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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성 전문기자의 &joy]진안 마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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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성 전문기자의 &joy]진안 마이산

동아일보입력 2014-01-16 03:00수정 2014-02-02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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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돛대인가! 말 ‘두 귀 쫑긋’ 인가!
눈밭의 먹물듬뿍 뾰족붓이로다!
익산∼장수 고속도로 마이산휴게소 옥상에서 바라본 진안 마이산의 숫마이봉(왼쪽 680m)과 암마이봉(686m). 언뜻 눈어림으로는 숫마이봉이 높아보이지만 실제는 암마이봉이 6m 더 높다. 봄엔 돛대봉, 여름엔 용각봉(龍角峰), 가을엔 마이봉(馬耳峰), 겨울엔 문필봉(文筆峰)으로 불린다. 자연이 1억 년 넘도록 빚은 거대한 천연콘크리트 축조물이라 할 수 있다. 기도발이 잘 받는 곳으로 알려져 곳곳에 굿당도 많다. 세계 최고 여행안내서 프랑스 미슐랭그린가이드에서 별 3개 만점을 받았다. 진안 마이산=박경모 전문기자 momo@donga.com
아! 세상에 이런 산이

신비로운 세계 유일의 부부산

천상천하 영원한 사랑의 화신이여
청정수맥은 갈한 영혼을 목축이리

굽이굽이 금강, 섬진강을 거느렸다
마이산은 신이 창조한 조화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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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중(山中)에 영산이라

하늘을 품은 기상은

인도(人道) 가는 길을 엄중히 묻는다
천지탑은 인간이 축조한 걸작이라

만인의 정성을 괴어올린

숭고한 모습, 한 개 두 개 올려놓은

저들의 소망을 받드는가
한 계단 두 계단 헤아리며

어찌, 하늘 층계를 오르내리나

아! 무거움을 내려놓을 곳이

바로 여기인 것을.

―허호석 ‘마이산’ 전문


전북 진안 마이산(馬耳山)은 ‘말 두 귀 쫑긋’ 봉우리이다. 아니다. 봄엔 바다에 떠 있는 배의 ‘돛대봉’이다. 여름에는 ‘용각봉(龍角峰)’이다. 푸른 숲과 검은 바위 그리고 하늘에 우뚝 솟은 봉우리가 영락없이 ‘용의 뿔’이다. 겨울엔 ‘문필봉(文筆峰)’이다. 하얀 눈 위에 솟은 거무튀튀한 봉우리가 먹물을 듬뿍 머금은 붓과 같다.

그렇다. 마이산은 가을 이름이다. 붉은 단풍과 쫑긋한 봉우리가 황갈색 말귀와 닮았다. 날렵하다. 신라시대 ‘서다(立)’산, ‘솟다(聳)’산, 고려시대 용출산이라고 부른 건 ‘봉긋 솟은 모습’을 빗댄 것이다. 뾰족한 숫마이봉(680m)이 둥글한 암마이봉(686m)보다 낮다. 눈어림으로는 분명 숫봉우리가 높아 보이는데, 암컷보다 딱 6m가 낮다. 착시현상이다. 암마이봉 아래 탑사가 있고 숫마이봉 아래 은수사가 있다. 두 절집 일대에선 겨울에 정화수를 떠놓으면 ‘역(逆)고드름(20∼35cm)’이 솟는다. 회오리바람과 기온 그리고 기압이 빚어내는 신비로운 현상이다.

숫마이봉은 두 아들을 안고 있는 모습이다. 언뜻 보면 ‘미륵불상의 얼굴’ 같기도 하다. 은수사에서 보면 코끼리 얼굴 같다. 두 봉우리는 제왕부부다. 주위의 여러 바위산들이 쌍봉에 머리를 조아리고 있다.

정화수에 솟아난 신비의 역고드름.
1억 년 전 마이산은 호수였다. 그 바닥이 솟아올라 지금과 같은 모양이 되었다. 쏘가리 모양의 민물고기 화석과 다슬기, 조개화석이 나오는 이유다. 호수바닥에 닳고 닳은 자갈과 모래, 화산재 등이 쌓여 있다가 어느 날 불끈 솟아올랐다. 그리고 수백만 년 동안 비바람에 깎여 뼈만 남았다. 햇살이 많은 남쪽 사면은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부스러기가 떨어져나가 벌집처럼 숭숭 뚫린 구멍이 많다. 타포니 현상이다. 타포니는 ‘벌집 모양의 자연동굴’을 지칭하는 프랑스 코르시카 섬의 방언. 한때 그 타포니엔 수천마리의 비둘기가 살았다 한다. 요즘엔 수리부엉이, 족제비 등에 잡아먹혀 거의 사라졌다. 응달진 북쪽 사면엔 타포니가 거의 없다.

