는 것 이상이 될 수는 없을지 고민하던 시절에 빛을 던져준 책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말하기의 다른 방법’은 사진을 대상으로 숙련된 이미지 독법을 구사하고 있는 일종의 에세이집이다. 특히 이 책의 마지막 장은 별도의 설명 없이 1백50컷에 이르는 사진 릴레이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이미지 연결방식상 이는 다큐멘터리 사진 연작보다는 오히려 ‘소설사진’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알프스의 평범한 농부를 화자로 하는 이 비범한 소설을 뒤집으면 그 뒤에서 철도원, 아마추어 악사, 양치기, 공산주의자, 택시운전사 등 ‘결혼을 향하여’ 등장인물들의 또렷한 이미지가 속속 떠오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왜 이미지 전문가의 소설이 하필이면 장님 양치기인 초바나코스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것일까?
“눈에 보이는 것은 늘 사람 앞에 열려 있다”고 저자는 스쳐 지나가듯 말한다.
백지숙<문화평론가>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