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기타]퇴계 “내가 왜 서원에 대한 詩를 썼을꼬?”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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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풍경으로 본 옛 건축정신/최종현 지음/304쪽·1만6500원/현실문화

학창 시절 역사 수업에서 고구려 고분벽화를 배울 때 시험을 의식해서인지 방향에 따라 청룡 백호 주작 현무를 외웠던 기억이 난다. 무용총 수렵도는 활로 사슴의 목을 겨냥한 기마무사와 정밀하게 묘사된 마차의 바퀴살까지 생생하다. 그런데 한쪽의 큰 나무는 벽화의 상당 부분을 차지할 만큼 컸는데도 기억에는 전혀 남아 있지 않다.

도시와 취락의 역사를 연구해온 저자는 이처럼 간과하기 쉬운 나무와 풍경을 통해 옛 건축의 정신을 다시 보라고 권유한다. 저자에 따르면 벽화의 나무와 산은 수렵도가 묘사하는 자연을 크게 나누는 역할을 하고 있다. 큰 나무는 하늘과 땅을 연결해주는 중심목이며, 나무를 숭배하는 우리 민족의 숭목(崇木) 사상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 책은 8강과 하나의 보론(補論)으로 구성돼 있다. 고구려 고분벽화, 도산서원, 관동지방, 경북 봉화 닭실마을의 예를 들어 나무를 포함한 자연과 인간, 건축의 관계를 살폈다. 퇴계 이황은 서원 주변을 단순한 외부 환경이나 풍경으로 본 것이 아니라 물아일체(物我一體)의 대상으로 삼았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퇴계가 서원 건축 과정에서 지인들과 주고받은 편지들은 대학자의 다른 면모를 엿볼 수 있어 흥미롭다. 퇴계는 서원이 완공되기도 전에 서원과 관련한 시를 지은 것을 두고 “장자가 이른바 계란을 보고서 닭을 구한 것과 같다”며 후회했다.

보론은 도시학자인 저자의 현재적 고민을 담고 있다. 전통을 간직한 도시들이 역사중심도시와 경제중심도시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지속가능한 도시가 되려면 자연에 더욱 다가서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충고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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