마이산은 가까이에서 보면 돌과 모래가 버무려진 ‘천연콘크리트 축조물’이다. 마치 콘크리트를 쏟아 부어 거대한 산을 만든 것 같다. 그 길이가 수km에 이르며 쌓인 두께는 땅속 뿌리에서부터 1500∼2000m나 된다.

진안은 두 지층이 마주쳤던 곳이라 풍수로 보면 물과 산이 휘돌아나가는 ‘산태극물태극’ 형세다. 호남정맥, 금남정맥이 시작되고, 섬진강 발원지(백운면 데미샘)와 금강 상류가 엇갈린다. 그래서 ‘이곳이 편하지 않으면 호남이 편하지 않다’는 말이 나왔다. ‘鎭安(진안)’이라는 지명도 ‘고을을 진정시켜 편안하게 한다’는 뜻이다.

1885년경부터 이갑용(李甲龍·1860∼1957) 처사가 30여 년에 걸쳐 쌓은 돌탑들도 일종의 풍수 비보(裨補-허한 곳을 보완함)라고 할 수 있다. 당초 120여 개가 있었지만 지금은 80여 개만 남았다. 막돌을 1∼13m 높이로 틈새 없이 치밀하게 쌓아올렸다. 폭풍이 몰아쳐도 흔들리기는 하지만 무너지지 않는다.

마이산일대는 국가문화재(명승 제12호)다. 세계 최고 권위의 여행안내서 프랑스 미슐랭그린가이드에서 별 3개(★★★) 만점을 받았다. 지난해엔 100만 명이 다녀갔다. 요즘 갑오년 청말띠 해를 맞아 관광객이 부쩍 늘었다. 너도나도 말의 힘찬 기운을 받기 위해서다. 마침 올 10월엔 자연휴식년제로 10년 동안 입산 금지됐던 암마이봉 등산로가 열린다. 송영선 진안군수는 “식생복원사업을 마치고 탐방로에 나무 덱 등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적어도 지난해보다 관광객이 30∼40%는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 진안 고원길 ▼
진안고을 한바퀴 마이산둘레길


마이산은 진안군 중심에 우뚝 서있다. 해발 평균 300m 높이의 반 사다리꼴 진안고원(너비 18km, 길이 32km)의 핵이다. 진안사람들은 어디서나 마이산을 보며 눈을 뜨고, 마이산을 보며 잠에 든다. 진안 고원길은 진안군을 한바퀴 에두르는 14개 구간(200km)의 시골길이다. 마이산둘레길이라고도 할 수 있다. 보통 진안군청이 출발점이자 종점. 마이산을 보며 한바퀴 빙 돈다. 마이산의 여러 모습이 방향에 따라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고원길은 진안군의 11개 읍면 100개 마을과 50여 개의 고갯길을 지난다. 마을고샅길, 논둑길, 밭둑길, 숲길, 고갯길, 신작로, 고원길 등 걷는 맛이 쏠쏠하다. 사람 왕래가 끊긴 묵은 길, 잊혀졌던 옛길, 땔감과 약초 구하러 다니던 산길 등을 되살려냈다. 오지고 알차고 푸근하다. 외갓집 가던 길처럼 아늑하다. 진안 특산물인 홍삼색 리본과 인삼색 리본의 겹리본이 안내한다. 전부 돌아보려면 넉넉하게 잡아 보름은 걸린다. 일주일에 한 구간 정도 걷는 게 보통이다.

▼ 마이산은 임금용상 뒤 그림 일월오봉도 닮은꼴 ▼
이성계와 마이산


조선시대 어전의 일월오봉도.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일월오봉도는 조선시대 임금 용상 뒤의 그림이다. 해, 달, 다섯 봉우리, 월랑(月浪), 소나무 등을 형상화한 것으로 어전 아니면 함부로 그릴 수도, 걸 수도 없다. 그런데 숫마이산 절벽 아래 은수사 태극전엔 바로 이 일월오봉도가 걸려 있다. 어찌된 일일까.

마이산은 조선왕조 탄생에 얽힌 설화가 많은 곳이다. 1380년 이성계(1335∼1408)가 남원운봉 황산전투에서 왜구를 소탕하고 개성으로 돌아갈 때 잠시 머물렀던 곳이 바로 마이산이다. 지금도 그가 주둔했던 주필대(駐필臺)와 훗날 다시 찾아와 기도를 올렸다는 ‘100일 기도처(현재 탑사부근)’가 남아있다. 그때 지었다는 시구도 전해진다.

