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미사일 분석도 눈치보는 軍… 대북 방어능력은 언제 키우나[인사이드&인사이트]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8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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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포냐 미사일이냐 오락가락
北, 발사사진-동영상 공개에도 “신형 SRBM” 고수하던 軍
靑언급이후 ‘단거리 발사체’로 후퇴… 실체 놓고 갑론을박 무의미
미사일 방어 보완대책 서둘러야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5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북한이 지난달 31일과 이달 2일에 동해로 쏜 발사체가 각각 ‘신형 단거리탄도미사일(SRBM)’, ‘단거리 발사체’라고 밝혔다. 앞서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관영매체들이 둘 다 ‘신형 대구경조종방사포(다연장로켓)’라고 보도하면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시험 발사 참관 사진과 동영상까지 공개했는데도 그 실체를 부인한 것. 이를 두고 북한이 쏜 ‘똑같은 발사체’를 두고서 국방수장이 정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헛다리’를 짚는 얘기만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쏟아졌다.

히지만 군은 지금까지도 “한미가 (북한 발사체의) 세부 제원과 기종을 추가 분석 중”이라면서 말을 아끼고 있다. 군의 이런 납득하기 힘든 모습이 북한 신형 방사포에 대한 ‘미스터리’를 키우고, 대북 정보력 논란을 부채질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군이 무엇인가 말 못할 속사정이 있거나 중대한 실책을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커지고 있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 신형 SRBM 고수하다 ‘단거리발사체’로 후


북한의 신형 방사포 발사 당시 우리 군의 대응 상황을 천천히 ‘복기(復棋)’해보면 그 실마리를 엿볼 수 있다. 북한이 지난달 31일 새벽 원산 갈마 일대에서 신형 방사포 2발을 동해상으로 쏘자 군은 엿새 전(같은 달 25일)에 함경남도 호도반도에서 쏜 미사일과 유사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밝혔다.

사실상 ‘북한판 이스칸데르’인 KN-23 신형 SRBM이라고 콕 찍은 것이다. 그런 판단을 한 근거에 대해 군 관계자는 “한미가 추가 제원 등을 분석 중”이라면서 보안을 이유로 더는 언급하지 않았다. 복수의 군 소식통들도 “비행속도와 궤적 등을 볼 때 KN-23이 거의 확실하다”면서 발표 내용에 힘을 보탰다. 이를 토대로 대부분의 언론들은 북한이 쏜 발사체가 KN-23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그런데 그 다음 날(1일) 반전이 일어났다.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관영매체들이 신형 대구경조종방사포의 첫 시험 사격을 김 위원장이 지도했다고 일제히 보도한 것이다. 신형 방사포의 발사 사진과 동영상까지 공개되자 군이 오판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쏟아졌다. ‘북한이 쏜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유사시 요격이 가능하겠느냐’는 자조적인 비판도 제기됐다.

하지만 군은 당초 판단을 굽히지 않았다. 북한이 발사한 것은 신형 SRBM일 가능성이 높다는 기존 평가에는 변함이 없다는 점을 언론에 거듭 강조하면서 “추가 분석 중”이라는 입장을 고수한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일부 당국자는 “자세히 언급할 수는 없지만 군의 평가를 믿어 달라”면서 이번 사태로 군의 대북 정보력이 논란의 도마에 오른 것이 억울하다는 듯한 모습까지 보였다.

군이 이 같은 반응을 보이는 데는 북한의 주장을 정면 반박할 수 있는 ‘결정적 증거’를 잡은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그렇지 않고서야 북한이 신형 방사포라는 유력한 증거(사진·동영상)까지 공개했는데도 군이 신형 SRBM이라고 고집하는 것이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공개한 사진에 조작된 정황을 군이 포착했다는 얘기까지 나돌았다. 북한이 KN-23을 쏴놓고 이를 신형 방사포로 교묘하게 위장해 우리 군의 판단에 혼선을 주려는 기만작전을 펼쳤을 개연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2일 새벽 북한이 함남 영흥에서 신형 방사포를 재차 발사하고, 다음 날(3일) 북한 관영매체들이 이를 또다시 보도하자 군의 태도가 묘하게 달라졌다. 청와대가 관계부처 장관 회의 이후 “신형 SRBM일 가능성이 높다”고 발표하자 군은 “그 발표대로 생각하면 된다”면서도 정작 대외적으로는 ‘단거리 발사체’라고 밝혔다. 전날까지 ‘신형 SRBM’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던 것에서 한 발짝 성큼 뒤로 물러선 모양새를 보인 것이다.

군 소식통은 “북한이 SRBM과 맞먹는 신형 방사포를 개발했을 가능성을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군이 몰린 것”이라고 말했다. 뒤늦게야 신형 SRBM을 고수한 군의 평가가 충분히 바뀔 여지가 있다는 점을 시사한 걸로 봐야 한다는 얘기다.

