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엿보기]특급투수 박찬호

  • 입력 2001년 1월 16일 20시 01분


18승 10패, 방어율 3.27, 탈삼진 217개.

내셔널리그 방어율 부분에서 7위, 다승 부분에서 5위를 마크했고 탈삼진 부분에서는 랜디 존슨에 이어 당당히 리그 2위를 차지한 박찬호의 지난 시즌 성적은 그에게 메이저리그 정상급 투수로 보기에 충분한 성적이었다.

다승과 방어율, 탈삼진 등 모든 부분에서 본격적인 선발투수로 활약한 1997년 이후 캐리어 최고의 기록을 작성했고 연봉문제에서도 다저스 팀보다 유리한 고지에서 협상을 시작할 수 있으며 장기계약이 아닌 1년 계약을 하더라도 최소한 1천만불 이상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위상이 높아졌다.

최근 우리나라 신문들은 박찬호의 연봉계약에 관계된 내용들을 앞다투어 1면 머리기사로 내보낼 정도로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덕분에 우리들은 '특급투수 박찬호' , '1억불 이상의 장기계약' 등의 말들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게 되었고 박찬호가 지난 스토브리그 기간동안 엄청난 액수로 계약을 맺은 마아크 햄튼이나 마이크 무시나보다 더 많은 액수로 계약을 맺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차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박찬호가 햄튼이나 무시나보다 더 많은 연봉을 받을만큼 특급투수의 위치에 올라서 있을까?

지난 시즌까지의 성적을 보면 박찬호는 특급 투수까지는 몰라도 최소한 리그 정상급 투수 가운데 한명으로 평가받기에는 충분하다.

4년 연속 두자리 수의 승수를 거뒀고 최근 4년 동안 60승을 올렸으며 통산 방어율도 4점대 이하(3.88)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 1997년 이후 4년동안 선발 투수로 평균 32번 등판했고 최소 13승과 192이닝을 소화해 낼 정도이며 팀내에서는 확고부동한 제 2선발투수로 인정받고 있으니 메이저리그 전체 투수중에서도 이 정도 기록을 작성한 선수는 그리 많지 않다.

이렇듯 확실한 위치에 있는 박찬호지만 선뜻 그에게 특급투수라는 명칭을 사용하기에는 어딘가 부족하다는 인상을 지울수가 없다.

가장 큰 약점은 불안정한 컨트롤로 박찬호는 지난 시즌 124개의 볼넷을 허용하며 내셔널리그 2위를 차지했다.

맷 클레멘트(샌디에이고) 덕분에 리그 1위를 차지하는 불명예를 면하기는 했지만 게임당 5개 정도의 볼넷을 남발하면서 보는 이들의 마음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혹자는 랜디 존슨의 예를 들면서 - 존슨은 빅리그 4년차인 1991년 152개, 5년차인 1992년에는 144개의 볼넷을 허용했다 - 큰 걱정거리가 아니라고는 하지만 문제점은 박찬호의 컨트롤 불안이 고질적인 약점이 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박찬호는 1998년에 97개, 1999년에는 100개로 첫 세자리 수의 볼넷을 허용한데 이어 2000년에는 124개를 기록하며 해가 갈수록 컨트롤이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

박찬호는 이렇듯 불안한 컨트롤때문에 번번히 완투, 완봉의 기회를 놓치게 되고 투구수가 많아지며 (2000시즌 9이닝당 109개) 뛰어난 피안타율(2000시즌 0.214)에도 불구하고 피출루율은 3할대가 넘게되 실점 가능성은 그만큼 높아질수 밖에 없다.

컨트롤과 함께 지적되는 또 다른 약점은 그의 성적이 팀성적과 연결되지 않는 개인성적이라는 점이다.

지난 시즌 박찬호의 후반기 성적은 9승 4패, 방어율 2.23.

105이닝을 투구하는 동안 허용한 안타수는 79개로 피안타율이 겨우 0.211밖에 되지않았다.

