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성 전문기자의 &joy]‘붉은 동백꽃’ 강진을 어슬렁거리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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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같은 늦가을’ 강진월출산 “올랑가 말랑가 으짤랑가!”

‘봄 같은 늦가을.’ 강진월출산 자락 녹차밭에 사람꽃이 활짝 피었네! 내 누님 얼굴같이 화장기 하나 없이 말갛고 정갈한 월출산. 삐죽삐죽 봉우리마다 선이 곱고 귀품이 서렸다. 등 뒤 북쪽 나주 영암에서 보는 우뚝우뚝 우람한 월출산과는 대조적이다. 가운데 봉우리가 가장 높은 천황봉(809m). 마치 좌우에 신하를 거느리고 있는 것 같다. 산자락엔 10만여 평이나 되는 너른 녹차밭이 구물구물 이랑을 이루고 있다. 하얀 꽃잎에 샛노란 수술의 차꽃은 대부분 이울고, 어쩌다 피어 있는 꽃엔 꿀벌들이 잉잉거리며 코를 박고 있다. 강진=박경모 전문기자 momo@donga.com
‘봄 같은 늦가을.’ 강진월출산 자락 녹차밭에 사람꽃이 활짝 피었네! 내 누님 얼굴같이 화장기 하나 없이 말갛고 정갈한 월출산. 삐죽삐죽 봉우리마다 선이 곱고 귀품이 서렸다. 등 뒤 북쪽 나주 영암에서 보는 우뚝우뚝 우람한 월출산과는 대조적이다. 가운데 봉우리가 가장 높은 천황봉(809m). 마치 좌우에 신하를 거느리고 있는 것 같다. 산자락엔 10만여 평이나 되는 너른 녹차밭이 구물구물 이랑을 이루고 있다. 하얀 꽃잎에 샛노란 수술의 차꽃은 대부분 이울고, 어쩌다 피어 있는 꽃엔 꿀벌들이 잉잉거리며 코를 박고 있다. 강진=박경모 전문기자 momo@donga.com
늦가을 월출산은 화장기가 하나도 없다. 첫새벽 찬물에 헹군 누님의 얼굴처럼 말갛고 정갈하다. 강진 쪽에서 보면 더욱 그렇다. 강진은 월출산 남쪽 자락이다. 월출산 앞가슴 품에 다소곳이 안겨 있다. 강진에선 곱게 늙은 월출산 얼굴이 정면으로 마주 보인다. 선이 가늘고 화려하다. 귀품이 있다. 하얀 바위봉우리가 삐죽삐죽 병풍처럼 서 있다. 천황봉(809m)이 좌우에 신하들을 거느리고 그 한가운데 앉아 있는 모양새다.

북쪽 나주나 영암에선 우람한 월출산 등짝이 보인다. 우뚝우뚝 떡 벌어진 등판이 씨름선수의 그것처럼 듬직하다. 어깨뼈가 완강하다. 우두둑! 금방이라도 뼈마디 푸는 소리가 들릴 것 같다.

벌써 화르르 꽃을 피운 붉은 동백꽃.
벌써 화르르 꽃을 피운 붉은 동백꽃.
늦가을이 월출산 등짝을 타고 슬슬 내려앉고 있다. 영암에서 강진으로 하루 20km의 단풍 속도로 남하하고 있다. 나뭇잎들이 조금씩 물들고, 성미 급한 동백나무는 벌써 붉디붉은 꽃잎을 열고 있다. 백련사 동백나무 숲은 내년 3월이나 돼야 우르르 꽃을 매달 것이다. 하얀 억새꽃이 햇살에 눈부시다. 바람이 불 때마다 부르르 진저리를 친다. 파릇파릇 마늘밭이 싱그럽다.

강진에는 ‘월(月)’자로 시작되는 동네가 많다. 신월, 상월, 월남, 월하, 월송, 대월마을이 그렇다. ‘월(月)’은 월출산을 뜻한다. 월출산 남쪽마을이 ‘월남’이고 월출산 아래가 ‘월하’이다. 월하 마을엔 무위사(無爲寺)가 있다. 무위사는 나지막한 땅에 표가 나지 않는다. 평안하고 무던하다. 무위란 ‘걸림이 없는 삶’을 뜻한다. 무위사 극락보전(국보 제13호)은 소박하고 단아하다.

무위사는 좀 답답해졌다. 널찍하고 확 트인 분위기가 사라졌다. 육자배기 주막집 주모처럼 수수하고 고즈넉하던 것이 ‘삐까 번쩍’ 어수선해졌다. 그렇다. 곳곳에 새 전각들이 들어섰다. 왜 요즘 절집들은 자꾸 채우려고만 할까. 왜 ‘텅 빈 충만’의 맛을 모를까.

