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고 자발적 반납도 후유증 큰데, 강제취소 혼란 어쩔는지…”[인사이드&인사이트]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8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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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고 전환 1년 대성고 사례 보니… 작년 지정 취소 전후 64명 전학
2·3학년 학부모들 반발 이어져 “비싼 등록금 더는 못 내겠다”
당국 ‘전환 비용’ 지원한다지만 갈등 봉합할 더 세심한 정책 필요

서울시교육청이 자율형사립고 재지정 평가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인 지난달 10일 지정 취소 대상인 한 자사고의 학생들이 등교하고 있다. 올해 서울 지역 재지정 평가에서는 자사고 8곳의 지정이 취소됐다. 뉴스1
서울시교육청이 자율형사립고 재지정 평가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인 지난달 10일 지정 취소 대상인 한 자사고의 학생들이 등교하고 있다. 올해 서울 지역 재지정 평가에서는 자사고 8곳의 지정이 취소됐다. 뉴스1
김수연 정책사회부 기자
김수연 정책사회부 기자
“끝내 일반고로 전환하면 무엇을 준비할지 고민이네요. 당분간 혼란스러울 건 뻔한데….”

자율형사립고(자사고) 지정이 취소된 서울 A고 교장이 답답한 속내를 털어놓았다. 서울시교육청이 실시한 재지정 평가의 부당성을 호소하며 법적 대응에 나섰지만 법원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 결과를 장담하기 힘든 상황이다. 그는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다”고 말했다.

교육부가 최근 지정 취소 결정을 내린 서울 자사고 8곳은 법원에서 정부 판단을 뒤집는 결정이나 판결이 나면 자사고 지위를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법원이 정부에 손을 들어준다면 일반고로 전환된다. 대상 학교는 서울시교육청 재지정 평가에서 커트라인(70점)을 못 넘긴 경희고 배재고 세화고 숭문고 신일고 중앙고 이화여대부고 한양대부고다.

만약 이들 자사고가 소송에서도 패해 일반고로 전환된다면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앞서 서울에서는 학교 측의 자발적인 신청으로 미림여고와 우신고가 2015년 일반고로 전환됐다. 지난해에는 대성고가 일반고로 전환됐다. 세 학교의 일반고 전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학생과 학부모, 교사들 간에 예기치 않은 갈등이 벌어졌고 이로 인한 혼란을 해결해야 했다. 대성고의 일반고 전환 1년을 통해 최근 지정 취소된 자사고들의 미래를 가늠해 본다.

○ 60명 넘게 전학… 교사 사기도 떨어져

“아직도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인데…. 입시를 코앞에 둔 학생들이 동요할까 걱정입니다.”

대성고 임재현 교장은 말을 아꼈다. 자사고 지위를 반납할 당시 있었던 교장은 올해 초 학교를 떠났다. 교사 B 씨는 “(전임 교장은) 정년이 4년 5개월이나 남았는데 혼란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신 것 같다”고 전했다.

학교법인 호서학원이 운영하던 대성고는 2010년 자사고 지정 전부터 서울 은평구에선 대학 잘 보내기로 유명한 학교였다. 그러나 진보 교육감이 들어서고 ‘자사고 폐지’ 정책이 추진되면서 학생 충원에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전학을 가는 학생도 늘었다. 결국 지난해 7월 자사고 지정 취소를 신청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같은 법인 소속인 호서대도 재정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결국 자사고 운영을 중단하기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지정 취소 후 학부모들의 불만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3학년 학부모 이모 씨는 “‘일반고’ 신입생(1학년)과 같은 학교에 다니는데 ‘자사고’ 학생은 3배나 많은 등록금을 내야 했다”며 “등록금뿐 아니라 다른 부대비용도 전부 올랐다”고 말했다. 2018년 지정 취소를 전후로 학생 64명이 전학 가면서 전교생이 1000명 밑으로 줄었다. 남은 학생들이 이용하는 스쿨버스 비용이 치솟았다. 급식에 들어갈 고정비용은 그대로인데 신청자가 줄어드니 1인당 한 끼 5000원이던 밥값이 7000원까지 오르기도 했다.

특히 올해 2학기부터 고교 3학년 무상교육이 실시되면서 갈등이 커졌다. 학부모들은 “일반고 등록금은 0원인데 지정이 취소된 자사고에서 분기당 150만 원이나 내는 게 말이 되느냐”고 따졌다. 결국 학교 측은 올 2학기부터 등록금 40만 원을 감면하는 조건으로 학부모들과의 갈등을 봉합했다.

이런 혼란 속에서 가장 힘든 건 학생들이었다. 2학년 김지형(가명·17) 군은 “일반고 전환을 신청한 지난해 7월 말부터 결정이 내려진 9월 초 사이에 30명쯤 전학 갔다”며 “선생님들이 ‘너희는 우리의 마지막 자사고생이니 모든 노력을 쏟아 가르칠 것’이라고 붙잡았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말했다. 당시 학생들 사이에 “남은 학생을 위해 ‘자사고용 커리큘럼’을 유지한다는 걸 어떻게 믿느냐”는 회의적 반응이 많았다. 덩달아 교사들 사기도 떨어졌다. 한 학교 관계자는 “지정 취소를 신청할 때 교사들 목소리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며 “당시 학교의 독단적 결정에 실망한 교사들이 많았다”고 전했다.

