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치혁 기자의 축구생각]슈틸리케, 폭탄주 15잔 마시는 주당이지만…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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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숙훈련 기간엔 금주 수도승 생활… 히딩크는 선수들 맥주파티 열어줘
장기합숙때 가벼운 술은 보약될수도… 선수 스스로 행동 통제할 수 있어야

지난달 21일, 2016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조별리그 3차전에서 러시아를 3-0으로 꺾고 조 1위로 16강에 오른 웨일스의 라커룸에서는 잔치가 벌어졌다. 크리스 콜먼 웨일스 감독이 선수들에게 맥주 1캔씩을 돌리며 조촐한 자축연을 연 것이다.

대부분의 대표팀에서 큰 대회 기간 중 음주는 금기사항이다. 착실히 다져온 팀 분위기가 일순간에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날 그런 조짐이 보였다. 일부 고참급 선수들이 감독에게 다가와 ‘숙소로 맥주 한 병 더 가져갈 수 있겠느냐’고 물은 것이다.

콜먼 감독은 당시 상황을 기분 좋게 회상했다. “선수들의 요청에 대답을 안 했지만 내가 굳이 바보 같은 짓을 하지 말라고 얘기할 필요도 없었다. 선수들이 알아서 자제를 했다.”

웨일스는 1958년 월드컵 이후 58년 만에 메이저 대회에 출전했다. 유로 2016에서 감격적인 16강 진출을 해낸 혈기 왕성한 선수들이 맥주 1캔으로 만족하긴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그야말로 ‘안 마실 수는 있어도 1병만 마실 수는 없는’ 상황.

감독이 위험을 감수하고 맥주 마시는 것을 허락했고 선수들은 일찌감치 현실을 직시하고 자제력을 보여줬다. 웨일스가 이번 대회 준결승에 오른 이유는 이런 팀 분위기 덕분이었다. 웨일스는 다음 날 프랑스로 응원을 와 있던 선수 가족들을 불러 바비큐 파티도 열었다. 콜먼 감독이 직접 나서 고기를 구웠다.

이런 이벤트는 ‘밀실 공포증(Cabin Fever)’ 극복을 위해 기획된 것이다. ‘밀실공포증’은 장기간의 합숙훈련 탓에 무기력증과 답답함, 목표의식 약화 등이 동반되는 정신적 피로감을 일컫는다. 한 달 넘게 숙소에 갇혀 단체생활을 하다 보면 대부분의 선수들이 빠지게 되는 증상이다. 큰 대회를 치르는 대표팀의 가장 큰 적은 지루함이다. 웨일스 코칭스태프는 대표팀의 심리 전문가와 상의해 대회 초반부터 이런 이벤트를 준비해 왔다.

감독마다 장기 합숙에 대한 원칙은 다르다. 울리 슈틸리케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은 앉은자리에서 폭탄주 열댓 잔은 가볍게 마시는 주당이다. 하지만 합숙 기간 중에는 술을 전혀 입에 대지 않는다. 가볍게 와인 한잔 하라는 주위의 권유에도 손사래를 친다. 합숙 기간 중에는 수도승처럼 축구 하나에만 몰두하겠다는 자신만의 철학 때문이다.

반면 엄격해 보였던 거스 히딩크 전 대표팀 감독은 의외로 기분파였다. 2001 컨페더레이션스컵 때와 2002 한일 월드컵 직전 제주 합숙훈련 때 선수들에게 외출을 허락했다. 2002 한일 월드컵 준결승이 끝났을 때도 가벼운 맥주파티를 열었다.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는 “상당한 충격이었다. 당시까지 겪었던 한국 지도자들에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고 회상했다.

스포츠 심리학을 전공한 김병준 인하대 교수는 “장기 합숙훈련 과정에서 가벼운 음주와 가족과의 만남은 권장할 만한 사안이다. 다만 선수들 스스로 행동을 통제할 수 있는 책임감이 전제돼야 한다. 팀에서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팀 정신을 공유할 수 있는 조치들을 사전에 마련해야 선수들이 쉽게 따라올 수 있다”고 평가했다.

결국 중요한 건 음주의 허용 유무가 아니라 선수들의 자제력과 프로정신, 이를 하나로 모을 수 있는 팀 차원의 대비 능력이다. 유로 2016에서 일어난 약팀들의 반란이 이를 잘 증명해 준다.
 
장치혁 기자 jangta@donga.com
#축구#음주#합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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