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현의 우리거리 읽기]서울 여의도 공원

  • 입력 1999년 6월 22일 14시 18분


여의도에는 없다. 제주도에는 있고 보길도에도 있다. 울릉도에도 있지만 독도에는 없다. 답은 전신주. 여의도에서는 전선, 상하수도, 가스관을 모두 땅속으로 묻었기 때문이다.

이름 그대로 너나 가지라던 섬, 여의도(汝矣島)는 여의도종합개발사업으로 화려한 변신을 시작했다. 섬 주위로는 윤중제(輪中堤)를 쌓고 그 안에는 모래를 부어 넣었다. 경부고속도로를 놓은 그 열정과 의욕으로 반듯한 섬이 하나 완성되었다. 화려한 도시의 꿈이 무르익었다. 제대로 된 도로 체계도 제시되었다.

그러나 건축가의 계획을 이루기에 우리의 주머니는 너무 가벼웠다. 계획은 ‘현실적’인 방향으로 수정되었다. 크렘린광장이나 천안문광장에 버금가는 광장을 만들라는 대통령의 지시도 떨어졌다. 백성 앞에 관리가, 관리 앞에 군인이 오는 ‘군관민’의 시대였다. 보무도 당당한 군인들의 퍼레이드는 얼마나 중요한 연례행사였던가. 공영개발은 중지되고 토지매각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아무도 여의도로 움직이려고 하지 않았다. 얼마나 살기 좋은 곳인지를 보여주어야 하니 엘리베이터도 설치된 ‘첨단 고층’ 시범아파트가 세워졌다. 여의도의 아파트 가격은 한동안 전국 최고치였다.

계획대로 아파트들은 하나 둘 들어섰는데 상업시설들은 시큰둥했다. 점심 사먹을 곳도 변변치 않은데 누가 사무소를 지으랴. 사무소 건물을 지으면 지하는 무조건 식당가가 되는 것이 여의도의 규칙이 되었다. 안 팔리는 상업용지는 구석구석을 떼내 아파트 지으라고 팔았다. 여의도에서는 아파트와 사무소 건물들이 이곳 저곳에서 섞이기 시작했다.

여의도도 이제 나이를 먹었다. 가로수의 키도 제법 커져 여름이면 매미 소리에 잠을 잘 수가 없다는 원성도 들린다. 가을이면 낙엽이 눈발처럼 날려 방송국에서 카메라를 들고 나서기도 한다. 올림픽도로 아래의 어두운 동굴을 통하지 않고 한강시민공원으로 연결되는 유일한 구간이니 인기도 좋다. 방송사도 증권사도 제대로 대접을 받으려면 사옥은 당연히 여의도에 자리잡고 있어야 한다.

여의도를 미국 뉴욕의 맨해튼처럼 만들자는 이야기도 나온다. 100층 높이의 건물들을 짓자는 제안이 수시로 등장하는 상황이니 맨해튼을 비교하는 건 무리도 아니었다. 그러나 높은 건물만으로 맨해튼을 이야기하면 당신이 본 건 그림엽서 속의 도시. 맨해튼의 증권가 월스트리트는 높은 건물들이 벽처럼 서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 아니다. 처음 뉴욕에 정착한 네덜란드인들이 원주민들의 공격을 막기 위해 방책을 쳐두었던 곳이 바로 월스트리트. 맨해튼은 고층건물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카네기홀과 링컨센터가 자리잡은 곳이 바로 맨해튼. 뉴욕 근대미술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구겐하임 미술관, 휘트니 미술관 등이 즐비하게 자리잡은 곳도 맨해튼. 여의도에 고층건물 말고 미술관이 들어설 예정이라는 이야기는 언제쯤이나 들려올까.

여의도광장이 공원으로 새 단장을 했다. 아스팔트를 들어내고 잔디와 나무를 심었다. 닮겠다고 하더니 정말 맨해튼의 센트럴파크를 염두에 두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방향은 옳았다. 공원은 광장보다 아름답다. 그러나 방법은 옳지 않았다. 사업기간 2년에 서둘러 만든 결과물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완성된 여의도 공원은 과히 아름답지 않다. 이 공원의 가로등, 공중전화부스, 놀이터는 동네 아파트단지의 수준이다.

여의도 공원에는 자연생태의 숲, 문화의 마당도 있고 자전거도로, 산책로도 있다. 산책은 어슬렁거림이다. 그러나 두 사람이 걸으면 빠듯할만한 폭으로 이어진 퍼런 아스콘 길 2.4㎞는 지루하기만 한 산책로. 고향의 정취를 느끼라는 한국 전통의 숲도 있다.

갑자기 전통은 왜 여기서도 끼어 드는가. 소나무 옮겨 심고 정자를 지어놓는다고 고향의 정취가 생기던가. 팔각정이 있는 고향의 유년을 보낸 이는 지금 대한민국에 얼마나 되나. 당신의 할아버지는 더운 여름날 팔각정에서 합죽선 부치면서 낮잠 청하던 선비였는지 모른다. 어쩌면 그 시간에 허리가 새카맣게 타도록 밭에서 일하던 농부였는지도 모른다. 팔각정은 아직도 고향의 정취인가. 이 사회는 언제나 전통의 도식에서 벗어날 것인지. 센트럴파크를 설계한 이가 붙잡은 화두는 ‘민주’였다. 여의도 공원의 화두는 ‘낮잠’인가.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세종대왕도 출연하셨다. 말도 안 되는 한글 문장이 전국에 가득한데 동상만 만든다고 세종대왕의 업적이 기려지는가. 혼천의, 측우기, 자격루, 앙부일귀를 만들 때 세종대왕께서 하루를 재촉해 서둘렀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고려시대의 전통을 재현했다는 이야기도 들리지 않는다. 게다가 ‘…나라를 위해 있는 힘을 다할 것을 이 동상 앞에 머리 숙여 엄숙히 맹세하자’고 하니 여의도는 아직도 전체주의 시대인가.

일제시대 안창남이 ‘날틀’을 타고 이륙한 곳이 여의도. ‘하늘에는 안창남, 땅 위에는 엄복동’이라고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얼마나 기뻐하였던가. 국군의 날에는 안창남의 후예들이 팬텀기를 타고 여의도 상공에 나타났다. 오늘도 엄복동의 후예들은 여의도에서 자전거 바퀴를 굴린다.

센트럴파크에서 폴 사이먼이 100만 관중 앞에서 공연할 때, 여의도에서는 대통령 후보들이 그만큼의 군중을 모아놓고 사자후를 토했다. 당장 내일 아침이면 세상의 종말이 올지도 모른다고 또 다른 시민 100만명은 아스팔트 바닥에서 밤새 기도를 했다. 이것들이 모두 여의도의 역사다. 이런 과거는 묻어두고 세종대왕 동상과 팔각정을 옮겨놓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세종대왕은 아무데서나 모실 분이 아니다. 비록 짧은 역사지만 오늘의 여의도를 만들면서 동상으로 남을 만큼 떳떳한 사람이 이리도 없는가. 없다면 차라리 자리라도 비워두자. 그 자리는 지금 공원에서 뛰어다니는 어린이들이 채워갈 몫이다.

서현<건축가>hyun1029@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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