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옥 기자의 야구&]야구에선 왜 ‘한강’이 안나올까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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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한강이 ‘채식주의자’로 세계 3대 문학상인 맨부커상을 수상했다. 한국 문학의 쾌거다. 한강은 ‘아제아제 바라아제’로 유명한 한승원 작가의 딸이다. 문학 유전자(DNA)를 공유한 아버지와 딸이자, 고뇌의 길을 함께 걸어가는 스승과 제자다. 아버지는 “딸이 진작 나를 뛰어넘었다. 이번 수상으로 가장 큰 효도를 했다”고 말했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의 감격이다.

같은 길을 걷는 부모와 자식은 스포츠계에 꽤 많다. 차범근-차두리(축구), 조오련-조성모(수영) 등 같은 종목도 있고, 안재형(탁구)-안병훈(골프)처럼 다른 종목도 있다. 국민스포츠인 야구는 상당히 활발하다. 원년 삼미 슈퍼스타즈를 이끈 김진영 전 감독과 아들인 김경기(SK 퓨처스팀 감독) 등 수많은 부자(父子)가 그라운드를 함께 누볐다.

그런데 한승원-한강 부녀 같은 청출어람은 없었다. 그나마 성공한 김진영-김경기 부자의 사례만 30년간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이유다. “아버지들의 그 우월한 유전자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야구계의 오랜 미스터리다.

운동신경의 유전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운동신경이 유전과 아예 상관없다는 설도 있고, 격세유전(조부모의 형질이 손자에게 전해지는 것)이 된다는 주장도 있다. 스카우트들에게 물었더니 “경험적으로 봤을 때 (2세 선수 중) 절반은 평균 이하의 운동신경을 갖고 있고, 절반가량은 상당히 뛰어난 편”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 뛰어난 50%마저 아버지를 추월하지 못했다. 유전자는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었다. 후천적인 교육이 문제였다. 한 아마추어 감독은 “지도자들이 부담스러워 한다. 자세를 교정해줬는데, 혹여 ‘잘못 배웠다’는 말이 나올까 두려운 것이다. 그래서 웬만하면 그냥 놔둔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후광이 오히려 악재였다.

그렇다고 집안에서 특별 교육이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스타 출신인 아버지는 은퇴 이후에도 바쁘다. 대화하기도 쉽지 않다. 정규 교육도, 특별 과외도 모두 어정쩡해진 것이다. 또 아들은 아버지와 비교되는 걸 싫어하면서도, 정작 “내가 누구 아들인데…”라며 막연히 기대만 품는 경우가 많다. 아버지만큼 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배리 본즈는 그래도 청출어람에 성공했다. 아버지 보비 본즈는 통산 홈런 332개, 아들 배리 본즈는 762개를 쳤다. 우연한 결과는 아니었다. 보비는 아들에게 스윙의 기초를 하나부터 열까지 지도했다. 심지어 팬들에게 사인하는 방법도 가르쳤다. 또 자신의 한계를 직시하고 한 수 위였던 윌리 메이스에게 아들의 대부(代父)가 돼줄 것을 부탁했다. 메이스는 통산 홈런 660개를 기록한 전설이다. 배리 본즈는 그렇게 아버지를 넘어섰다.

한승원 작가도 맨부커상 수상에 교육 철학이 자리 잡고 있다고 설명했다. 프로야구가 크게 흥행하면서 2세들이 더 많이 야구계에 입문하고 있다. 현재 ‘바람의 아들’ 이종범의 아들 이정후(휘문고) 등 100여 명에 이른다. 그간의 실패 사례를 보면서 문화가 많이 달라졌다. 아버지의 권위는 낮추고, 또 유전자 논리에서 벗어나 교육과 열정에 더 집중하고 있다고 한다. 이제 야구계에서도 제2의 한강이 나올 수 있을지 주목된다.

윤승옥기자 touch@donga.com
#소설가 한강#야구#유전자#배리 본즈#청출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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