○ “차라리 ‘자사고 학생’ 신분도 취소를…”

먼저 지정 취소된 미림여고나 우신고와 달리 대성고 학부모회에선 특이한 주장이 나왔다. 지정 취소 이후에 자사고(2, 3학년)와 일반고(1학년 신입생) 학생이 뒤섞인 ‘한 지붕 두 가족’ 형태로 운영할 것이 아니라 기존 자사고 학생의 신분도 일반고로 전환해 달라는 것이었다.

“광역단위 자사고 출신이라고 입시에서 더 유리한 대우를 받지 않습니다. 그저 ‘커리큘럼’을 보고 오는 거죠. 학교 체질이 바뀌었는데 그 커리큘럼이 보장될까요? 차라리 2, 3학년도 일반고로 전환하면 등록금이라도 낮출 수 있겠죠.”(3학년 학부모 C 씨)

실제 일부 대성고 학부모들은 이 같은 요구안을 교육부에 제시하고 검토를 요청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 참여했던 한 학부모는 “자사고의 장점을 살리지 못하니 아예 현재 학생들을 ‘일반고 학생’으로 바꿔 달라고 했고 ‘법령엔 없지만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며 “다만 학생·학부모가 100% 동의해야 가능한 것이라 실현되진 못했다”고 말했다. 대다수 학부모가 ‘자사고 학생’으로 졸업하길 원했기 때문이다. 현재 대성고에는 2, 3학년인 ‘자사고 학생’이 583명, 1학년인 ‘일반고 학생’이 292명(5월 기준) 있다. 전교생은 자사고 시절에 비해 200명 가까이 줄었다.

2016년 자사고에서 일반고로 바뀐 우신고의 한 관계자에게 기자는 “앞으로 일반고로 전환해야 하는 자사고가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자사고 프로그램을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반고로 바뀔 때 학생과 학부모가 가장 걱정하는 건 비싼 등록금을 내고도 기대했던 자사고 수준의 교육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일부 학생과 학부모는 “우리가 낸 등록금으로 만들고 운영된 우수한 커리큘럼 혜택을 일반고 학생들이 공짜로 받게 된다”고 불만을 표출한다.

반대로 일반고 신입생들은 자사고 커리큘럼과 교사들의 남다른 진학지도 시스템에 큰 호응을 나타낸다. 우신고 관계자는 “자사고 프로그램의 장점을 살려 자사고 학생과 학부모의 박탈감을 최소화하고, 일반고 신입생도 만족할 수 있는 학교를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 학생 이탈, 등록금 갈등이 우선 과제

“일반고로 바뀌면 최소 수십 명에서 많게는 100명 이상의 학생이 이탈할 수 있고 학부모들은 비싼 등록금 납부를 거부할 것이다. 기존 진학 컨설턴트나 자율학습지도사 고용도 어려울 것이다.”

이번 재지정 평가에서 탈락한 또 다른 자사고 교장은 이렇게 말했다. 일반고 전환 초기 대부분의 학교는 ‘자사고 엑소더스(탈출)’와 ‘등록금 납부 거부’라는 현실을 마주할 가능성이 높다. 서울시교육청 자료에 따르면 올 상반기에만 서울 자사고에서 392명(8월 6일 기준)이 전학을 갔다. 재지정 평가 결과가 발표된 7월에는 전월의 2배가 넘는 75명이 빠져나갔다.

서울시교육청은 이런 혼란을 줄이기 위해 지원금을 주겠다는 입장이다. 5년에 걸쳐 약 10억 원. 여기에 연간 수억 원에 이르는 교육부 재정 지원까지 더해진다. 대성고도 일반고 전환 과정에서 1년 동안 약 8억 원을 지원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한 자사고의 학부모는 “학내 갈등을 봉합하고 자사고 학생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지원금인데 학교가 한 일은 미뤘던 시설 개·보수 작업뿐인 것 같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모든 법적 절차가 끝나 일반고 전환에 착수해야 한다면 이들 자사고 앞에는 △등록금 인하 협상 △자사고 커리큘럼 정상 운영 △일반고와 자사고 학생 간 이질감 해소 등의 과제가 놓이게 된다. ‘자사고 없애기’를 주도한 교육 당국이 소극적으로 대응한다면 해결이 쉽지 않은 문제들이다. 교육 당국의 적절한 개입과 행정적·재정적 지원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자사고 학생과 학부모는 “특권 학교를 없애겠다는 교육감의 정치적 판단 때문에 우리가 손해를 본다”는 불신을 거두지 못할 것이다.

교육제도의 과격한 변화와 오락가락 행정은 예상치 못한 사회적 비용을 수반하는 경우가 많다.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은 단순히 학교 ‘간판’을 바꿔 다는 차원이 아니다. 자발적으로 지정 취소를 신청한 대성고와 우신고에서 이런 혼란과 갈등이 빚어진 것을 보면 강제로 자사고 지위를 박탈당하는 학교라면 그 정도가 더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법정 소송으로 자사고 지위를 유지하든, 일반고로 전환되든 어떤 경우에도 공부에 집중해야 할 학생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교육 당국의 세심한 대책이 필요하다.

김수연 정책사회부 기자 sykim@donga.com
#자율형사립고#자사고 재지정 평가#등록금#자사고 지정 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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