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석 기자의 스포츠 한 장면]잘난 감독, 못난 감독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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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성우 우리은행 감독(왼쪽)이 지난달 20일 여자 프로농구 4년 연속 우승을 달성한 뒤 선수들을 얼싸안고 기뻐하고 있다. 위 감독은 프로선수 시절 주로 후보 신세였던 무명선수 출신이다. 동아일보DB
위성우 우리은행 감독(왼쪽)이 지난달 20일 여자 프로농구 4년 연속 우승을 달성한 뒤 선수들을 얼싸안고 기뻐하고 있다. 위 감독은 프로선수 시절 주로 후보 신세였던 무명선수 출신이다. 동아일보DB
이종석 기자
이종석 기자
3월 끝난 여자 프로농구에서 우승한 우리은행 위성우 감독은 열흘간의 포상휴가를 받아 지난주까지 선수들과 몰디브에서 시간을 보냈다. 신혼여행지로 유명한 몰디브를 처음 가본 소감을 그는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로 표현했다. “지기데요(죽이데요).” 술을 못 해 모히토는 안 마셨다고 한다. 모히토는 영화 ‘내부자들’에서 이병헌이 “모히토 가서 몰디브 한 잔”이라는 우스개 대사를 날린 뒤로 많이 알려진 칵테일이다.

지난해까지 우리은행은 매번 하와이로 포상휴가를 갔다. 선수들 사이에서 “하와이는 이제 지겹다”는 얘기가 나왔다. 그래서 이번엔 휴가지를 바꿨다. 올해까지 4년 연속 우승한 우리은행은 4월 포상휴가가 연례행사처럼 자리를 잡았지만 2012년까지만 해도 4년 연속 꼴찌만 했던 팀이다. 달라진 건 위 감독 부임 후부터다. 위 감독이 팀을 맡은 첫해인 2012∼2013시즌부터 이번 시즌까지 한 번도 우승을 놓치지 않았다.

“과외선생을 구할 때 학부모들은 서울대 출신을 원한다. 왜 그렇겠냐.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잘했던 사람이 더 잘 가르치니까 그렇다. 감독도 마찬가지다. 선수 때 잘했던 사람이 당연히 더 잘 가르친다. 그런 사람한테 감독을 맡기는 게 당연하다.” 이런 소리를 거리낌 없이 해대는 프로농구 감독 A가 있었다. A는 선수 시절에 날렸다.

위 감독은 선수 시절 국가대표와는 거리가 멀었다. 단국대를 나온 위 감독은 1995년 실업팀 현대전자에 입단했다. 국군체육부대에서 병역을 마친 뒤 1998년부터 2004년까지 SBS와 동양, 모비스를 거치며 프로 선수로 뛰었지만 주로 후보 신세였다. 지난달 끝난 남자 프로농구 우승팀 오리온 추일승 감독 역시 국가대표 경력이 없다. 홍익대를 졸업한 추 감독은 1986년 실업팀 기아자동차에 입단했고 1990년 선수 유니폼을 벗었다. 은퇴 후 기아차 소하리공장에서 노무관리 직원으로 근무하던 그는 1991년 기아차 농구단 매니저를 맡아 일하다 1999년 상무 사령탑이 되면서 감독의 길로 들어섰다. 지난달 막을 내린 프로배구 여자부에서 우승한 현대건설 양철호 감독도 마찬가지다. 한양대를 다닌 양 감독은 국가대표는커녕 실업이나 프로팀에서도 뛴 적이 없다. 실력이 별로라 대학 졸업 후 오라는 팀이 없었다. 그는 1998년 강원도의 한 고등학교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선수 때 이름을 날렸던 B가 감독이던 때 일이다. “나는 이 나이에도 들어가는데 이게 그렇게 어렵냐?” B가 이런 말을 하면서 선수를 옆에 세워 놓고 3점슛을 던지는 장면을 직접 본 적 있다. ‘내가 선수일 때는 다 되던데 너는 왜 못하냐?’ 하는 소리다. 선수를 적으로 만드는 짓이다. 이런 짓을 두고 유재학 모비스 감독은 “감독으로서 망하는 지름길”이라고까지 했다. 축구 선수로 성공한 C는 감독 시절 모든 기준을 자기 선수 때에 맞춰 놓고 가르치려 들어 선수들 사이에 불만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내가 선수 때는 말이야…” 하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살았다고 한다. 당시 C가 맡고 있던 팀에서는 ‘잘난’ 감독이 좋은 성적을 내는 꼴을 보기 싫어 경기를 대충 뛴 선수들도 있다. B도, C도 감독으로서는 실패했다. A도 감독으로서는 선수 때만큼의 능력을 보여주지 못해 지도자로 성공했다는 소리는 못 듣는다.

안 되는 걸 되도록 가르쳐 주는 게 지도자가 할 일이다. “이게 왜 안 되냐?” 이래 버리면 감독이 따로 있을 필요가 없다. 너도나도 다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감독의 잘나갔던 선수 시절을 굳이 높이 평가해 줄 이유도 없다. 꼭 스포츠 감독이 아니더라도 회사에도, 학교에도 이런 ‘잘난’ 감독류의 인간들 꼭 있다. 사방이 적인 사람들이다.

“나도 선수 때 그런 게 잘 안 돼서 참 힘들었다. 이렇게 한번 해봐라. 나는 도움이 많이 됐는데….” 국가대표 근처에도 못 가본 위 감독이 만년 꼴찌 우리은행을 4년 연속 정상에 올려놓은 데는 틀림없이 이런 소통 능력도 역할을 했다고 본다. 별것 아닌 것 같아도 ‘잘난’ 감독들한테는 쉽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선수 때 잘나가고도 감독으로서는 실패하는 이유가 별것 아닌 이런 말을 못해서일 수도 있다.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여자#프로농구#우리은행#위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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