문제점으로 지적되던 볼넷도 53개밖에 되지 않은 대신 삼진은 110개를 잡아냈고 특히 8월과 9월에는 랜디 존슨이나 페드로 마르티네스와 맞붙어도 쉽게 지지 않을 정도로 절정의 구위를 과시했다.

그러나 박찬호가 이렇듯 뛰어난 성적을 거뒀음에도 불구하고 메이저리그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한 것은 박찬호의 성적이 팀성적에는 아무런 영향력을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클랜드의 신예투수 팀 허드슨과 박찬호의 8월 이후의 성적을 비교해 보자.

팀 허드슨(오클랜드, 20승 6패, 방어율 4.14)

8월 - 2승 3패, 방어율 7.76

9월, 10월 - 6승 무패, 방어율 1.39

박찬호

8월 - 3승 무패, 방어율 1.70

9월 - 4승 2패, 방어율 1.87

큰 차이가 없고 오히려 꾸준한 성적을 올린 박찬호의 성적이 더 뛰어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점은 박찬호의 성적이 개인기록인 반면 허드슨은 8월이후 고비때마다 등판해 7연승을 거두며 팀이 지구 우승을 차지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다는 점이다.

박찬호는 1999시즌에도 8월 이후 개인 최다인 7연승을 거두는 피칭을 보였지만 그것 역시 팀성적과는 전혀 무관한 개인적인 기록이었다는 점에서 평가절하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박찬호가 특급투수로 평가받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그의 캐리어 경력이다.

최근 우리나라 언론에서 박찬호의 비교 대상으로 분류하고 있는 마이크 무시나와 마이크 햄튼을 살펴 보자.

마이크 무시나(뉴욕 양키즈, 33세)

2000시즌 성적 - 11승 15패, 방어율 3.79)

올스타 5회 선정, 골드글러브 4회 수상, 1995년 리그 다승왕(19승)

마이크 햄튼(콜로라도 록키스, 29세)

2000시즌 성적 - 15승 10패, 방어율 3.14

올스타 1회 선정, 1999년 리그 다승왕(22승), 2000년 리그 챔피언쉽 시리즈 MVP

지난 시즌의 성적만을 놓고 보면 박찬호가 이들의 기록에 전혀 뒤질 것은 없지만 통산 메이저리그 경력 중 수상경력으로 내세울 수 있는 것이 1998년 수상한 7월의 투수상 밖에 없는 박찬호가 공식적인 타이틀 몇개씩을 가지며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이들과 같은 레벨로 평가받는 것은 현시점에서 시기상조가 아닌가 한다.

오히려 페르난도 타티스에게 1이닝 2개의 만루홈런을 허용하며 좋지 않은 이미지로 알려져 있을 뿐 단 1번의 올스타경력도 단 1번의 타이틀 수상경력도 없는 투수에게 특급 투수라는 명칭을 쓰는 것이 이상해 보이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결국 우리나라 언론이 20승과 사이영상을 운운하며 지나치게 과장한 것이 박찬호에게 특급투수라는 명칭까지 붙이게 된 것이다.

박찬호가 아무리 20승을 기록한다고 해도 메이저리그는 팀성적과 무관한 승리, 100개 이상의 볼넷과 단 3번의 완투를 기록한 투수에게 사이영상을 주지는 않는다.

박찬호는 아직 특급투수라고 불리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지만 분명한 것은 그의 미래가 밝다는 점이다.

피안타율은 0.214 밖에 안될 정도로 그의 볼은 위력적이며 아직까지 부상에 대한 걱정도 없고 지난 몇년간 선발 로테이션을 꾸준히 지킬 정도로 체력적인 부분에서도 문제점이 없다는 점이다.

좀더 많은 경기경험과 컨트롤을 향상시켜 볼넷수를 줄이게 된다면 박찬호는 누구나 인정하는 명실상부한 특급투수로 발돋음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더구나 박찬호는 이제 겨우 28세의 나이밖에 되지 않았다.

김용한/ 동아닷컴 객원기자 from007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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