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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애진 기자의 주球장창]“야구만 시켜주면 속 썩이지 않겠다던 아들이 자랑스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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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애진 기자의 주球장창]“야구만 시켜주면 속 썩이지 않겠다던 아들이 자랑스러워”

주애진 기자 입력 2015-06-05 03:00수정 2015-06-05 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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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엽 400홈런 지켜본 아버지 “먼저 떠나보낸 아내 생각에 눈물”
프로야구 사상 첫 개인 통산 400홈런이 터지는 순간 경북 포항야구장의 관중은 일제히 일어나 환호했습니다. 그 순간 홈런 타자의 아버지는 손수건을 꺼내 조용히 눈물을 훔쳤습니다. ‘국민타자’ 이승엽(39·삼성)의 아버지 이춘광 씨(72·사진)는 그렇게 아들이 세운 또 하나의 대기록을 현장에서 지켜봤습니다.

3일 이 씨에게 눈물의 의미를 물었습니다. 한동안 대답을 하지 못하던 그는 울먹이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네. 다른 사람들 전부 기쁨의 박수를 치는데 왜 눈물이 나올까”라고 말했죠. 여러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와 눈물을 흘리면서 이 씨는 먼저 떠난 아내를 생각했습니다. 이승엽의 어머니 김미자 씨(당시 56세)는 2007년 1월 6일 뇌종양 투병 중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씨는 “자식이 큰 기록을 세웠을 때 같이 축하해줘야 하는데 그 빈자리가 크다”며 다시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홈런이 터진 뒤 전광판을 통해 이 씨가 눈물을 훔치는 모습을 보며 조금 놀랐습니다. 그 전에 만난 이 씨는 무척 담담해 보였거든요. 야구장에 조금 늦게 도착한 그는 지인들과 함께 경기를 보고 있었습니다. 아들의 홈런 기록에 대해서도 “400홈런도 대단한 기록이지만 개인적으론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준결승에서 일본의 마무리 투수 이와세 히토키를 상대로 때린 홈런처럼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친 홈런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습니다. 어지간한 기록 앞에선 긴장을 하지 않는다는 이승엽처럼 ‘그의 아버지 역시 평정심이 남다르구나’ 하며 속으로 감탄했죠.

하지만 이 씨의 눈물을 보는 순간 깨달았습니다. 무뚝뚝함 뒤에 숨겨진 깊은 부정(父情)을요. 이 씨는 자신의 한마디가 아들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아들이 경기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도 다음 날 경기가 있을 때는 전화를 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그는 “경기가 없는 날 아들이 자주 집에 들른다. 진정한 대화는 그때 하는 거지. 말 안 해도 다 아니까”라며 멋쩍게 웃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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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씨는 이승엽의 야구 인생에 가장 오랜 후원자입니다. 이승엽이 야구를 시작했을 때도,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프로의 길을 택했을 때도 이 씨는 언제나 아들의 편을 들어줬습니다. 이승엽이 대한민국 최고의 타자가 된 건 아버지의 변함없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죠.

이승엽도 그런 아버지의 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승엽은 “경상도 남자라 말로 잘 못한다. 그냥 눈빛으로, 마음으로 한다”며 웃었습니다. 홈런 직후 아버지가 우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그는 “아버지가 눈물이 많아지셨다. 어릴 때 못 받아본 칭찬도 많이 받는다. 잘하면 잘한다, 못하면 괜찮다고 문자를 자주 하신다. 어릴 땐 엄하게 컸는데 그런 교육이 오히려 약이 됐다. 400홈런을 때리는 장면을 홈구장에서 직접 보여드릴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했습니다.

프로야구의 ‘살아 있는 전설’인 아들이지만 이 씨가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건 거창한 기록이 아닙니다. 처음 야구를 시작할 때 반대하는 자신에게 “야구만 시켜주면 절대 속 썩이지 않겠다”고 한 약속을 아들이 지금까지 한 번도 어기지 않았다는 점이죠. 가끔 아들이 너무 큰 짐을 혼자 짊어진 것 같아 안쓰럽지만 이 씨는 아들에게 야구를 시킨 것을 후회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수고했다”는 한마디로 이승엽을 일으켜 세우는 이 씨는 400홈런 탄생의 숨은 공로자입니다.―포항에서

주애진 기자 ja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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