월남마을엔 옛 월남사 터가 소슬하게 늦가을을 타고 있다. 삼층석탑만이 외롭게 ‘달 바라기’를 하고 서 있다. 월남마을은 백제 때부터 있었던 천년이 넘는 동네. 뒤꼍엔 푸른 차밭이 구물구물하다. 무려 34ha(10만여 평)나 된다. 하얀 꽃잎에 샛노란 수술의 차꽃이 대부분 이울었다. 그래도 남은 꿀을 찾아 벌들이 잉잉거린다. 마을 어귀 늙은 팽나무가 황갈색 나뭇잎을 우수수 날린다.

네덜란드 하멜(1630∼1692) 일행이 묵었던 전라병영마을 팔백 살 은행나무도 노랗게 물들고 있다. 그들은 병영성내 풀을 뽑는 등 부역을 하면서 생활했다. 숙소 내에 네덜란드식 정원을 가꾸기도 하고 스님들과 교류하며 가깝게 지냈다. 하멜 일행이 쌓았던 병영마을 빗살무늬 담장도 여전하다. 하멜은 그 마을에서 1656년부터 1663년까지 7년 동안이나 살았다. 하멜은 조선 땅에서 정확히 13년 28일간 머물렀다.

강진만 갈대숲이 바람에 뒤척인다. 남포마을입구∼해창마을까지 강진만 둑길을 따라가는 길(4km)은 바람이 제법 차다. 고니 떼들이 벌써 와 있다. 낮엔 대부분 코를 죽지에 처박고 잔다. 보초 한 마리만 눈을 뜨고 경계를 편다. 해질녘이 되면 일제히 일어나 먹이를 찾아 하늘을 난다.

▼ 영랑이 시밭 일궜던 ‘시문학파’기념관 눈길 ▼

‘가을날 노랗게 물들인 은행잎이/바람에 흔들려 휘날리듯이/그렇게 가오리다/임께서 부르시면//호수에 안개 끼어 자욱한 밤에/말없이 재 넘는 초승달처럼/그렇게 가오리다/임께서 부르시면…’ (신석정 ‘임께서 부르시면’에서)

강진 영랑 김윤식(1903∼1950) 생가 앞엔 시문학파기념관(061-430-3186)이 있다. 시문학파란 1930년대 순수시운동을 이끌었던 시인들을 말한다. 영랑을 비롯해 수주 변영로(1897∼1961), 연포 이하윤(1906∼1974), 위당 정인보(1893∼1950), 용아 박용철(1904∼1938), 정지용(1902∼1950), 김현구(1903∼1950), 신석정(1907∼1974), 허보(생몰연대 미상) 등 9명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시 전문지 ‘시문학’을 중심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시문학파기념관은 한국문학사상 최초의 문학유파기념관이다. 시문학파 시인 9명의 육필원고, 유물, 일기장, 저서 등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1920∼1950년대의 각종 문예지 창간호 30여 종, 1920∼1960년대 출판 희귀도서 500여 권 등 5000여 권의 문학서적도 열람 가능하다.

시문학은 일본 유학시절부터 절친했던 영랑과 용아 박용철이 주축이었다. ‘나 두야 간다./나의 이 젊은 나이를/눈물로야 보낼 거냐’라던 그 박용철 말이다. 1930년 3월 창간호부터 제3호까지 실린 창작시 69편 중 영랑 시가 29편, 용아 시가 11편 등 두 사람의 시가 모두 40편일 정도였다. 여기에 정지용의 시 15편을 더하면 69편 중 무려 55편이 영랑, 용아, 정지용의 시였다.

김현구는 영랑의 죽마고우였다. 강진 토박이로 위아래 동네에 살았다. 영랑은 시문학 제2호에 그를 추천해 데뷔시켰다. 그의 시는 영랑의 시와 냄새가 비슷하다. 밑바탕에 남도가락이 깔린 것이나 서정적 언어가 바로 그렇다. 하지만 그의 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시가 묶여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1970년 그의 아들에 의해 시집(82편, 비매품)이 엮어짐으로써 비로소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 오매! 벼라별 꾸꿈스런 것덜 다 모태 놓았네 ▼
‘와보랑께 사투리박물관’ 김성우 관장


사방이 걸쭉한 전라도사투리 천지인 ‘와보랑께 박물관’의 김성우 관장.
사방이 걸쭉한 전라도사투리 천지인 ‘와보랑께 박물관’의 김성우 관장.
아야, 귀싸대기럴 볼라 불재, 그라고 따대기지 말아야 징상스럽다이. 우째 그라고 대아 부렀다냐? 한피짝에 앙거 있그라이 이잉! 고라고 항께 채-도 달부다야. 할미는 암시랑토 안헌께… 작년 시한 뜬금없는 개집머리에 솔찬히 보대께 부렀당께!