‘동으로 달리던 천마 이미 지쳤는가/갈 길은 먼데 그만 쓰러지고 말았구나/어찌 연인(涓人·궁인 내시)은 몸통만 가져가고 귀만을 남겼는가/쌍봉으로 변하여 반공중에 솟아 있네’

일월오봉도는 묘하게도 마이산과 닮은꼴이다. 해와 달이 산머리를 지날 때는 더욱 그렇다. 조선시대 ‘일월오봉도를 그릴 때 마이산을 모델로 삼았다’는 설도 있다. 나름대로 근거가 있다. 이성계의 꿈 이야기가 그렇다. 어느 날 이성계의 꿈에 신인(神人)이 나타나 금척(金尺) 하나를 주면서 이르기를 “바라건대 이 잣대를 가지고 삼한의 강토를 재어보오”하였다. 이성계가 괴이하게 여기고 있던 중, 황산대첩 후 돌아가다가 마이산을 보니, 꿈속의 그 금척과 흡사했다. ‘마치 묶어서 세워놓은 듯이 뾰족하게 솟아’ 있었던 것이다. 이성계는 그 자리에서 마이산을 ‘속금산(束金山)’이라고 명명했다. ‘묶어세운 쇠 잣대 산’이란 뜻이다.

조선 궁중무용엔 ‘금척무(金尺舞)’라는 춤이 있다. 바로 이성계가 꿈에 봤다는 ‘금척’을 몸짓으로 나타낸 것이다. 개국공신 정도전은 ‘산의 사면은 모두 돌로 우뚝 솟아 돛대와 같은데, 그 아름다움이 그지없이 좋도다’며 금척무의 가사를 지었다. 바로 마이산을 칭송한 것이다.

황산대첩 승장 이성계는 마이산에서 잠시 머문 뒤 곧 그의 뿌리인 전주(30여 km 거리)에 닿았다. 그는 종친들을 오목대(현 전주 한옥마을부근)에 불러 모아놓고 승전잔치를 벌였다. 술이 거나해지자 중국 한나라 유방이 나라를 세운 뒤 고향에 내려가 불렀다는 ‘대풍가(大風歌)’를 읊조렸다. ‘위풍을 해내에 떨치며 고향에 돌아왔네/내 어찌 용맹한 인재를 얻어 사방을 지키지 않을쏘냐.’ 고려를 뒤엎고 새 나라를 세우겠다는 속내를 은근히 내비친 것이다. 그때 종사관으로 따라갔던 정몽주(1337∼1392)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는 말을 달려 전주 만경대(남고산성)에 올라 비분강개한 마음을 시로 읊었다. ‘하늘의 해는 기울고 뜬구름 마주치는데/하염없이 고개 돌려 옥경(玉京·개경)만 바라보네.’

■Travel Info

▼교통
▽승용차=서울∼경부고속도로∼대전통영고속도로∼장수익산고속도로∼진안나들목∼국도30호∼진안 마이산 ▽버스=서울강남고속버스터미널 하루 2회(3시간 30분 소요), 보통 서울에서 전주까지 이동한 뒤 전주에서 시외버스를 이용해 진안까지 가는 게 편리하다. 전주에서 진안행 버스는 15∼20분 간격, 40분 정도 걸린다. 전주시외버스터미널 063-272-0209


▼먹을거리=마이산 남쪽들머리에 있는 ‘벚꽃마을식당(063-432-2007)’의 토종흑돼지 등갈비(사진)가 이름났다. 2006년 제3회 진안군향토음식 맛자랑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음식. 갈비 사이사이에 수삼을 끼운 뒤 200도 이상의 참나무장작불로 30∼40분 동안 구우면 참나무향이 은은하게 배어든다. 구운 돼지목살에 아삭아삭한 더덕을 얹어먹는 더덕구이정식도 일품이다. 진안흑돼지는 축산물품질평가원에서 1등급 품질인정을 받았다.

△애저 진안관(063-433-2629), 금복회관(063-432-0651) △흑돼지삼겹살 소나무회관(063-433-3634) △돼지김치찌개 월랑회관(063-433-2677) △소고기, 갈비탕 우래한우(063-432-2292) △더덕구이정식 한국관(063-433-0710)

♣진안 홍삼스파=한마디로 ‘인삼 힐링 천국’이다. 전 코스를 마치려면 3시간이 넘게 걸린다. 홍삼팩을 하고 홍삼물에 몸을 담그거나, 목까지 홍삼 거품을 채워 목욕을 한 뒤 안개와 이슬비 샤워를 한다. 홍삼거품 피부마사지도 가능하다. 노천탕 비슷한 야외스파에서 마이산을 바라보거나 나무침대에서 마른 약초와 건초를 덮고 쉴 수도 있다. 063-433-0393

♣진안홍삼=진안홍삼한방센터(063-432-0088), 전북인삼농협(063-433-3112), 송화수인삼(063-433-6767), 고려홍삼조합(063-433-3436), 한국인삼(063-433-1140)

김화성 전문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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