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갈등탐구]양창순/언어폭력이 더 무섭다

  • 입력 1998년 8월 5일 19시 08분


어느 날 김과장은 중학교 2학년생인 딸아이한테 ‘따끔한 충고’를 들었다. “아빠, 이제부터 엄마를 부를 때 ‘야!’하고 소리치지 마세요. 특히 우리들 앞에서는요.”

평소 무심코 아내한테 ‘야!’ ‘어이!’ 어쩌구 했던 일이 너무나 낯뜨거웠다.

김과장의 경우는 그래도 나은 편.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예사로 언어폭력을 일삼는 부부들이 있다. 일부러 아이 들으라고 ‘너희 아버지는 무능하고 쓸모없다” “너는 아비처럼 되지 말라”고 말하는 아내들도 있다.

차마 해서는 안될 일, 안될 말을 부부사이라고 해서 거침없이 쏟아 놓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얼마 전 가정폭력방지법이 발효되면서 그동안 수면 아래 잠겨있던 가정폭력이 다양한 형태로 드러나고 있다. 어떤 경우든 폭력은 용납돼서는 안된다. 언어폭력도 마찬가지. 흔히 신체적 위해를 가하는 것만 폭력이라고 여기기 쉽다. 하지만 언어폭력도 신체적 폭력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

정신을 황폐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더 나쁘다. 부부 사이에서 교묘하게 일어나는 언어폭력은 누군가에게 상처를 호소하기도 힘들다. 수치심과 모욕감을 주어 잠깐동안 상대방을 자기 뜻대로 움직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상처는 영원히 지워질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음미해볼 만한 글이 있다.

‘매를 맞으면 온 몸에 멍이 들어 모두 그걸 보고 마음 아파한다. 하지만 모욕당하고 욕을 먹으면 마음의 상처로 미칠 듯이 괴로운데 그것은 눈에 보이질 않으니 누구도 상관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리 큰 몸의 상처도 마음의 상처보다는 빨리 치유되는 법이다.’

양창순(서울백제병원 신경정신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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