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성 전문기자의 &joy]‘아늑한 땅, 편안한 고을’ 안성을 걷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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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쑤~ 덩더쿵! 우리네 인생 어찔어찔 ‘한판의 줄타기’로세

나는 얼굴에 분칠을 하고

삼단 같은 머리를 땋아 내린 사나이.
초립에 쾌자를 걸친 조라치들이

날라리를 부는 저녁이면

다홍치마를 두르고 나는 향단이가 된다.

이리하여 장터 어느 넓은 마당을 빌려

램프불을 돋운 포장 속에선

내 남성이 십분 굴욕된다.
산 넘어 지나온 저 동리엔

은반지를 사주고 싶은

고운 처녀도 있었건만

다음 날이면 떠남을 짓는

처녀야!

나는 집시의 피였다.

내일은 또 어느 동리로 들어간다냐.
우리들의 소도구를 실은

노새의 뒤를 따라

산딸기의 이슬을 털며

길에 오르는 새벽은

구경꾼을 모으는 날라리 소리처럼

슬픔과 기쁨이 섞여 핀다.

노천명 ‘남사당’ 전문

얼씨구! 덩더쿵! 간당간당 반공중 밧줄 위에서 어여쁜 꽃광대 신명나게 한판 논다. 앞으로 종종걸음, 뒤로 뚱깃걸음에 그만 발바닥이 간질간질 숨이 턱턱. 두발 오므렸다 폈다 콩심기엔 가슴이 콩닥콩닥 땀이 송골송골. 양반집 아들 팔자걸음에 와르르 배꼽들 한 가마니씩 빠지는구나. 허공에 붕 떴다가 살짝 내려앉는 허궁잽이! 아이고, 그만 간 떨어질 뻔했네. 여보시오, 아전마누라! 이제 그만 좀 단장하소. 몸 흔들흔들, 밧줄 낭창낭창, 초승달 눈썹 그리려다 그만 엉망진창 귀신 얼굴 되었구려. 지난 22일 안성남사당 실내상설공연장의 공연 모습. 안성=박경모 전문기자 momo@donga.com
얼씨구! 덩더쿵! 간당간당 반공중 밧줄 위에서 어여쁜 꽃광대 신명나게 한판 논다. 앞으로 종종걸음, 뒤로 뚱깃걸음에 그만 발바닥이 간질간질 숨이 턱턱. 두발 오므렸다 폈다 콩심기엔 가슴이 콩닥콩닥 땀이 송골송골. 양반집 아들 팔자걸음에 와르르 배꼽들 한 가마니씩 빠지는구나. 허공에 붕 떴다가 살짝 내려앉는 허궁잽이! 아이고, 그만 간 떨어질 뻔했네. 여보시오, 아전마누라! 이제 그만 좀 단장하소. 몸 흔들흔들, 밧줄 낭창낭창, 초승달 눈썹 그리려다 그만 엉망진창 귀신 얼굴 되었구려. 지난 22일 안성남사당 실내상설공연장의 공연 모습. 안성=박경모 전문기자 momo@donga.com

안성(安城)은 역시 ‘안성맞춤’이다. 방짜놋그릇도 쏙 맞고, 옷도 몸에 딱 들어맞고, 음식도 입에 쩍 달라붙는다. 사람이야 더 말할 나위 없다. 한 치도 경우에 어긋나는 게 없다. 한자로 ‘安(안)’자를 괜히 쓴 게 아니다. 역시 ‘평안한 고을’이다.

안성맞춤은 안성유기(鍮器)에서 나왔다. 1000여 년 동안 쌓은 안성유기 장인들의 혼이 한 단어에 온축됐다. 그 속엔 ‘언제 어디서든 안성유기라면 안심하고 믿을 수 있다’란 뜻이 녹아 있다. 유기는 놋쇠로 만든 기물이다. 구리를 기본으로 거기에 다른 비철금속을 배합한다. 가령 ‘주석+구리는 청동, 구리+아연은 황동, 구리+니켈+아연은 백동’ 하는 식이다. 그 유명한 방짜놋그릇은 ‘구리 78%(한 근=600g)+주석 22%(4냥 반=168.7g)’를 벌겋게 달군 뒤 두드려서 만든다.

