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을 떠났던 선조들⑤]오사카 한국노인홈「고향의집」

  • 입력 1998년 2월 10일 20시 13분


조센진. 멸시와 천대로 얼룩진 과거를 차라리 지워버리고 싶은 잠재적 본능이 작용했던 것일까. 노쇠한 그들은 기억도 가물가물했다. 하지만 그들의 그늘진 표정에서 지난 세월의 고통과 설움을 읽어 내기는 어렵지 않다. 일본 오사카부 사카이(堺)시에 위치한 ‘고향의 집’. 일본에서 유일한 순수 한국인 노인홈으로 89년 문을 열었다. 윤기(尹基)이사장이 84년 아사히신문에 ‘가장 불행한 시대에 태어나 남의 나라에서 삶을 강요당한 교포 노인들에게 한국말로 대화할 수 있고 고향 음식을 먹으며 여생을 보낼 수 있도록 양로원을 짓고 싶다’는 글을 기고한 것이 계기가 됐다. 이듬해 ‘재일한국노인홈 만드는 모임’이 발족되고 4년에 걸친 준비끝에 최고의 시설을 갖춰 정원 50명으로 개원했다. 96년 증축, 규모를 조금 늘렸다. 현재 이 곳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는 노인들은 80명. 평균 나이 85세로 오갈데가 없거나 병들고 자식들로부터 버림을 받은 재일동포 1세대 노인들이 대부분이다. 최한근(崔漢根·86)씨 부부. 경남 산청이 고향이라는 최씨는 스무살이 안된 나이에 먼저 온 형님을 뒤쫓아 오사카를 찾았다. “형님하고 철도건설 사업장에서 막일을 했어요. 토목 청부업자는 품삯을 미루기만 했지만 형님은 일본말을 못해 돈 달라는 얘기를 못하고 나는 돈 달랄 용기가 없었고. 1백원 모으면 고향에 돌아가려고 했는데 결국 못가고 말았어요.” 최씨는 과거의 고생보다 자식들로부터 버림받은게 더 가슴이 아픈 듯했다.그러나 고향의 집에서 여생을 보내는 이들은 그나마 선택받은 사람들이다. 여기에 들어오기 위해 1백명 이상이 대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양문철(梁文喆)부시설장이 전한 사연은 처절하다. “제주도 사투리에 일본말을 섞어 쓰는 한 할아버지가 만두를 훔쳐 먹다가 붙잡혔다고 하기에 가 봤더니 다다미 넉장반 크기의 퀴퀴한 방에서 혼자 살고 있더군요. 외국인 등록증도 없었어요. 호적도 없이 수십년을 떠돌아 다닌 것이지요. 그런 사람이 어디 한둘일까요.” 양부시설장은 그러면서 제2, 제3의 ‘고향의 집’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IMF 한파로 우리나라 경제가 무척 어렵겠지만 예산이 휘청거릴 정도가 아니라면 아직도 한국 국적을 갖고 있는 재일동포들에게 눈을 돌려야 한다”면서 “본국에서 어느 정도의 지원이 있어야 일본 사회를 설득하기 쉽다”고 관심을 촉구했다. 〈오사카〓정용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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