다른 소식통은 “당초 북한이 쏜 발사체를 신형 SRBM으로 1차적으로 판단하되 추가 분석 결과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발표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수용되지 않은 걸로 안다”고 말했다. 군이 발사체의 비행속도와 궤적 등만 보고서 ‘신형 SRBM’ 이외의 다른 무기일 가능성을 애초부터 배제하는 바람에 오판을 자초했다는 것이다.

○ 靑 기조에 따라 北 위협 판단 ‘갈팡질팡’

우리 군이 북한이 쏜 발사체를 놓고 미사일과 방사포 사이에서 갈지자 행보를 보인 것은 결국 ‘청와대 코드’에 맞추다가 군 스스로 발목을 잡혔다는 지적도 나온다. 5월 초 북한이 함남 호도반도와 평북 구성 일대에서 ‘신형 전술유도무기’를 잇달아 동해상으로 쐈을 때 청와대는 이를 ‘탄도미사일’이 아닌 ‘단거리 발사체’로 규정했고, 군도 같은 입장을 취했다. 정찰위성 등 한미 감시전력에 포착된 비행속도와 궤적을 볼 때 SRBM이 거의 확실했지만 이를 발표하면 탄도미사일 발사를 금지하고 있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결의 위반 문제로 비화될 수 있어서 청와대가 북한의 위협을 ‘톤다운’한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었다.

이후 주한미군이 북한의 발사체를 ‘KN-23 신형 SRBM’으로 결론내고, 우리 군과도 이를 공유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지만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주한미군의 공식 입장이 아니다. 한미가 단거리 발사체의 제원을 긴밀히 분석 중”이라고 반박하기까지 했다. 군 소식통은 “당시 정 실장의 발언 내용을 두고 군내에선 ‘너무하는 게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왔다”면서 “군 수뇌부는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쏴도 모른 척하라는 ‘가이드라인’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달 25일 북한이 호도반도에서 KN-23을 발사한 지 13시간 만에 청와대가 ‘새로운 종류의 탄도미사일’이라고 발표하면서 기류가 확 바뀌었다. 군은 이를 청와대의 기조 변화로 인식하고, 같은 달 31일에 원산 갈마에서 쏜 발사체의 실체를 제대로 따져보지도 않고 방사포가 아니라 KN-23으로 성급히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 군 관계자는 “군이 북한 위협의 ‘팩트(fact)’를 객관적이고 냉철히 판단하지 않고 청와대 기조에 따라 갈팡질팡하는 바람에 대북 정보력에 대한 불신과 혼란을 자초했다는 비판을 받아도 할말이 없다”고 했다.

○ 軍, 오판 자인하고 ‘기습 대량 파괴 신무기’ 방어책 서둘러야


북한의 신형 방사포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와 패트리엇(PAC-3) 등 현재의 한미 요격망과 2020년대 초까지 구축하는 한국형미사일방어체계(KAMD)로도 대응이 힘들 것으로 보인다. SRBM과 맞먹는 빠른 속도(음속의 6.9배)로 낮게 날아오다가 최종 낙하 시 변칙 기동까지 할 수 있어 탐지 추적은 물론이고 요격하기도 매우 까다롭기 때문이다. 북한이 신형 방사포를 대량 배치했다가 유사시 생화학탄두를 탑재해 동시다발로 타격할 경우 핵무기에 버금가는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이스라엘의 ‘아이언돔’과 같은 방사포 요격 무기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하지만 ‘아이언돔’은 기존 재래식 방사포 요격용으로 개발돼 SRBM급 ‘괴물 방사포’ 대응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더욱이 북한은 6일 핵탑재가 가능한 KN-23 신형 SRBM의 실전사격까지 성공하면서 신형 방사포와 함께 ‘기습 대량 파괴 신무기’의 양대 축 완성에 성큼 다가섰다. KN-23도 저고도로 날아오다 낙하 시 급상승하는 풀업(Pull-up) 기동으로 한미 요격망을 위협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신형 방사포의 실체를 둘러싼 논란 자체가 소모적 논쟁이라는 말도 나온다. 북한이 방사포와 SRBM의 경계를 허물어뜨린 신형 무기를 개발해 그 실물과 위력까지 공개한 마당에 그 실체를 놓고 갑론을박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다. 장영근 항공대 교수는 “북한의 신형 방사포는 KN-23 신형 SRBM보다 비행고도가 낮아 요격이 더 힘들 것”이라며 “킬체인과 KAMD 등 기존의 대북 미사일 방어책의 한계를 인정하고 서둘러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금이라도 군이 오판을 스스로 인정하고, 북한의 새로운 대남 도발 전력 대응책 마련에 나설 때인 것이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북한 미사일#탄도미사일#신형 srbm#신형 방사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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