놋그릇은 따뜻하다. ‘여름엔 시원한 사기그릇, 겨울엔 따스한 놋그릇’이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은은하면서도 아침이슬처럼 빛나는 광택과 중후하면서도 학 같은 우아한 품격이 귀티가 난다. 소리가 맑고 영롱해 악기로서도 안성맞춤이다. 대장균 100%, 비브리오균 90%를 살균하기도 한다. 독립운동가 남강 이승훈 선생(1864∼1930)이 바로 놋그릇 등짐장수 출신이다. 그는 그렇게 돈을 모아 오산학교를 세워 수많은 인재를 길렀다.

청나라 병사를 발로 짓밟고 있는 칠장사 사천왕사자들.
청나라 병사를 발로 짓밟고 있는 칠장사 사천왕사자들.

안성에서 칠장사를 빼놓을 수 없다. 벽초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의 무대로 이름난 곳이다. 임꺽정(?∼1562)이 스승으로 모셨던 갖바치 출신 병해대사가 바로 칠장사 스님이다. 지금도 칠장사 홍제관에는 임꺽정이 나무를 깎아 만들어 공양했다는 ‘꺽정불상’이 봉안돼 있다. 흙으로 구워 만든 사천왕사자들의 모습도 해학적이다. 커다란 발밑에 청나라 병사들이 깔려 있다. 푸하하! 1636년 병자호란 이후 조선 민초들의 소박한 앙갚음이다.

칠장사 나한전은 입시철 기도처로 유명하다. 조선시대 암행어사 박문수(1691∼1756)가 나한전에 기도를 드리고 장원급제했다는 이유에서다. 공양물엔 초코파이 등 과자가 많다. 박문수의 ‘조청유과(油菓)’ 공양을 따른 것이다. 일곱 나한은 원래 도둑이었다고 한다. 한순간 깨달음을 얻어 개과천선한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하나같이 영락없는 개구쟁이 동자승 얼굴이다.

‘…구렛골, 구수머리, 봉우재, 도구머리, 읍내, 회다리, 쇠전거리, 사거리, 양조장, 농업학교, 향교, 천주교회, 명륜당, 삼덕포도원…칠장사, 청룡사, 팔사당 바우덕이, 시인 임홍재 任洪宰, 내 고향의 말씀들//향기다/꽃이다/별빛이다/내 어머니의 자궁이다/지금은 또 어떤 말씀들이 생겨나고 있을까’ (정진규 ‘가장 맑디맑게 물꼬를 터주던 것은’에서)

김화성 전문기자 mars@donga.com

▼안성 남사당패 어름산이 박지나 씨 “줄타기 연습 하루도 안 걸러… 뮤지컬보다 흥겹잖아요”▼

안성 하면 남사당놀이다. 남사당은 조선 후기 유랑예인집단을 말한다. 조선 팔도 장터와 마을을 떠돌며 춤, 노래, 곡예를 공연하며 살았다. 사람들은 남사당패 중에서도 단연 안성을 최고로 쳤다. 1865년 대원군의 경복궁 중건 때 안성 청룡사 ‘바우덕이 남사당패’가 천하에 이름을 떨친 것이다. 공사판 일꾼들에게 최고로 인기를 끌었다. 대원군은 정3품에 해당하는 옥관자를 상으로 내렸다.

바우덕이는 안성남사당을 이끌었던 꼭두쇠(우두머리) 여인의 별명이다. 본명은 김암덕(金岩德·1848∼1870). 겨우 열다섯 어린 나이에 남자들 세계인 남사당에서 꼭두쇠로 만장일치 추대됐다. 그만큼 미모도 빼어났다. 풍물(농악), 버나(접시, 대접돌리기), 살판(땅재주), 어름(줄타기), 덧뵈기(탈놀이), 덜미(꼭두각시놀이) 등 모든 분야에서 신기에 가까운 재주를 펼쳤다.