(얘야, 뺨이나 때려 버릴 일이지, 이제 말 좀 그만 하거라. 짜증난다. 왜 사람이 그렇게 돼 버렸냐? 한쪽에 앉아 있거라! 그렇게 하니까 훨씬 좋아 보이는구나. 이 할미는 아무렇지 않단다… 지난겨울 갑작스러운 감기에 상당히 고생했었지.)

“시상에 먼일 이까이∼. 여그 옹께 진짜 남도 옹것 같구만 이잉!(세상에 이게 무슨 일인가? 여기 오니까 진짜 남도 온 것 같네!)” 사방이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 천지다. 알쏭달쏭, 알 듯 모를 듯한 토박이말이 새록새록 정겹다. 사투리가 적힌 나무판때기가 곳곳에 주렁주렁 걸려 있다. 전라도 사투리 보물창고 ‘와보랑께 박물관’(061-432-1465)이 바로 그곳이다.

으뜸 농사꾼 김성우 씨(66)의 평생 꿈이 오롯이 담긴 곳이다. 김 씨는 사라져가는 강진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토박이말들이 안타까워 언젠가부터 하나하나 귀를 쫑긋하고 모았다. 그러다보니 전라도사투리모음집을 펴내게 됐고 나아가 사투리박물관까지 만들게 됐다.

그것만이 아니다. 이제는 쓸모없어 버려지는 옛날 생활용품도 3000여 점이나 모았다. 양은도시락, 이발기, 수세미, 써레, 삼태기, 멍석, 남바위, 망태, 뒤주, 다듬잇돌, 작두, 전축, 쟁기, 멍에, 우체통, 디딜방아, 흑백텔레비전, 다이얼전화기, 풍금, 수동계산기, 타자기, 풀빵기계, 가마솥, 풀무, 벽시계, 홍두깨, 재봉틀, 석유곤로, 나무주판, 가마니틀, 1947년 초등학교 가사교과서, 75년도 우수 새마을라디오, 담배(청자, 새마을, 봉초…).

도대체 시시콜콜 없는 게 없다. 그의 말대로 “깜냥에 벼라별 꾸꿈스런 것덜을 다 모태 놓았으니, 귀경 한번 와보랑께요”다. 그는 1ha(3000평) 정도의 땅을 일구는 농사꾼이자 전라남도문화해설사이기도 하다. 또한 시인이자 화가이기도 하다. 그냥 끼적거리다 보니 시가 됐고, 그저 붓 가는 대로 칠하다 보니 그림이 됐단다.

여태껏 그 어느 누구한테도 글이나 그림을 배워본 적도 없다. 그의 그림은 우리 한글을 형상화한 ‘그만의 독특한 세계’를 다룬다. 이미 전시회도 세 차례나 가졌을 정도로 강진바닥에서는 짜하다. 다음 달 초에는 서울에서도 개인전을 열 예정.

“요즘 여그 아덜도 여그 말을 잘 몰러요. 개코도 모름시로 서울표준말만 혀 싸요. 할매들 말 시피보먼 큰일 나부요. 그 속에 따땃한 정이 있고, 칭칭이 쌓아온 삶의 역사가 있지라. 지가 무달라 쓰잘데기 없이 옛날 물갠덜을 모으겄소. 다 가턴 뜻이지라.”

(요즘 여기서 자라는 아이들도 우리 토박이말을 잘 모릅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서울표준말에 익숙하지요. 할머니들이 쓰는 말 우습게보면 큰일 나요. 그 속엔 따뜻한 정과 대대로 이어온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제가 왜 옛 생활용품을 모으겠습니까? 다 같은 맥락입니다.)

■Travel Info

▼교통

▽KTX=서울 용산∼광주(광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강진행 버스), 서울 용산∼목포(목포시외버스터미널에서 강진행 버스), 서울 용산∼나주(나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강진행 버스)

▽고속버스=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 하루 6회(4시간 30분 소요)

▽승용차=서울∼서해안고속도로∼목포나들목∼영산호 하굿둑∼국도 2호선∼강진, 서울∼호남고속도로∼광주∼목포나들목∼영산호 하굿둑∼국도 2호선∼강진, 서울∼호남고속도로∼광주 광산나들목∼국도 13호선∼나주∼영암∼강진

▼먹을거리

▽청자골종가집(한정식 061-433-1100) ▽명동식당(한정식 061-434-2147) ▽병영수인관(돼지불고기백반 061-432-1027) ▽병영설성식당(돼지불고기백반 061-433-1282) ▽해태식당(한정식 061-434-2486) ▽이슬식당(해물탕 061-432-5181) ▽부강식당(생고기비빔밥 061-434-3243) ▽마량정든횟집(061-432-0606) ▽마량청해횟집(061-432-2220) ▽성전석정가든(닭백숙 061-433-3334)

♣강진전통된장마을=마을 주변 재배 국산콩 사용. 061-433-5248 ♣옴천 토하젓 061-432-1314 ♣병영막걸리 061-432-1010

김화성 전문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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