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 시론/한민구]연구 성공률 98%의 이면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6월 22일 03시 00분


코멘트

100%에 육박하는 연구과제 성공률… 쉽고 짧은 연구에만 매달린 부작용
세기의 난제에 도전하는 선진국들, 실패 포용하는 시스템 덕분에 가능
한국판 난제 프로젝트로 변화 이루길

한민구 한국과학기술한림원장
한민구 한국과학기술한림원장
매년 5만 개가 넘는 정부 연구개발 과제 성공률이 무려 98%에 달한다. 성공을 해야 예산 배정에서 유리하기 때문에 단기 과제에만 집중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해 7월 제1차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전원회의에서 이를 지적했다. 적절한 지적이며 필자를 포함한 많은 과학기술인들이 다시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혹자는 다른 나라를 압도하는 98%의 성공률만 보면 우리나라는 이미 노벨상을 타고 선진국에 진입했을 것이라고 쓴소리를 한다.

성공률이 높은 것은 우리나라의 혁신 역량이 탁월해서가 아니라 쉬운 연구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선진국의 기초과학 연구 성공률은 약 30% 이하다. 그들은 실패를 용인하고 창의적·도전적 연구를 장려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내가 잘할 수 있는 연구 주제’를 하는데 선진국은 ‘우리가 도전하고 해결해야 할 과제’를 추진한다. 어렵지만 꼭 해결해야 할 과제를 ‘과학 난제’라고 부른다.

선진국에서 과학 난제를 정의하고 발굴하는 방식은 간단명료하다. 바로 집단지성이다. 사이언스지는 2005년 125개의 과학 난제를 소개했는데 세계 유수의 연구자들에게 의견을 구했다. 2008년 미국공학한림원의 21세기 14대 공학 난제, 2013년 영국 가디언지의 20대 과학 난제, 유엔과학자문위원회의 세계 도전 과제 등도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집약된 결과다. 취합된 난제에는 우주의 기원, 기억의 저장·수정 원리처럼 지적 호기심을 담은 것도 있고, 물 부족 문제의 해결, 경제적 에너지 공급 등 경제사회적 문제 해결이 목적인 것도 있다. 안전한 사회를 위한 시민 보안, 인구 감소에도 지속가능한 미래 등 기존 과학을 뛰어넘어 삶의 질 향상을 추구하는 과제도 포함된다.

이렇게 발굴된 과학 난제 중 다수는 국가 연구개발(R&D) 프로젝트로 이어진다. 미국의 대표적인 연구지원기관인 국립과학재단(NSF)이 2016년 5월부터 추진한 10대 빅 아이디어 프로젝트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해 6건의 연구 주제와 4건의 정책 주제를 빅 아이디어로 선정했다. 미국 연구자들이 선정한 차세대 양자혁명 선도, 생명의 규칙 이해 등은 해결 시 파급 효과가 매우 큰 주제들이어서 자연스럽게 경제산업적으로도 큰 파급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최근 국가 R&D 혁신 방안과 실행 계획에 창의적, 도전적 과학 난제 프로젝트를 시행한다는 반가운 소식이 있다. 현장 연구자들이 체감할 수 있도록 프로젝트가 추진된다면 도전적 R&D 문화가 뿌리내리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난제, 도전, 고위험 등은 모두가 중요하다고 꼽는 개념이지만 상세 내용과 기준은 각기 다를 수 있어 많은 연구자들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과학 난제 프로젝트가 추진된다면 현재 전 세계 과학기술인들이 도전하고 있는 뇌, 면역 시스템, 암 등의 분야에서 새로운 접근의 연구를 통해 학문의 흐름을 선도할 수도 있고, 국민이 불편을 겪고 있는 공기 질 문제나 잠재적 위험으로 꼽히는 고령사회 건강 유지에 대한 방안을 찾을 수도 있다. 많은 연구자들이 아이디어를 내 아예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도전 과제를 발굴할 수도 있다.

어떠한 과제를 하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 연구자들이 익숙한 분야와 주제를 뛰어넘어 한계에 도전하는 것이다. 경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시도가 연구자들에게도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 될 수 있지만 우리나라도 집단지성을 활용해 연구 주제를 발굴하고 실패 위험이 높은 연구에 도전하는 데 익숙해져야 한다. 얼마 전 인류 최초로 블랙홀 관측에 성공한 데는 천문학이 아니라 전자공학을 전공한 20대 여자 대학원생이 개발한 알고리즘의 영향이 컸다. 전통 천체물리학적 난제를 새로운 발상과 정보기술로 해결한 것이다.

우리나라 과학기술자들의 연구 능력은 세계적 수준이다. 도전적인 과학 난제 프로젝트의 추진을 통해 인류 사회에 꼭 필요하고 동시에 어려운 연구를 장려하고, 과학기술 발전은 물론 사회적 효과가 큰 새로운 연구를 추진해야 한다. 우리 정부와 과학기술인들이 종래의 성공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정말 필요하고 인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미래 지향적 과제에 과감히 도전해야 하며,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를 만들어 갈 때다. 연구개발에 있어 실패는 성공의 과정임을 되새길 때다.
 
한민구 한국과학기술한림원장
#과제 성공률#난제 프로젝트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