하지만 폐결핵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스물둘 꽃다운 나이에 눈을 감아야만 했다. 청룡사 부근에 그의 무덤이 있다. 안성시는 그의 뜻을 기려 해마다 ‘바우덕이 축제’(올 10월 2∼6일)를 연다. 아예 ‘시립남사당 바우덕이풍물단’을 만들어 돔형 실내공연장에서 상설공연(매주 토, 일)까지 하고 있다. www.남사당.kr 031-678-2518

현재 시립풍물단에도 여성 줄타기꾼이 있다. 어름산이 박지나 씨(25·사진)가 그 주인공. 박 씨는 열세 살 때부터 줄과 인연을 맺었다. 수없이 떨어지고 또 떨어졌다. 다행히 크게 다친 적은 없다.

“하루라도 연습을 하지 않으면 우선 나 자신이 불안해져요. 물론 공연 때도 떨어진 적이 있지만, 나보다도 보는 분들이 더 놀라시지요. ‘여러분을 더 가까이에서 보고 싶어 내려왔다’거나 ‘제가 떨어져야 박수를 더 크게 치시더라’는 식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게 중요합니다.”

박 씨는 안성에 있는 중앙대 국악대 음악극과를 2학년 1학기까지 마치고 휴학 중이다. 서양연극, 영화, 뮤지컬, 클래식도 좋아한다. 먹는 것도 한식, 양식 가리지 않는다. 다만 기름진 것은 약간 신경을 쓴다.

“체중을 50∼55kg(키 163cm) 정도로 유지해야 지장이 없습니다. 너무 말라도, 너무 살쪄도 안 됩니다. 정말 짜릿하고 스릴 만점이지요. 가끔 절에 가는 불자이지만, 부처님에게 의지하기보다 나 자신에게 ‘해낼 수 있어, 무섭지 않아’ 하고 늘 다짐합니다. 관객들과 어우러져 ‘얼쑤∼덩더쿵!’ 공연 뒤풀이를 할 때 가장 뿌듯하고 행복합니다. 내 또래 젊은 친구들에게 우리 남사당놀이가 얼마나 재미있는지 알려주고 싶습니다. 결코 서양 영화나 뮤지컬 못지않습니다. 꼭 한 번 와서 직접 보세요.”

▼도심에서 은하수가 보이는 ‘안성맞춤천문관’▼


천장을 열고 닫을 수 있는 안성맞춤천문관 관측소.
천장을 열고 닫을 수 있는 안성맞춤천문관 관측소.
은하수는 ‘별들의 강’이다. 밤하늘을 가로질러 눈부시게 흐른다. 또랑또랑한 별들 사이로 희뿌옇게 띠구름처럼 걸려 있다.

요즘 은하수 보기가 쉽지 않다. 도회지에서라면 거의 불가능하다. 공기가 나빠 하늘이 흐릿하다. 가로등, 자동차, 공장 불빛 때문에 시야가 범벅이 된다.

안성맞춤천문과학관은 도심에서 은하수를 볼 수 있는 천문대다. 그런 곳은 수도권에서도 몇 군데 되지 않는다. 올 3월에 문을 열었다.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1시간여 정도면 닿는다.

대형 망원경 12대를 갖췄다. 400mm, 350mm, 280mm, 128mm, 120mm, 110mm 1대씩과 100mm 6대다. 8월까지 300mm 굴절망원경 설치가 끝나면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다. 이용정 천문대장은 자신만만하다.

“수도권 도심에서 은하수를 볼 수 있는 곳은 안성, 양평, 가평, 청평, 여주 정도에 불과합니다. 좋기로야 전남 고흥이 최고지만 서울에서 너무 멀지요. 또 안개가 많아 일기예보를 잘 살펴야 합니다. 한국은 일년 중 별을 볼 수 있는 날이 150∼170일밖에 안 됩니다. 남미 칠레 같은 경우 무려 270일 정도가 가능하지요. 별은 보름달 뜰 때 더 잘 보일 것 같지만, 오히려 달빛이 너무 밝아 별빛이 흐립니다. 별 보기엔 음력 5∼10일 중 맑은 날이 으뜸입니다.”

