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식의 스포츠&]지갑 주인들의 외침 “네 실력을 보여줘”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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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첫 FA 때 86억 원을 받은 최정(SK)은 내년 시즌 국내 무대에 남을 경우 두 차례 FA 총액 첫 200억 원을 넘어설 것이 유력하다. 김종원 스포츠동아 기자 won@donga.com
4년 전 첫 FA 때 86억 원을 받은 최정(SK)은 내년 시즌 국내 무대에 남을 경우 두 차례 FA 총액 첫 200억 원을 넘어설 것이 유력하다. 김종원 스포츠동아 기자 won@donga.com
안영식 스포츠 전문기자
안영식 스포츠 전문기자
요즘 하루가 멀다 하고 자유계약선수(FA·Free Agent) 관련 기사가 나온다. 시즌을 마친 농구와 배구는 선수와 구단 간 줄다리기가 한창이다. 남자프로배구 한선수(대한항공)는 역대 V리그 최고 연봉인 6억5000만 원에 도장을 찍었다. 개막한 지 두 달째인 프로야구에서는 벌써 2019년도 FA 최대어(SK 최정, 두산 양의지)가 거론되고 있다.

일반 월급쟁이의 꿈이 임원이라면 프로 스포츠 선수의 로망은 FA다. 종목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인생역전’ 로또 1등 당첨금을 웃도는 ‘대박 FA’가 종종 나온다. 천신만고 끝에 기업체 임원이 됐어도 롱런이 중요하듯 FA도 재계약이 관건이다.

직업 선택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이다. 직장(구단) 선택의 자유도 당연한 권리다. 하지만 FA가 온전한 자유를 누리는 것은 아니다. FA 요건을 갖췄어도 보상 선수와 보상금, 이적료 등의 선결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팀을 옮기는 게 여의치 않다.

게다가 실력 못지않게 운(運)도 따라야 목돈을 쥘 수 있다. 시장 상황에 따라 자신보다 뛰어난 FA가 많으면 원래 소속 구단에 잔류한 채 흡족하지 못한 몸값 계약서에 사인할 수밖에 없다. 아니면 방출돼 어느 팀의 콜도 받지 못한 채 은퇴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저 그런’ 프로 선수의 슬픈 현주소다. 자영업자인 프로 선수는 퇴직금도 없기에 더욱 그렇다.

프로야구 롯데 이대호(4년간 150억 원) 같은 ‘FA=대박’은 극소수다. 일반 선수는 물론 FA 선수들끼리도 ‘상대적 박탈감’은 심각하다. 특히 샐러리 캡(연봉 총액 상한제)이 적용되는 농구와 배구는 특정 선수가 거액을 차지하면 나머지 선수들에게 돌아가는 몫은 적을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지난 시즌 남자프로농구(샐러리 캡 23억 원)의 최고 연봉 선수인 KCC 이정현은 무려 9억2000만 원(샐러리 캡의 40%)을 받았다. 나머지 60%인 13억8000만 원(샐러리 캡 100% 소진 기준)이 나머지 국내 선수 17명에게 분배된 셈인데, 지난 시즌 남자프로농구 평균 연봉은 1억3372만 원이었다.

남자프로농구 원년인 1997년(샐러리 캡 10억 원) 공동 최고 연봉은 허재(당시 기아)와 전희철(당시 동양)의 1억2000만 원, 선수 평균 연봉은 6011만 원이었다. 화폐 가치와 물가가 달라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그 증가율은 프로 스포츠에도 존재하는 ‘빈익빈 부익부’를 한눈에 보여준다. 개인 최고 연봉은 약 7.7배로 증가한 반면에 평균 연봉은 약 2.2배로 늘어나는 데 그쳤다. 다음 시즌 남자프로농구의 샐러리 캡은 24억 원으로 1억 원 증액된다. 그 정도로는 상후하박(上厚下薄)의 연봉 구조에 큰 변화는 없을 듯하다.

한때 ‘사회적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이유로 고수익 스포츠 스타들이 눈총을 받던 시절도 있었지만 시대가 바뀌었다. 우리나라 선수들이 국내는 물론 글로벌 스포츠 무대에서 멋진 활약을 펼치며 천문학적인 수입을 올리는 것은 박수갈채를 받을 일이다. 대표적인 게 메이저리거 추신수(텍사스 레인저스)의 2014년 FA 계약(7년간 1억3000만 달러)이다.

다만 박찬호(당시 텍사스 레인저스)로 대변되는 ‘먹튀’(먹고 튀는 선수)가 문제다. 거액의 계약금과 연봉을 받고 이적한 선수가 부상과 노쇠한 탓에 기대에 못 미친 사례는 국내에서도 드물지 않다. 더군다나 우리나라 남자 선수는 병역 해결 기간이 필요해 FA 연령대가 늦어질 수밖에 없어 ‘먹튀 FA’가 나오기 쉬운 구조다.

솔직히 국내 4대 프로 스포츠(야구, 축구, 농구, 배구)는 무늬만 프로다. 모기업의 지원 없이는 한 해도 버틸 수 없다. 그런데 그 돈은 바로 모기업의 홍보, 마케팅 비용이다. 이는 소비자가 구매하는 제품과 서비스 가격에 전가된다. 결국 관중과 팬의 지갑이 그 원천이다.

돈보다 인간관계를 중시한 스포츠 에이전트의 애환을 담은 영화 ‘제리 맥과이어’가 생각난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미식축구 선수인 로드 티드웰(쿠바 구딩 주니어)은 걸핏하면 자신의 에이전트인 제리 맥과이어(톰 크루즈)에게 ‘쇼 미 더 머니(Show me the money)’를 외친다. 직역하면 ‘큰돈을 벌게 해줘’다. 좀 세련되게 의역하면 ‘(에이전트로서) 너의 실력을 보여줘’다. 그런 의미라면, 이 말은 관중과 팬도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대박 FA로서) 당신의 몸값에 걸맞은 실력을 보여줘.’ 지갑을 여는 우리에겐 그럴 권리가 있다.
 
안영식 스포츠 전문기자 ysahn@donga.com
#fa#프로 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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