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 비키니]박병호 슬럼프 탈출, 체인지업 공략이 숙제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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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서 빨라진 체인지업에 타격코스-타이밍 잃고 부진
뜬공 타구속도는 톱 클래스… 마이너서 자신감 회복이 우선

꼭 박병호(30·미네소타)가 아니라도 슬럼프에서 벗어나려면 누구나 한 번쯤 거꾸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일단 헛스윙은 아무 잘못이 아닙니다. 프로야구 넥센에서 뛰던 지난해 박병호가 방망이를 허공에 휘두른 건 총 378번. 헛스윙 2위(284번) NC 나성범(27)과 똑같이 622타석에 들어섰는데 헛스윙은 94번 더 많았습니다. 비율로 따지면 박병호는 지난해 상대 투수들이 던진 전체 투구의 15%에 헛스윙했습니다. 올해 메이저리그에서도 이 비율은 똑같이 15%입니다.

‘제대로 걸리기만 하면’ 총알 같은 타구를 날리는 것도 여전했습니다. 메이저리그 홈페이지에는 외야 뜬공과 라인드라이브성 타구만 따로 떼어내 타구 속도를 알려주는 꼭지가 있습니다. 이렇게 측정하면 박병호의 평균 타구 속도는 시속 156km로 ‘코리안 메이저리거’ 중 1위입니다. 메이저리그의 대표적인 강타자인 ‘빅 파피’ 데이비드 오티즈(41·보스턴)와 똑같은 기록이기도 합니다.

물론 전체 기록은 사정이 다릅니다. 오티즈가 때린 타구는 평균 시속 151km이지만 박병호는 143km입니다. 오티즈는 5일 현재 OPS(출루율+장타력)가 1.112나 되는데 박병호는 0.684에 그친 이유입니다. 흔히 하는 얘기처럼 박병호가 빠른 공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까닭일까요?

타구 속도를 보면 이번에도 통념과 사실이 좀 다릅니다. 시속 95마일(약 153km) 이상으로 날아온 빠른 공을 때렸을 때 박병호가 기록한 타구 속도는 평균 149km로 자기 평균보다 빨랐습니다. 타구 속도가 빠를수록 안타가 될 확률도 당연히 올라갑니다. 박병호가 시속 95마일 이상인 공을 때려 안타를 하나밖에 기록하지 못한 데는 불운도 한몫 거들었던 겁니다.

박병호의 타구 속도를 가장 많이 갉아먹은 건 ‘느린 공’ 체인지업이었습니다. 올해 박병호가 체인지업을 때렸을 때 평균 타구 속도는 시속 127km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지난해만 해도 박병호는 체인지업을 평균 시속 147km짜리 타구로 만들던 타자였습니다. 갑자기 체인지업을 못 치게 된 이유가 뭘까요?

메이저리그에서는 체인지업이 ‘빠른 공’이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박병호가 한국에서 경험한 체인지업의 평균 속도는 시속 127km였습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이 속도가 135km로 빨라졌습니다. 두산 유희관(30)에게는 최고 구속이었을 속도로 메이저리그에서는 체인지업이 날아오는 겁니다. 또 지난해에는 상대 투수가 박병호를 향해 던진 공 가운데 5.8%만 체인지업이었지만 올해 메이저리그에서는 10.6%로 늘었습니다.

빠른 공과 느린 공이 뒤섞이면서 박병호는 자기 타격 코스를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지난해 박병호는 몸쪽 낮은 코스에 방망이가 많이 나가던 타자였지만 올해는 반대로 바깥쪽 낮은 코스에 방망이가 자주 나갑니다(그래픽 참조).

타자가 공을 칠 때는 몸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방망이 중심을 회전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몸쪽 공을 때릴 때는 방망이를 더 빨리 휘둘러야 하고 바깥쪽 공은 좀 늦어도 괜찮습니다. 이를 정리한 게 ‘효과 구속’ 이론. 이에 따르면 타자는 바깥쪽 낮은 코스를 공략할 때는 몸쪽 낮은 코스보다 공이 시속 8km 정도 더 느리다고 생각해도 됩니다. 체인지업이 딱 그만큼 빨라졌으니 박병호는 원래 치던 대로 치면 그만이었습니다. 그런데 모두들 ‘빨리 빨리’를 강조하다 보니까 박병호도 타격 타이밍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타자가 헛스윙하는 사례를 분석해 보면 방향보다는 타이밍이 문제인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그렇다고 그저 타이밍을 맞추는 데만 급급한 건 박병호 같은 홈런 타자에게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마이너리그에서도 박병호의 힘찬 헛스윙이 쭉 이어지길 기대합니다. 그게 메이저리그로 복귀하기 딱 좋은 타이밍을 찾아가는 최선의 과정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황규인 기자 페이스북 fb.com/bigkini
#박병호#타격 코스#체인지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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