안성맞춤천문대에선 낮엔 태양흑점과 홍염을 관측한다. 3차원(3D)안경으로 ‘사계절별자리’ 등의 영상물을 보며 기본지식을 익힌다. 어린이를 위한 환상우주동화 ‘은하철도의 밤’도 보여준다. 6월 말까지 입장료 무료. 7월부터는 성인 6000원, 학생 4000원. 031-675-6975, 6978

별은 늘 우리의 머리 위에서 빛나건만, 어른들은 별이 뜨는지 지는지 돈 세기에만 바쁘다. 별은 사막에서 보는 것이 가장 빛나고 황홀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아름다운 별은 가슴속에서 반짝이는 별이다.

‘별똥 떨어진 곳,/마음에 두었다./다음 날 가 보려,/벼르다 벼르다/이젠 다 자랐소.’ (정지용 ‘별똥’에서) ‘슬퍼지는 날에는/어른들아 어른들아 아이로 돌아가자/별똥 떨어져 그리운 그곳으로 가서/간밤에 떨어진 별똥 주우러가자’ (유안진 ‘별똥 떨어져 그리운 곳으로’에서)
▼Travel Info▼

▼교통
▽승용차=서울∼경부고속도로∼안성, 서울∼중부고속도로∼서안성, 남안성 ▽고속버스=서울강남고속버스터미널, 서울남부터미널, 동서울터미널∼안성버스터미널

▼먹을거리=서일농원(일죽면)의 된장, 청국장정식이 이름났다. 숨쉬는 옹기항아리 2500여 개(사진)에 콩을 전통방식으로 발효시켜 내놓는다. 된장 10년, 간장 5년 이상 숙성하며 간장은 영양소가 달아나기 때문에 달이지 않는다. 콩은 부근의 농가에서 계약 재배한 것이며, 천일염을 쓴다. 이곳에서 생산하는 된장, 고추장, 간장, 청국장은 미국식품의약국(FDA)의 장류규격인증을 받았다. 농원 안에 ‘솔리’라는 시식점이 있다. 메뉴는 된장찌개, 청국장찌개(이상 1인 1만5000원), 손두부(1만2000원), 녹두전(1만 원) 등. 식품첨가물, 인공감미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된장, 고추장과 장아찌류도 구입할 수 있다. 택배 가능. www.seoilfarm.com 031-673-3171

▽누룽지닭백숙 장수촌(031-674-2821) ▽한우생등심 안성맞춤한우촌(031-673-5550) ▽한우생고기 안성마춤한우명품관(031-656-5285), ▽홍삼한우탕 약산골(031-674-1771) ▽한우탕 송삿갓(031-672-3838 ▽보리밥 풍물기행(031-677-5288) ▽해물탕 태평관(031-676-3007)

♣안성맞춤박물관=안성 중앙대캠퍼스 들머리에 있다. 안성유기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월요일은 휴무. www.anseong.go.kr/position/museum 031-676-4352
▼주말엔 경기도! 휴일엔 안성맞춤랜드!▼

안성맞춤랜드는 ‘한국의 디즈니랜드’다. 온 가족이 함께 꿈을 꿀 수 있는 ‘드림동산’이다. 34만4514m²(10만4200여 평)의 땅에 남사당전용공연장, 천문과학관, 각종 공방(도자, 금속, 종이, 염색, 목공, 핸드페인팅), 사계절썰매장, 야외수영장, 야외공연무대, 야생화단지 등이 들어섰다. 문화시설, 휴식공원, 놀이공간이 한곳에 어우러졌다. 황은성 안성시장은 “어른들은 문화행사와 휴식을 즐기고,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마음껏 뛰놀며 탐구할 수 있는 안마당 같은 곳이다. 앞으로 ‘안성시민들의 종합행복공장’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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