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치지 않는 자의 골프 이야기]<8>골프와 패튼 장군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28일 09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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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한 사람은 원하는 목표와 가치를 이루기 위해 그 10분의 1만 요구한다. 용감한 사람은 원래 가치의 두 배를 목표로 잡아 그 반만 이루는 것으로 타협한다.(The timid man yearns for full value and demands a tenth. The bold man strikes for double value and compromises on par)”

미국 대문호 마크 트웨인(1835~1910)의 말이다. 일반적 예상과 달리 목표를 높이 잡을수록 오히려 그 목표를 달성하기 쉬워진다는 뜻이다.

골프에도 이 격언이 통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골프의 귀재로 통하는 과거 상사 한 분은 “타수를 줄이고 싶으면 자신의 현재 스코어보다 1~2타를 낮추겠다는 소박한 목표를 가지지 말고 아예 7~8타를 줄이려는 원대한 목표를 삼아야 타수를 줄일 수 있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왜 그럴까. 한두 타를 줄이려는 사람들은 대부분 골프채 일부를 바꾸거나 자세를 조금 교정하는 정도의 부분적 변화만 시도한다. 하지만 7~8타를 줄이려 할 때는 아예 골프채 그립 쥐는 법부터 시작해서 완전히 새로 골프를 배운다는 마음가짐으로 근본적 변화를 꾀하기에 이 원대한 목표가 달성 가능해진다는 주장이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도 1990년대 ‘신(新) 경영’을 주창할 때 직원들에게 비슷한 취지의 이야기를 종종 했다. 베스트셀러 ‘내려놓음’, ‘기대’의 저자이자 절친한 후배 이용규 선교사(49)가 ‘서울대 졸업, 하버드대 박사’라는 화려한 타이틀과 안정된 미래를 버린 것도 같은 이유라고 본다. 세속적 성공이 아니라 몽골에서의 사역이라는 험난하지만 원대한 목표를 택했기에 가능한 일 아닐까.

비단 골프가 아닌 업무도 마찬가지다. 어려운 프로젝트를 맡았을 때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까 우려하며 아직 벌어지지도 않은 문제를 대비한답시고 난리법석을 떨면 당초 목표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


하지만 목표를 아예 흔히 얘기하는 ‘stretching goal’로 잡아 놓으면 자잘한 현실적 고민들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는 효과가 있다. 중간 과정을 고민할 여유가 없이 그저 ‘방향’과 ‘도달점’만을 향해 전진하다보면 상상하지도 못한 훌륭한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뜻이다.

역사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좋은 예가 제 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을 승리로 이끈 명장 조지 스미스 패튼(1885~1945)과 ‘벌지 전투(Battle of the Bulge)’의 승리다.
패튼 장군
패튼 장군

1944년 6월 노르망디 상륙에 성공한 연합군은 독일 본토를 향해 진격하고 있었다. 여름만 해도 곧 독일 전체를 쉽게 격침시킬 듯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가을로 접어들면서 진격 속도가 떨어졌다. 같은 해 12월 16일 히틀러는 벨기에 남부 아르덴느에서 연합군에게 대규모 기습 공격을 가한다.

아르덴느는 고원 지대답게 깎아지른 절벽, 좁은 산길, 계곡 사이사이 놓인 교량 등이 많았다. 이 전투의 이름에 아르덴느가 아닌 ‘벌지(Bulge·돌출부)’란 이름이 붙은 것도 아르덴느 지역이 벨기에 지도에서 배불뚝이처럼 툭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히틀러는 대형 전차의 통행이 어려운 지형 구조를 완전히 무시하고 잘 훈련된 독일 기갑군단을 아르덴느 숲에 밀어 넣었다. 예상치 못한 독일군의 역습에 미군은 우왕좌왕했다.

지역 소도시 바스토뉴에서 미 제101 공수사단을 포함한 1만7000여 명의 미군은 독일군 3개 사단 4만5000명으로부터 포위를 당했다. 보급이 완전히 차단된 상태에서 폭설로 30cm 이상의 눈까지 내렸다. 미군은 영하의 혹독한 날씨에 시달리며 각종 질병과 부상에 신음했다.

1944년 12월 26일 새벽 패튼 장군이 이끄는 미국 제4기갑사단이 독일군의 측면 포위망을 뚫고 바스토뉴에 포위된 미군들을 구출해냈다. 간결하고 거칠지만 핵심을 찌르는 각종 명언으로 유명한 패튼은 이 벌지 전투에서도 명언을 남겼다. 그는 어떻게 독일군의 거센 반격을 물리치고 승리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나는 죽으면 천당에 갈 거야. 이 곳 바스토뉴가 지옥보다 더한 곳이니까 말이야. 부하들에게도 말했지. 천당에 갈 거니까 ‘닥치고’ 전진하라고. 부하들에게 ”마구 돌진하라“는 말밖에 한 게 없어.”

패튼이 상황을 하나하나 따지면서 계획을 짜고 연달아 회의를 하면서 진격했다면 그는 결코 벌지 전투를 승리로 이끌지 못했을 것이다. 일개 전투의 승리가 아니라 천당이라는 그보다 훨씬 먼 곳을 목표로 했기에 가능했다고 역설적으로 말할 수 있다.

패튼 장군
패튼 장군

‘목표를 높게(Aim high)!’

1990년 대 미국 공군이 모병 광고에 쓴 슬로건이다. 광고 전문가로서 나는 이 표어를 매우 훌륭한 슬로건이라고 평가한다. 간결하고 명확하며 세련됐기 때문이다. 반면 미군이 21세기 초 내놓은 ‘날아라-싸우자-이기자(Fly-Fight-Win)’는 절도 있는 군인의 이미지를 상징한다기보다 고등학교 치어리더 팀 표어를 연상시킨다. 잇따른 비판이 제기되자 미 공군은 2014년 다시 모병 광고의 슬로건을 ‘Aim high’로 바꾸었다.

높이 뜬 한가위 달을 보며 인생과 골프 모두 ‘Aim high’ 하시기를 바란다.

박재항 하바스코리아 전략부문 대표 parkjaehang@gmail.com

::필자는?:: 제일기획 브랜드마케팅연구소장, 이노션 마케팅본부장, 현대차그룹 글로벌경영연구소 미래연구실장, 기아차 마케팅전략실장 등을 역임한 브랜드·커뮤니케이션 전문가다. 현재 프랑스계 다국적 마케팅기업 하바스코리아의 전략부문 대표를 역임하고 있다. 저서로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 ‘브랜드마인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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